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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Aug 17. 2024

DNA와 나 그리고 너

세대와 세대에게 전해진 흔적

몇 년 전 텁수룩한 수염에 머리가 유난히 길었던 남학생이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는 유난히 잘 손질이 된 듯 반짝였고 어깨 춤에서 찰랑거렸다. 겨울 학기의 시작이라 그 긴 머리와 비니, 선글라스와 멋들어지게 입은 모직 코트를 입고 수업에 들어오면 학생들로 가득 찬 강의실에서도 늘 먼저 눈에 띄었다.  


학기 말, 많은 학생들의 두서없이 써낸 아무 말 대잔치 에세이들을 읽으며 지쳐가고 있을 즘, 찰랑찰랑 긴 머리 남학생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쌍둥이 형제가 있다고 했다. 태어난 순간부터 늘 함께였던 쌍둥이 형제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던 든든한 존재였다고 했다. 그 쌍둥이 형제도 찰랑거리는 긴 머리일까 라는 생각을 하던 그 순간 다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쌍둥이 형제가 감옥에 갔다고 했고 곧 출소 예정이라 했다. 그는 최근 방문했던 미술관에 페인트를 묻힌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완성된 작품을 보며 한때 모든 것을 공유했던 그의 형제가 다시 세상에서 두 발로 잘 설 수 있게 돕고 싶다는 글로 에세이를 마쳤다.  한때 잘못된 결정을 하고 삶의 중요한 순간을 감옥에서 보냈지만 이젠 새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야 하기에 본인 스스로 더욱 열심히 살고 싶다고 했다.


두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 난 그냥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간단명료하게 쓰인 글에는 그와 그 가족이 오랜 시간 상처와 아픔을 품었던 순간들이 담겨있었다.

 

언젠가 딸아이가 물었다.

“왜 나는 엄마랑 아빠랑 반반 닮았어?”

“엄마 아빠 딸이니까 닮았지.”

“왜 난 다른 사람 닮지 않아?”

“엄마 아빠의 DNA를 닮아 나왔기 때문이지.”

“DNA가 뭐야?”

“음… 지도 같은 거야.  지도를 보면 여기는 어디고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잖아.  그것처럼 우리 몸에는 DNA라는 지도가 있어. 엄마 아빠의 지도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새 지도가 우리 딸인 거야.  그래서 엄마 아빠 닮아서 나온 거지.  근데 되게 재밌는 거 알려줄까? 엄마 아빠는 또 할아버지 할머니 지도를 닮아서 나온 거야.  그래서 너한테도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의 모든 지도가 들어 있어!”


전문적인 용어와 과학적인 이미지들을 나열하지 않아도 우리의 모습에서 내 형제와 부모와 조부모의 모습을 본다. 그 세대마다  웃고 울고 싸우던 시간들이 쌓여 서로의 삶이 겹치고 겹친다.


Jaq Chartier가 사용한 화려하고 밝은 색감들로 이루어진 작품은 마치 그 하나하나가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하나의 작은 단위 같아 보인다.  이 작은 단위가 모여 내가 되고 네가 되고 우리가 되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세대의 화려했던 시절도 힘든 시절도 어렵고 외롭던 그 모든 시절이 모여 우리에게 주어질 때, 삶이 시작된다.  삶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세대와 세대에 걸쳐져 내게 주어진 것이기에 경건 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경건한 삶을 소중히 여기던 장발의 형제는 분명 길 잃고 방황하던 형제의 손을 잡아주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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