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많아져야 한다.
하루종일 에어컨 빵빵하게 돌아가는 실내에만 갇혀 있다 보니 여름의 더위를 많이 느끼지 못하며 지냈는데 벌써 9월이다. 이곳의 9월은 이른 아침과 저녁에는 선선하지만 오후에는 덥다. 신기하게도 더운데 가을 느낌이 물씬 나는 건 살짝 부는 바람이 후덥지근하지 않기 때문이다. 햇빛을 뜨거운데 바람은 시원하게 느껴지는 게 가을이 온 거다.
퇴근하고 집에 오자 남편은 자전거를 타자고 한다. 귀찮았다. 하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저녁 시간에 가족이 함께 자전거를 탄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귀찮지만 정말 귀찮지만 내 새끼와 함께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아이는 신이 났고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콧노래를 부르며 신발을 신고 헬멧을 챙긴다. 역시 운동은 장비발인가! 나름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녀석을 보니 참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는 자전거에 올라탔지만 페달이 밟히지 않았다. 알고 보니 자전거 페달과 자전거 킥스탠드가 엉켜있던 것이다. 아이는 아무리 발로 페달을 툭툭 쳐보지만 킥스탠드 때문에 움직여지질 않았다.
그런 아이를 본 남편은 아이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했지만 설명대로 자전거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냥 어른이 해주면 간단한 일인데 남편은 굳이 아이한테 시킨다. 맘에 들지 않았다. 타기 싫은 자전거를 타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출발은 안 하고 아이의 자전거 페달도 도와주지 않고 서서 말로만 이리저리 시키는 게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자전거 바닥에 눕혀
(아니 왜 그걸 눕혀! 그냥 지가 해주면 되는데!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천천히 자전거를 눕혀보지만 9살 여자 아이가 자기 몸짓보다 큰 자전거를 눕히는 건 쉬운 게 아니다. (남편은 돈 아끼겠다는 목적으로 아이의 몸짓보다 훨씬 큰 자전거를 일부러 구입했다)
천천히 자전거를 눕히자 남편은 아이에게 페달을 뒤로 보내고 킥스탠드를 내리도록 했다. 자전거를 눕히자 훨씬 수월하다. 아이는 남편이 시키는 대로 했고 엉킨 페달을 제대로 뺄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말했다.
잘했어! 나중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너 혼자 해결할 수 있게 된 거야! 이런 일에 남자의 도움을 받고 할 필요가 없는 거지. 아빠는 네가 스스로 하는 게 많은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어. 남자의 도움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은 그런 여자 말이야!
남편의 그 말이 내게는 매우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나와 남편은 늘 아이의 자립, 스스로 혼자 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라 여겼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이가 힘을 쓰고 몸을 써야 하는 일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는 게 당연한 거라 여겼던 것 같다. 그랬던 당연함을 남편의 한 마디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네가 충분히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말고 해라.
그때 얻는 성취감이 아이를 한 뼘 더 성숙하게 할 것이다.
사실 이건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되는 이야기다.
스스로 혼자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자신을 관대하게 여길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