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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쪼 Aug 18. 2023

운동은 괜찮은데, 헬스장은 가기 싫어


# 네? 혼자서요?



"일주일에 한두 번 이렇게 오시는 걸로는 근력이 잘 늘지 않아요."



트레이너님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개인 PT를 받을 당시,  24시간 중 수면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일과 육아를 해야 했다. 남편과 일정을 조정해 가며 운동을 해야 했기에 헬스장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일주일에 1-2회 정도밖에 되질 않았다.



"저랑 수업하는 것 말고, 주 2회 정도 헬스장에서 개인운동을 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아..."



마치 곤란한 요구를 받은 사람처럼 시선이 중력을 따라 바닥으로 떨구어진다. 혼자 헬스장에 와서 운동을 하다니, 상상만 해도 떨렸다. 머리로는 혼자 헬스장에서 운동을 해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불편했다. 마음속에서 거부하는 대답들이 마구 튀어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기구를 다룰 줄 몰라서요', '자세가 기억이 안 나서요.' 등의 말들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었지만, 알고 있었다. 모두 다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제가 아직 헬스장이랑 낯을 가려서요..."

"아~"




그의 표정은 관대했다.

수많은 회원들의 변명과 핑계를 경험해 온 여유로움이었다.




"그럼 주 1회요. 주 1회는 노력하시면 하실 수 있어요. 반드시 인증샷 찍어서 저한테 보내주셔야 해요~"

"네...."



'숙제입니다~'하면서 해맑게 웃는 트레이너님 앞에 서서 이미 숙제 안 해서 혼나고 있는 학생 마냥 양손을 공손히 모은채 고개만 끄덕거렸다. 이어서 개인 운동 와서 어떤 걸 하면 되는지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걱정거리들이 번식을 해나가고 있었다. 이미 걱정이 뇌용량을 다 채운 느낌이었다.  

 '한번 해볼게요.'하고 꾸벅 인사를 한 후 헬스장을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하기 싫은 숙제를 하듯이 헬스장에 갔다






#  헬스장은 가기 싫어




"휴~ 가기 싫어."




집에 와서 오늘 받은 숙제를 남편에게 공유하다 보니 다시 한숨이 나왔다.


'왠지 누군가 나를 보고 비웃을 것 같아.

그곳에선 나만 빼고 다 운동을 잘할 것 같다구.'



위와 같은 말이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헬스장에서 개인 PT를 받는 것 말고도 개인적으로 직장 점심시간에 근력운동을 하고 있던 터라 '굳이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숙제에는 토를 달지 않는 법.

해도 나쁜 게 없다 판단되면 하는 게 맞지 않은가.

아니, 하면 더 좋은 것을 알면서 잡생각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걱정거리들이 자꾸만 개체수를 늘려가길래 정리를 하기로 했다.

잡생각들이 들 때면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뭐 어때!'



뭐! 자세가 이상해서 사람들이 좀 쳐다보면 어때!

뭐! 기구 잘 못 다룰 수도 있지! 좀 버벅대면 어때!

너희들은 태어날 때부터 잘했니? 뭐 어때!





며칠 뒤, 이렇게 '뭐 어때'를 속으로 외치며 헬스장으로 향했다.

헬스장에 다다를 때쯤 트레이너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회원님, 이번주 개인운동 언제 하실 거예요?

-오늘이요!


아아- 그는 귀신같은 사람이구나.



사람들이 없을 때 얼른 휴대폰 꺼내서.

 


떨리는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한다.


'뭐 어때!

뭐 어때!

뭐 어때!

아, 근데 그때 트레이너님이 가르쳐준 게 이 자세 맞나?

아, 아닌가? 이건가?'



한 세트가 끝나고 휴식 시간이 되면 털썩 앉아 주변을 힐끔 쳐다보았다. 사람들은 나처럼 휴식시간에 주변을 잠깐 두리번거리거나 휴대폰을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은 정말 자기 운동에만 집중했다. 다른 사람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상상했던 것처럼 나를 보며 비웃는 사람도,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우연히 헬스 관련 영상을 본 적 있다. '헬스장에서 누군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면, 그건 내가 쓰고 있는 머신을 탐내고 있다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그러했다. 나 또한 오늘 쓰고 싶은 머신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으면 물을 마시는 척하면서 계속 그 사람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저 사람 몇 세트째 일까? 언제 나올까?' 하면서.




