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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닉. 봄이 왔다.

by beLIEve

브런치스토리에 첫 소개글을 쓰고, 부끄럽게도 기억의 저 편에 잊고 살았다.

누구나 그렇듯 재미있었던 일, 힘들었던 일, 말로 설명 못할 미묘한 일들과 감정이 겹쳐 살다 보니

어느새 햇수로 3년이 지나서야 새 글을 쓰게 되었다.

지금은 투병 중이기에 술을 마시진 못하지만, 경험과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법.

가벼운 운동으로 재활을 시작하는 기분을 담아 글을 쓴다면,

역시 목을 간질이면서도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의 탄산이 잘 어울릴 터.

가장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첫 글의 주제를 '진 토닉'으로 정했다.



사실 주변의 많은 바텐더가 칵테일에 대해 글을 쓰고, 유튜브를 개설해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던 그때,

첫 번째 주제는 으레 '토닉을 사용한 칵테일'이곤 했다. 진 토닉, 보드카 토닉, T&T, 뭐 이런 것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그 글과 영상을 마지막으로 유튜브 활동을 접어버렸다.

나도 진 토닉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역사와 팁에 관한 글을 써서 나 혼자 보거나,

팀원에게만 전달해 주고 지워버렸다.

음료 자체에 관해서만 줄줄이 쓴 글을 게시하기엔 이미 너무나 좋은 레퍼런스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필두로, 브런치 스토리에서는 나의 시시콜콜한 경험을 우선으로 써 보려고 한다.

(경험을 토대로 하고 싶은 말이 좀 많을 뿐)


1. 토닉워터

우선, 토닉워터는 탄산수에 '퀴닌'을 섞은 음료다. 퀴닌이란 말라리아 치료제에 쓰이던 킨코나 수액에서 추출한 알칼로이드계 약물로, 매우 쓴맛을 띤 특징적인 재료이지만 한국에서 판매하던 토닉워터에는 '향'만 첨가한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서구권에서 판매되는 토닉워터는 퀴닌이 포함되기는 하나, 퀴닌의 부작용을 염려해 함량을 꽤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토닉워터를 사 보면 좋을까?

가볍게 접근하면 이마트 자체 제품인 '피코크 토닉워터'도 집에서 즐기기에 괜찮고, 코카콜라에서 만들고 있는 '캐나다 드라이' 제품은 홈텐딩, 업장을 가리지 않고 즐겨 사용되고 있다.


아, 영국 약사 '토마스 헨리'가 만든 동명의 브랜드 토닉 워터나, 세계구로 인기를 끌고 있는 '피버 트리'의 제품이 한국에도 들어오고 있다. '자양강장제'를 뜻하는 토닉 워터는 그 씁쓸함으로 지친 노동자들의 벗이 되어왔으니, 퀴닌의 상쾌한 씁쓸함을 원한다면 마셔보자. 칵테일에도 최고의 선택이다.


그리고, 개인의 취향에 달려있지만 '진로 토닉워터'는 위의 토닉들에 비해 단맛이 상당히 강조되어 있다. 진 토닉을 위시한 칵테일들은 그 쌉쌀함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인데, 진로 토닉워터는 이런 면에서 많이 아쉽다. 마지막으로, *구비한 음료들은 냉장고에 시원하게 보관해 놓기로 하자.


2. 술

이제 술을 집어들 차례다. 조금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토닉워터는 많은 주류를 가볍고 깔끔하게 즐기기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친숙한 녹색 병 소주, 전통 증류주와 과실주, 과실계, 견과류 계, 허브계 리큐르, 진, 보드카, 럼, 데킬라, 피스코.. 반대론자도 많지만 숙성한 증류주도 좋다. 그러나 여기서는 진 토닉이 메인이기에, 그쪽을 우선해보려고 한다.


진은 노간주나무의 열매인 주니퍼베리를 사용해 만든다.

(베리라고 적혀있지만 흔한 열매의 모습을 상상하면 안 된다. 사실은 노간주나무의 솔방울이다)

원래 네덜란드에서 이 술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는 맥아의 몰트향과 주니퍼베리에서 오는 송진향이 강한, 꽤 단맛이 강한 '쥬네버'라는 술이었다. 약사인 실비우스 드 부베가 처음 개발해 자신이 근무하던 대학의 약국에 전매권을 넘겼고, 1666년 볼스가 제조를 시작하여 일반품으로 판매를 시작해, 30년 전쟁을 거쳐 영국에 '용기의 물약'으로써 소개되었다. (그러나, 더 오래전 80년 전쟁 당시 쥬네버는 이미 영국 군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을 것이라고 판단되지만 길고 긴 역사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나중에도 할 이야기가 너무 많으므로)


영국으로 건너오며 진은 복잡한 공정, 숙성, 영국인들이 생각하기에 '불필요한 향'을 제거해 값싸고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는 술이 되었다. 특유의 상쾌한 느낌, 식물과 시트러스의 향과 맛을 간직한 진. 특징만 봐도 쌉싸름한 토닉워터와 곁들일 생각이 절로 든다. 당장 술을 구하러 가야 한다. 동네의 주류백화점도 좋지만, 데일리샷, 대형마트에 가도 질 좋은 진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 우리의 손님들이 가장 많이 집어든, 클래식한 몇 가지를 살펴보자.


