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수업시간에 안 자고 있던 어느 야구부의 이야기
"어이 거기 뒤에 야구부, 너는 왜 안 자니?"
나는 이상하게 화가 났었다.
다른 친구들이었으면, 수업시간에 잠을 자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감사합니다!”하고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에 바빴겠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저는 안 자고 수업 들을 겁니다.”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선생님 입장에서는 잠을 못 자고 야간까지 운동만 할 운동부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절반. 괜히 수업시간에 깨어 있어서 수업을 방해하는 것보다는 그냥 조용히 잠을 재우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절반이셨을 것이다.
선생님에게는 일종의 윈윈전략이었던 셈.
하지만, 맨 뒤에 앉아있던 어느 덩치 크고 짧은 머리의 한 학생이 선생님의 이 전략에 반기를 든 것이다.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 부모님께서 나에게 내거셨던 전제조건은 “운동을 하면서도 절대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었다.
만약, 성적이 일정이상 떨어지게 된다면 바로 야구를 그만두게 할 거라는 말을 수없이 하셨기에,
나도 그 부모님의 명을 받들어 운동을 하면서도 공부를 항상 열심히 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전교 10위권 내에서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학원이나 과외의 도움을 받는 친구들 수준으로 앞서 나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정규 수업만으로 어찌어찌 내용을 따라가며 상위 10% 성적은 유지했다.
운동을 그만두게 할 거라는 부모님의 말이 무섭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운동선수는 무식하다”, “공부를 못하니 운동이나 하는 거지”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운동선수들이 머리가 좋다고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반 학생들보다 더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시합으로 인해 수업에 빠지는 날이 있으면, 그 선생님을 찾아가 못 배운 내용을 여쭈고 프린트까지 끝내 받아냈었다. 이런 모습이 선생님들에게 눈에 띄었을 터. 항상 모든 선생님들에게 나는 어느 일반 학생에게 느껴볼 수 없는 신선함과 열정을 가지고 있던, 가장 이쁨 받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로 성적이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시합일을 제외하고는 그나마 정규 수업이라도 모두 참여할 수 있었던 중학교 때와는 달리, 고등학교는 3교시밖에 안 되는 짧은 수업 시간만 참여하고 오후에는 야구장에 나가 훈련을 했다.
게다가, 갑자기 높아진 수업 난이도와 시험에 맞춰진 빠른 진도, 매달마다 있는 각종 시험들을 나의 열정으로만 따라가기에는 정말 역부족이었다.
매일매일 운동은 매일 밤 11시까지 이어졌고, 다시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등교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어쩌면 매일 4~5시간 정도 잠을 자고 출퇴근시간에 치여 힘들고 등하교를 반복하는 상황 속에서,
겨우 3교시만 듣고 운동장에 나가서 운동을 하는 내가 내용을 알아듣지도 못할 수업시간에 수업을 듣는다고 한들, 성적이 내려가지 않는 것도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내 성적은 내려갔고, 운동하면서도 공부를 잘한다는 명성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 자존심에 불을 붙인 계기가 찾아온 것이다.
"나보고 잠이나 자라니."
"내가 수업에 방해되는 존재라니"
"나도 머리가 나쁘니까 운동이나 하는 그런 존재였나?"
머리로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사실 부정할 수 없었다.
학업 성적으로만 봤을 때, 나는 어느 하위권 성적의 친구들과 크게 다를 것 없었기 때문이었다.
“운동선수는 무식하다”라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노력했던 나인데,
결국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는 사실에 크게 허탈했다.
화가 났다.
어쩌면, 내가 저 때 선생님께 들었던 반기는 선생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나태함을 향한 것일지도 모른다.
'3교시밖에 못 들으니까', '밤늦게까지 운동했으니까', '진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 하며 안주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어떻게 공부를 해서 다른 학생들을 따라가지'라는 생각보다, 각종 여러 핑계들로 가득했던 그동안의 내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후로, 수업시간에는 절대 잠을 자지 않았다. 아니,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무조건 상위권의 성적을 맞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부족하면, 잠을 줄여서 시간을 만들었고,
문제가 없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따라다니며 문제를 얻어냈다.
등하교 시간에는 그 비좁은 지하철 안에서도 인강을 들으며, 단어를 외우며 공부했으며, 매일 야간 훈련이 끝나면 학교 자습실로 올라가 한 시간씩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한 시 넘어 들어갔다.
그리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결국 나는 운동을 그만두고, 재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 그 선생님이랑은 재수할 때 정말 많은 도움을 받고, 나도 감사함에 매년 안부 인사 드리는 아주 가까운 사이로 지내고 있다 ^_^)
결국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이렇게 저렇게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국은 좋은 성적을 맞았다"가 아니라, 저 당시의 "삶에 대한 나의 태도"가 저런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동기부여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번 끄적여봤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또 다른 "안주"를 하고 있을지 모르는 지금의 나에게,
그때 그 선생님께 했던 그 "반기"를 기억하며, 살아가라고 말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