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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쪼 Jul 20. 2023

그냥 공감을 바란 것뿐이야

F형이 T형을 이해하는 방법

# 조언을 바란 건 아냐



"~~~ 그래서 걱정이에요."

"그렇겠네. 마음이 쓰이겠네요."


 누군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 나는 위와 같이 대화하는 편이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감 놔라 배추 놔라.' 충고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제의 답은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결책에 대해 고민한다면 조언을 구할 것이고, 그런 것이 아니라면 경청하는 것이 말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한 믿음은 부작용(?)도 내재하고 있다. 내가 고민을 털어놓을 때 감정적인 수용을 받지 못하면 상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이다.



"요즘 이런 점 때문에 고민 중이야."

"뭐 하러 고민해. 이렇게 하면 되지."

"아.. 그래."



 상대의 대답에 수긍하면서도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조언을 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답을 들을 때 내 속마음을 솔직히 표현하자면, '이런 걸로 고민하는 게 이상하다는 거야?'이다. 상대가 마치 내 고민이 별거 아닌 일인 것처럼 대할 때 민망한 기분마저 든다.


 20대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에서 상대의 탓을 하곤 했다. 그때는 공감을 안 해준다는 이유로 '사회성이 떨어지는 거 아닌가' 등의 맥락 없는 의심을 했다. 나와 다른 성향을 이해할 수 있는 그릇이 작았다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 왜 공감해 주길 바라는 걸까? (부제: 엄마와 나)


"또 별거 아닌 거 가지고 난리네. 너는 그게 문제야."


 T형인 친정엄마는 감수성이 풍부한 F형의 딸을 다루는 것을 어려워했다. 감정에 예민한 딸이 격한 감정을 표현할 때마다 억압시켰다. F형의 딸은 자신의 풍부한 감정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 잡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감정을 억압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다. 늘 지치고 피곤했다.


 다행히 딸은 본능적으로 F형의 지인들과 가까워졌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공감을 얻으며 자신의 감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큰 위로를 얻었다. 하지만 종종 T형들과의 대화에 반감이 생기곤 했다. 그들이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났다.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알았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느낀 '화'는 어린 시절 자신의 감정을 억압시킨 '엄마에 대한 분노'였다는 것을.

















# 공감을 하지 않으면 이상한 걸까?


 MBTI에서는 나와 같은 공감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F형, '감정형'이라 하였다. 감정표현에 예민하고 대인관계와 사람을 중시하는 성격을 보인다고 한다. 반면에 '이건 이렇게 해야지.'등의 해결책을 즉시 제시하는 사람들을 T 형, '사고형'이라 하였다. 논리적인 성향, 객관성과 합리성에 초점을 두며 일과 목표, 효율성 중시한다고 한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는 F형 인지 T형 인지 구분하는 방법으로 교통사고 난 지인이 연락 왔을 때 즉각적인 반응을 예로 들었다.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어떡해! 다친 데는 없어?'라고 반응을 한다면 F형(감정형)이다. '보험은 들어놨어?'등의 문제 해결중심의 질문을 한다면 T형(사고형) 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예시들을 보면 알 수 있다. F형과 T형 모두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은 같으나 반응이 다르다.

감정에 공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문제 상황을 다루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 어떻게 다룰 것인가?



"내 생각엔 네가 이렇게 해야 될 것 같아."

"음."


 얼마 전 T형의 지인과 대화하다가 다시금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상대가 감정의 수용 없이 충고나 조언을 했을 때, 여전히 나는 약간의 위축되는 느낌 받았다. 하지만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상황에서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되었고, 상대가 나를 위해서 해주는 행동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해볼게요."



 더 이상 어린 시절에 감정을 인정받지 못해서 생긴 화를 현재의 인간관계에 까지 끌어오지 않기로 했다. 감정을 수용받지 못했을 때  내가 느끼는 '수치심'은 '어린 시절의 나'의 감정이 고착되어 나타나는 현상이지 상대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되자 내가 선택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틀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것이었음을.

내가 가진 신념이 반드시 정답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했다.

중요한 건 나와 상대를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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