- 고든스 -

다른 진에 비해 비교적 투박해 보이는 이 술은 진의 꾸밈없는 정석을 보여준다. 강한 솔향, 깔끔한 맛을 가지고 있다. 많은 프리미엄 진들은 화려한 식물성의 부재료를 적재적소로 사용하고 있는데, 고든스는 그런 경향이 적다. 가격도 부담 없다.


- 비피터 -

영국 근위대의 별명을 따온 진이기에 라벨에서도 드러나 있다. 이 진은 균형 잡힌 향과 부드러운 질감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조금 더 공격적인 재료와 섞이면 진의 질감 자체는 휘발되고 시트러스한 향이 강하게 남는 경향이 있기에 취향을 고려하여 구매하면 좋겠다.


- 탱커레이 -

특유의 유려한 녹색 디자인, 붉은 납인이 유명하다. 기본적으로 주니퍼베리의 향이 메인으로 꽂히는 '탱커레이'와, 증류 과정에 '타이니 텐'이라는 증류기에서 신선한 오렌지, 자몽, 라임, 캐모마일 꽃을 함께 첨가하는 '탱커레이 No.10'을 고를 수 있다. 알코올 도수가 위 두 진에 비해 조금 더 강한 47.6%이다.

(고든스 43%, 비피터 40%)


= No.3 -

제조 과정에서 세 가지의 과일, 스파이스를 함유하는 No.3는 라벤더와 스페인 오렌지 껍질의 풍미, 신선함까지 함께 느낄 수 있다. 손님들 중에서는 병에 붙은 열쇠의 의미를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았다. 세인트 제임스 스트릿 3번지의 판매장 응접실 문을 여는 열쇠에서부터 영감을 받았으며, 제품의 품질, 능숙한 솜씨와 성실의 가치를 설명한다고 한다.


- 로쿠 -

六이라는 이름답게 육각기둥 모양의 병과, 특징적인 여섯 가지 재료 (벚꽃, 벚꽃 잎, 유자 껍질, 센차, 교쿠로, 산초)가 사용되었으며, 쥬니퍼베리의 향은 메인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느낌이나 일본의 사계절에 수확한 재료들을 느낄 수 있다.


- 스이 -

물총새 翠에서 이름을 따온 진으로, 생강과 녹차, 유자를 함유해 도수가 높으면서도 대중적인 맛을 겨냥했다.


3. 잔과 얼음


이제 술과 토닉워터가 준비되었다. 마시기만 하면 된다.... 면 좋겠지만,

좀 더 그럴듯한 한 잔을 위해서 꼭 챙겨야 할 디테일이 있다. '잔의 온도'다.

업장에서는 글라스들을 냉동고나, 필요에 따라 냉장고에 넣고 차갑게 해 두는 과정을 거친다.

충분히 차가워진 잔의 온도로 인해 얼음이 잘 녹지 않으며, 음료를 시원하게 즐길 수 있고,

각 음료에 필요한 최상의 온도 상태로 서브되 손님이 보다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것인데,

의외로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아 '맛있긴 한데 뭔가 조금 아쉬워'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물론 집에서는 업장처럼 냉동고의 온도 및 다른 환경을 세팅하기가 어렵지만.


주의할 점은, 대부분 가정의 냉동고에는 소분해 놓았거나, 냉동상태로 보관하는 음식이 들어있기 때문에,

이 냉동고에 잔이나 얼음을 넣으면 (특히 얼음) 음식의 냄새가 얼음에 배어버린다.

잔과 얼음 모두 냉동고에 넣기 힘들다면 차선책으로 이렇게 해 보자.

보통 가정용 얼음 트레이는 잔을 차갑게 하는데만 사용한 후 버리고,

차가워진 잔에 편의점에서 사 온 큼직한 돌얼음을 채워 넣는 것이다.


4. 마셔보자.

드디어 진 토닉을 만들어 볼 시간이다. 지거(바텐더들의 계량컵)가 있다면 멋지게 한 잔을 계량해 붓는다.

지거가 없어도 상관없다. 우리에게는 소주잔이 있기 마련, 대부분 소주잔을 찰랑거리게 따르면 45ml 정도다.

얼음이 든 차가운 잔에 계량한 진을 붓고, 토닉워터를 잔의 7~8부까지 붓는다.

여기서 함정은, 집에서 술을 만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분들은 토닉워터를 붓자마자

수저로 몇 번이고 빙글빙글 저어 섞는 분이 꽤 많다.

