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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타박 Jun 16. 2024

나를 위해 남을 위해 사는 삶

지혜로운 이기심에 대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남을 정말 많이 돕고 사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이기심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욕망 덩어리인 유전자가 뇌에 각인되어 있죠.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욕심쟁이 유전자가 자연선택되어 지금까지 후대에 전해 내려 왔거든요.




물론 지금은 생존과 번식에 집착해야 할 단계적 시기는 넘었어요. 원초적인 본능을 넘어, 이제는 새로운 사회적인 본능을 발휘하려 해요. 살을 빼고 싶어 하고, 여러 이성을 동시에 만나지 않으면서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집단에서 수평적인 관계를 선호해요. 옛날 같았으면 매우 열등하고 자연에서 도태됐을 가치관이에요. 뺄 살이 어딨어요. 믿음직한 사람이 어딨어요. 무조건 지방을 축적시키고, 남자라면 여러 여자와 관계를 해서 종족의 씨를 퍼트리고, 집단에서 우두머리가 되길 원했으니까요. 변화하는 환경 탓에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이기적이라고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여요.




저도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들어요. 사줘서 고맙다, 베풀어 줘서 고맙다, 고민 들어줘서 고맙다, 같이 의논해 줘서 고맙다, 조언해 줘서 고맙다. 마치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해줄 법한 말들이죠. 제가 그들에게 베풀어 주고 도움이 되었나 봐요. 그래서 저는 제가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나중에 스스로를 탐구해 보면서 알았습니다. 그런 저의 선행들은 사실 저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요.




저도 저를 탐구해 보기 전까지는 제가 착한 줄 알았어요. 그들의 입장에서 도움이라고 생각될 만한 일들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남에게 베풀고 있는 순간의 제 감정과 행동 동기에 대해 고민해 봤어요. 큰 이유가 있어서 그런 고민을 한 건 아니에요. 그냥 사람의 심리에 대해 궁금한 마음에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왜 베풀어 주었을까, 내가 왜 흔쾌히 고민 상담을 해줬을까, 내가 어떤 생각으로 도움을 줬을까. 내가 과연, '착해서' 그랬던 걸까?




결론은 아니었습니다. 저만의 개인적인 의도가 있었어요. 이기적인 의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를 먼저 생각한 의도였습니다. 남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 저를 위한 것이었죠. 그럼에도 제 선행의 의도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착한 사람 시선을 뻔뻔히 잘 받았습니다. 결론만 보면 착한 짓이 맞기도 했고요.




몇 가지 저의 선행을 한번 추려보며 이야기해 볼게요. 설명하기 편한 예시들이니 교훈적인 의미 위주로 받아들여 주세요.




1. 다 같이 밥을 먹었는데 제가 다 계산했어요.
2. 여러 사람들의 고민을 온라인상에서 무상으로 상담해 줬어요.
3. 규모가 큰 모임에서 필요한 행정 업무를 제가 자선 전담했어요.
4. 이성적인 호감을 가지고 연락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다른 이성의 연락을 다 떨쳐냈어요.




참 좋은 사람 같아 보입니다. 저도 깜빡 속을 뻔했네요.




1. 다 같이 밥을 먹었는데 제가 다 계산했어요.


제가 읽는 대부분의 책들은 자기계발 도서예요. 자기계발 서적에서는 흔히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삶의 조언이 하나 있어요. 사회에서 기버(Giver)가 되라고 합니다. 자기계발 서적의 보편적인 작서 원리는 착하게 사는 이야기를 전하기보다는 성공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죠. 그 성공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책을 읽는 나를 위한 것이겠죠. 자기계발 서적에 나온 내용대로, 저는 제 여유가 있는 한 남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주는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다 같이 밥을 먹고 제가 계산을 했을 당시, 그 모임은 사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어요. 그들로 하여금 저에게 기버의 정체성을 심어주는 건 나를 위한 일이었죠. 물론 좋은 마음이었어요. 대신해서 지불한 금액과 좋아진 분위기만큼은 저의 의도와 무방하게 충분히 그들을 위한 것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




2. 여러 사람들의 고민을 온라인상에서 무상으로 상담해 줬어요.


오픈채팅 52명, 에스크 질문은 총 300개가 조금 넘네요. 오픈 채팅은 90% 이상이 고민 상담이었고, 에스크 질문은 60~70%가 고민 상담이었던 것 같아요. 답변도 결코 짧게 하지 않았어요. 답변 창을 빼곡히 채웠죠. 그들은 각자의 고민을 분명히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기에 고민이 많이 무거웠을 거예요. 질문을 남기는 그 순간까지도 말이죠. 제 답변에 대단한 통찰이 담겨있진 않지만, 조금이라도 머리를 맞대어 주며 고민의 무게를 덜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을 거예요. 고맙다고 말씀해 주시고 선물까지 챙겨주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글의 맥락상 이 모든 게 사실은 그들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그저 저의 행동 동기에 저를 생각한 것이 분명히 있아는 것이죠. 저는 당시에 '글쓰기'라는 정신적 활동에 빠져 있었어요. 글쓰기 연습을 많이 하고 싶었죠. 그리고 사람의 감정과 생각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에스크 운영은 글쓰기 연습과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 간접 경험 모두를 가능하게 해 줬어요. 그래서 저는 저를 찾아와 주는 사람들의 말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였습니다. 내 글쓰기 연습을 위해서, 사람 공부를 위해서. 그리고 덩달아 그들의 마음도 살 수 있었고요. 일석삼조인 셈이었죠. 그들이 고민을 덜고 편안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3. 규모가 큰 모임에서 필요한 행정 업무를 제가 자선 전담했어요.


