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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쪼 Aug 02. 2023

커피 머신을 사두고 맥심을 타먹는 남자



 임신 초중기에 입덧으로 고생을 했었다. 음식은 거의 입에 대지 못했고 젤리와 이온음료만 먹다가 물조차 마시지 못한 날에는 수액을 맞았었다. 입덧 증상이 완화되고 음식을 먹기 시작한 시기부터 이상하게도 전에는 잘 마시지 않았던 아메리카노가 자꾸 마시고 싶었다. 하루에 종이컵 한잔 정도만 먹자고 정해놓고, 산부이니 디카페인 커피로 마셨었다.  



"여보, 아이스 카페라테 한잔 사주면 안 돼?"



 막달에 양수가 터져 급히 병원을 찾았다. 출산 전 관장을 앞두고 시원한 커피가 너무나 마시고 싶었다. 나의 조심성 곱하기 3배 정도의 조심성을 겸비한 남편은 아주 단호하게 'NO'를 외쳤다. (이 일은 두고두고 원한이 되어 씹고 뜯고 맛보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그렇게 커피에 대한 간절함이 가득한 출산을 마친 지 6년 지난 지금도 커피는 내 삶의 일부이다.



"여보, 에스프레소 머신을 하나 사도 될까?"



 달달한 커피만 즐겨마시는 남편이기에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게 된다면 잘 쓰게 될지 의문이었다. 카페에 가면 무조건 '아이스 캐러멜 마끼야또요.'하는 그이다. 하지만 워킹맘이 된 지 막 2년 차가 되었던 나는 이미 가루로 타먹는 커피보다 커피전문점에서 만드는 커피에 적응되어 있었다. 집에 구비되어 있는 맥심 X카 골드로는 충족이 되지 않았다.



"그래! 사!"



 대답이 시원스럽다. 10만 원이 넘는 물건을 구매할 때는 오조오만번 고민하는 편이라, 에스프레소 머신을 장바구니에 담아둔지 반년 뒤에서야 남편의 의견을 물었다. 이런 나를 잘 아는 남편은 웬만한 '사도 돼?' 질문에는 'YES'를 외쳐준다.

 머신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캡슐을 주문하고, 매주 주말마다 남편과 구수한 커피냄새를 공유하며 함께 마실 상상을 하며 설레었다.



"이거 마셔봐."



 최근에 스위트 아메리카노를 자주 마시고 있는 남편을 위해 막 추출한 커피에 카페 시럽을 조금 섞어 건넸다. 남편은 조심스럽게 맛보더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아냐 난 괜찮아. 너 마셔.' 하며 거실로 향했다.



"왜? 다시 해줄까? "


 

혹시 시럽이 적었나, 아님 캡슐이 입맛에 안 맞았나?

여러 질문을 던졌지만 남편의 대답은 일관되게 '난 괜찮아. 너 마셔.'였다.

잠시 후 조용히 정수기 앞에서 종이컵에 맥심 커피를 담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왜 커피 머신을 사두고 맥심 커피를 마셔?"

"난 이게 더 맛있어."



 그는 평화로운 표정을 지으며 맥심 커피가 든 종이컵을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아직 이해가 되지 않은 내 머릿속은 물음표 가득했다.

아니, 편의점 스위트 아메리카노는 잘 마시면서 이건 왜 안 마신다는 거지?



"그럼 아까운데.. 나는 여보가 같이 마실 줄 알고 샀지. 혼자 쓸 줄 알았음 안 샀지."

"괜찮아. 난 안 아까워."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물건을 구입할 때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가성비가 어떻게 되는지 계산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에스프레소 머신과 캡슐 비용을 계산하며, 둘이서 주말마다 마시면 훨씬 이득이겠다는 결론이 났던 터라 '괜히 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입을 삐죽이며 다시 계산의 회로를 돌리고 있는 나를 향해 남편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부자가 된 기분이 나서 좋아."

"???"

"에스프레소 머신이 집에 있으면 부자 되는 기분이거든."



커피머신을 가지고 있으면 부자가 된 기분이라고?

마치 요플레 뚜껑에 묻은 요플레를 핥아먹지 않고 버리면 부자 되는 기분 같은 걸까.

기분을 내기 위해 돈을 쓰다니!

순간적으로는 '그건 과소비잖아.'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입을 닫았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 어떨 때 그런 기분이 났었지?



 얼마 전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였다. 미리 예산을 여유롭게 짜고 왔던 터라 편하게 여행을 즐겼던 기억이 있다.  소라면 적당히 배부르면 음식을 더 주문하지 않았을 텐데 그날은 '사장님 흑돼지 더!'를 기분 좋게 외쳤다. 그날따라 고기가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소비 패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꼼꼼하게 따져보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것은 매우 좋은 습관이다. 하지만 매번 '가성비'를 고민하느라 행위 자체에 대한 즐거움을 놓치 않았었던가?


집에서 마시는 피와 카페에서 사 먹는 커피 한잔 가격을 비교하는 건 합리적이지만,

'이건 얼마짜리 커피야.'라는 것 자체에 집중돼서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즐기지 못한 건 아닐까.



남편이 원했던 건

비용을 떠나 언제 어디서나 아내가 커피 마시는 순간에도 자주 행복하길 바란 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딴 사람이랑 마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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