여러 이론이 있지만 쉽게 말하자면, 내가 수저를 마구 돌리는 만큼 탄산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하자.

토닉워터를 잔에 부으며 탄산이 올라오는 과정에서 이미 음료가 섞이기에,

온전한 진 토닉을 즐기기 위해서는 스푼으로 밑에서부터 얼음을 한두 번만 살짝 들어 올리면 된다.


5. 진 토닉을 더 즐기기 위한 팁

<1> 시트러스 즙

진과 토닉만으로도 이미 훌륭하지만, 이 두 친구를 제대로 조화시켜 주는 시트러스 즙은

진 토닉의 격을 다르게 만들어준다. 마트에 보이는 생라임만 몇 개 집어 들면 된다.

라임을 1/8 조각으로 잘라, 꾹 짜내 라임즙을 미리 잔에 넣는다.

진을 붓고 라임즙과 함께 잘 저어둔 뒤, 토닉워터를 붓고 즐기면 된다.

진 토닉의 씁쓸함과, 재료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열쇠다.

(마트에서 수류탄같이 생긴 라임즙 병 사놓고 맛없다고 우는 분이 있다. 미워할 거다)


<2> 가니시

칵테일에서 가니시는 단순 장식 말고도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풍미의 향상'이 그것이다.

식음료를 접할 때 후각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음료를 마실 때, 코 바로 밑에 위치한 가니시의 향에 따라

풍미가 변하는 바리에이션은 셀 수가 없다. 위에서 라임즙을 짤 때 사용한 라임 조각을 넣어 마시는 것은 기본이며, 내 취향과 술의 특성에 따라 같은 진 토닉이어도 레몬 껍질, 오렌지 껍질, 오이 조각, 꽃 등으로 변화구를 날려보자.


<3> 인퓨전, 담금주

미국 Death & Co 팀의 저서에는 '진은 향미를 가진 거의 모든 것과 잘 어울린다'라고 적혀 있다.

진은 어느 칵테일에서도 제자리를 잘 지키면서, 동시에 다른 재료의 자리를 곁에 마음껏 내준다는 것이다.

비싼 재료를 살 필요 없다.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 티백을 써도 충분하다.

위의 몇 가지 진 목록에서 볼 수 있듯, 같은 진이라도 부재료의 특징과 비율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탱커레이 No.10 한 잔을 잔에 붓고, 캐모마일 티백을 몇 분 우렸다 빼낸 다음,

그 진으로 진 토닉을 만들어보자.

티백의 종류에 따라, 봄날의 어느 피크닉 자리에서도 여러분을 감싼 풍경에 어울리는 한 잔을 즐길 수 있다.

(티백 한 개로 3잔 분량 우려마실 수 있다는 것은 덤이다)


<4> 음식

잘 만든 술은 그 자체로도 충분하지만, 곁들일 음식과 함께하면 더욱 좋다.

상쾌하고 씁쓸한 진 토닉은 음식과의 궁합이 넓다.

이제 봄의 기색이 완연하니, 진 토닉을 봄 제철회, 산뜻한 튀김, 핑거푸드 등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6. 마치며

나는 왜 진 토닉을 첫 번째로 골랐을까? 내가 진을 좋아해서,

그리고 많은 바텐더들이 추천하는, 집에서 즐기기 가장 쉽고 맛있는 술이어서.

그런 요소도 포함되어 있지만, 사실 탄산을 사용한 칵테일은 탄산의 강도, 젓는 방식에 따라

추구하는 완성형이 다르고, 집에서 처음 도전해 볼 때는 과도한 의욕에 이리저리 저어보다가 망치기 쉬운,

의외로 디테일이 많이 숨어있는 음료다. '제대로 섞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뜻이다.


올해 투병을 시작하기 전, Bar와 전혀 상관없는 자리에서 투박하게 마신 진 토닉이 아주 맛있었다.

'아, 그동안 일자리에서 빈틈없이 챙긴 한 잔만이 내 고민의 답은 아닐 수도 있겠다'

'잊고 있었지만, 즐기는 마음도 중요하다. 내가 다급해서 못 챙긴 거지'


예전에 읽어봤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는

진 토닉이란 이름의 술은 전 우주에 퍼져있다고 했다. 그렇게 많은 진 토닉이 있는 것처럼,

때론 철저한 계산보다는 잠시 멀리해 뒀던 내 일상에서 답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해 보기 위해 첫 글을 적게 되었다.


..... 앞으로의 글을 무슨 일상과 엮을지 좀 고민이지만.



* 차갑게 보관한 음료는, 온도의 일관성을 지켜주고 탄산의 강도를 오래 유지한다.

나는 예전 대회에서 준비해 간 재료 중 하필 탄산을 차갑게 보관해놓지 않았고, 심사 피드백에서 이 점을 지적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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