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되어 본가에서 엄마가 차려주는 삼시 세끼를 받아먹고 아무 때나 자고 일어나길 2주가 되었다. 그렇게 백수의 표본과 같이 놈팡놈팡 살았다. 그러다 이제는 다음 달의 내 지갑이 걱정되어서 다시 일을 해야겠더라. 본가의 거실 테이블에 앉아, 엄마에게 내 미래 브리핑을 핬다.
“엄마, 내 평일엔 병원 알바 뛰고, 주말엔 카페 알바 해볼래!”
소위 말하는 블랙병원으로 잘못이직하게 되어서 정말 피똥 싸면서 어거지로 1년을 버텼다. 이직하고 출근한 지 일주일도 안돼서 ‘여긴 아니다’ 뼈저리게 느끼고 곧장 튈 궁리를 했는데 또 이게 타이밍 맞는 곳이 나타나질 않아 어쩌다 보니 그만두기 아까운 기간만큼 다녀버려서 ‘이왕 이렇게 된 거 1년만 버티자 ‘가 되었다.
식욕도 떨어지고 삶의 의욕도 떨어지고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다녔다. 버텨야 하니까. 버티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1년을 근무하고 퇴직금을 받아 생에 첫 유럽 여행을 가자고 마음먹었다. 그 여행하나 만 바라보고 블랙병원에서 기어코 버텨냈다.
영어도 못하는 나는 낯선 땅에 떨어진 이방인의 모습으로 분노하기도 했고 어쩔 줄 모르는 아름다움에 취하기도 했고 앞으로 남은 여행과 지나온 도시들의 아쉬움이라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안고 크리스마스와 연말. 새해까지 유럽에서 보냈다. 그리고 내 생에 가장 사치스러운 돈을 펑펑 써댔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돈 쓰고 살았으면 유럽에서 처럼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른 살이니까, 이십대의 내가 사고 쳐 놓은 경제력을 회복시켜야 하고 또 이제는 정말로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해야만 하는 거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시 병원으로 정직원으로 취직하게 되면 그곳에서 진득하게 자리를 잡아야 하기에, 한 곳에 박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 해보려고 한다.
주말,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었다. 건강하지 못한 병원의 분위기에서 조금은 도망치고 싶었다. 그, 아프면 죽어야지. 하는 말들 있잖아. 아프다고 호소하고 아프다고 원망하는 그 말들에서 벗어나고 싶어 도피처로 카페를 골랐다. 내가 아직 학생일 때, 음료를 만들고 디저트를 만들면서 매장 안의 커피향기와 손님 응대에서 대화를 나누었던걸 다시 하고 싶었다. 카페 아르바이트는 ‘돈을 벌어야 하는 일’보다는 ‘재미있는 일’로 여겼다.
그렇게 좋아하면서 평일이 아니라 주말로 고른 이유는, 돈 때문이다. 카페 아르바이트는 정말 재미를 위해서 골랐다. 평일에는 정말 밥 벌어먹기 위한 돈을 벌어야 하기에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전과 다른 점은 정규직이 아니라 주말과 같은 아르바이트라는 점이다. 정직원과 마찬가지로 하루 8시간을 근무하지만 책임의 무게가 다르다. 정말로 내 일만 하면 된다. 분배된 행정 업무도 없고 동료들과의 관계를 챙기지 않아도 된다. 원한다면 언제든 그만두고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다.
나의 직업은 주 7일을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