1시간 뒤, 운동을 마치고 트레이너님에게 인증 사진을 보냈다.



 



처음 헬스장에서 혼자 운동을 해본 소감은 '생각보다 할만하네.'였다. 개인운동을 하기 전에 마구 떠오르던 잡생각들은 운동을 하는 도중에도 버벅거릴 때마다 '거봐~ 잘 못하잖아~'하며 끼어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뭐 어쩌라고!'라고 답해주었더니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후로도 종종 이 '잡생각'들은 번번이 내가 하려고 하는 일에 끼어들며 포기를 종용하곤 했다.



-오늘은 좀 쉬어. 일하고 육아도 하는데 하루정도 쉬어도 돼.

-네가 해봤자 뭐 근육이 얼마나 늘겠냐. 너는 타고난 멸치야.

-매주 운동할 때마다 남편한테 아이를 맡기는 거 , 미안하지도 않냐?






# 잡생각들의 정체

  


몇 개월 뒤, 우연히 책에서 이 '잡생각'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린치핀>이 저자 세스고딘은 우리의 머릿속에는 두 개의 뇌가 싸우고 있다고 한다.


먼저 척수의 맨 꼭대기에 자리하며, 생존 본능을 발현시키는 아주 오래된 뇌는 일명 '도마뱀 뇌'라고 한다. 도마뱀 뇌는 먹는 것, 두려움, 합리화, 안전만을 원한다. 반면에 도마뱀뇌의 위쪽에 있으며, 최근에 진화한 뇌인 '신피질'이 있다. 신피질은 훌륭한 생각, 혁신적인 통찰, 너그러움, 사랑, 관계, 다정함의 원천이다.


도마뱀뇌는 생물적으로 우리가 지금처럼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신피질은 행복하도록, 성공하도록,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사회를 구성하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우리 머릿속에는 두 개의 뇌가 각자의 목소리를 낸다.




 도마뱀뇌는 생존 본능을 비롯해 야생동물의 특성을 발현하도록 만든다. 생존과 분노와 욕정을 갈망한다. 위협이나 위험으로 느껴지는 것,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곧장 파괴해 버린다.

도마뱀뇌는 맡은 일이나 하도록, 잠자코 앉아 있도록 만든다. 내면의 천재성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틀어막기 위해서 이러저러한 구실, 질병, 긴급한 상황, 산만함을 만들어낼 것이다. 온갖 질병으로 몸을 힘들게 만들고 어떤 일이든 질질 끌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합리화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도마뱀 뇌 때문이다. 자신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예술을 하지 않는 것도, 일을 마무리하고 바깥세상으로 내보내지 않는 것도 모두 도마뱀뇌 때문이다.

- 세스고딘 <린치핀> 중에서-




도마뱀뇌는 다른 말로 '저항'이다.

저자는 이 본능을 갈망하는 도마뱀뇌를 꺾을 수는 없다고 한다. 대신 달래야 한다. 이 도마뱀뇌의 지시를 빠져나오는 방법은 '저항'을 인식하고, 이름을 붙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고, 헬스장을 등록했다. 이후 도마뱀뇌의 활동으로 운동을 가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트레이너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트레이너님 없이 '혼자 헬스장에서 개인운동을 하는 미션'을 받았을 때, 이 도마뱀뇌는 이때다 싶어 미친 듯이 날뛰었다. 다행히 무시했다. 신피질의 승이었다.

  


충분한 수면과 맛있는 음식으로 도마뱀뇌를 달래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자 운동을 하러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이렇게 더 나은 행동패턴을 습관으로 길들인다면 도마뱀뇌는 잠잠해지기 때문이다.








헬스장을 두려워하던 내가 생활스포츠지도 2급 시험을 합격하고, 새로운 운동(필라테스)도 시작하였다.

불과 반년만에 일어난 일이다. 이건 내가 대단한 사람이어서도 아니고, 타고난 근수저여서도 아니다. 아직도 팔굽혀 펴기 몇 개만 해도 몸이 진동벨처럼 떨리며, 헬스장이 마냥 편하지만도 않다.


그래도 운동이 좋아졌다.

운동 후의 개운함을 사랑한다.




생각지도 못한 변화에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내가 기대된다.

지금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도마뱀뇌와 신피질을 잘 달래며 한발한발씩 나아가보려 한다.



포기하고 싶고, 미루고 싶고, 합리화 하고 싶을 때마다 외쳐본다.

안녕, 왔구나~ 도마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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