축구 모임이었어요. 축구 모임이 진행되려면 많은 수고가 필요해요. 사람을 모아야 하고, 장소를 선정하고 대관을 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안내 사항을 통보해야 하고, 수금을 해야 하고, 늦는 사람이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해결을 해야 해요. 저는 이 모든 걸 제가 거의 다 하곤 했어요. 친구들의 눈에는 그저 제가 고생을 많이 해주는구나 싶었을 겁니다. 원활한 모임 진행과 그들을 위해 제가 조금 더 고생한다 해도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제가 고생하는 근본 이유는 저를 위해서였어요. 저는 계획형 인간이에요. 해야 할 일이나 업무들이 깔끔히 정돈되지 않으면 뇌가 편하지 않아요. 딱딱 일처리가 되어 있는 게 제 정신 건강에 이롭더라고요. 그리고 이렇게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저에게는 자연스럽게 집단 내의 '리더' 정체성이 부여되기도 합니다. 과거에 리더가 되는 것은 생존과 종족 번식에 매우 이로웠습니다. 제가 모임을 관리하면서 리더의 정체성을 본능적으로 욕심냈을 수도 있어요.




4. 이성적인 호감을 가지고 연락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다른 이성의 연락을 다 떨쳐냈어요.


여러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기보다 한 여자에게만 헌신하는 것이 멋진 남자의 이상적인 태도예요. 쉬울 것 같으면서도 어렵죠. 저는 최근에 이성적인 마음을 가지고 연락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그런데 평소엔 잘 안 오던 낯선 여자들의 호감 표현이 요즘 들어 많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큰 고민 없이 다 거절했어요. 남이 보기엔 제가 그 여자를 위해 정직한 태도로 헌신한다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이것도 저를 위한 거였어요.


연애할 때 ENFJ가 되는 제게, 이성과 교제를 할 때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을 나누는 거예요. 좋아하고 사랑하는 상대가 행복하면 저도 행복해요. 그 사람이 상처받지 않길 바라고 속상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커요. 제가 다른 이성들의 연락을 다 배제한 건 아직 그녀의 남자친구는 아니지만 앞으로 그녀에게 더 큰 마음을 가지고 싶었고, 그녀에게 집중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어요. 그게 저를 위한 거예요. 진심은 티가 난다고 믿어요. 제가 상대에게 진심으로 집중한다면, 분명히 상대도 그것을 느끼고 좋아할 것이라 생각해요. 상대가 좋아하면 저도 좋아요. 저를 위해서 상대를 위하고 싶어요.




저의 선행은 이런 식이었습니다. 나를 위할 수 있는 것들을 우선시했어요. 덕분에 나를 위한 것들로 내면이 가득 차는 기분을 느끼는 경험을 했어요. 나를 위한 것들로 내가 꽉 차니, 사람으로서 온전해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나의 내면이 안정적이어졌어요. 사랑도 받은 사람이 줄 줄 안다는 말이 있듯이, 비슷한 맥락으로 내가 꽉 차 있으니 남을 채워주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꽉 차 있으니, 그 몇 번 남에게 내 것을 채워주는, 즉 '정말 남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결코 아쉽게 여겨지지 않더라고요. "이 정도쯤이야 뭐."라며 가볍고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꽉 차 있기 때문에.




위의 사례를 읽어보시면서 글의 교훈을 이미 깨달은 분도 있을 겁니다. "분명히 작가는 자신을 위한답시고 사람들에게 밥도 사주고, 고민 상담도 해주고, 모임 관리도 해주고, 한 여자에게 헌신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결과는 모두를 위하는 일이 되었네?" 저도 이 부분이 참 놀라웠어요. 나는 정말 탁월하게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졌고 항상 나를 우선적으로 여기었는데 착한 사람이 되어 있었거든요. (이 글을 씀으로써 저는 이제 정체가 탄로 났습니다.. 하하) 그리고 깨달음을 얻었죠. "남을 위하는 게 크게 어려운 게 아니구나. 나를 위하면서도 남을 위할 수 있겠구나. 어쩌면 많은 순간에서 나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내 자아를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남을 배려하는 것이 가능하겠구나."




저는 이걸 윈윈(win-win) 구조가 됐다고 표현해요. 맹목적으로 남을 우선시한 적은 없기 때문에 나는 늘 하나의 나를 위한 win은 기본값으로 가져올 수 있었고, 상황에 따라 나의 배려로 남을 위한 win 구조까지도 가져올 수 있게 되는 윈윈(win-win) 구조.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지혜롭게 이기적으로 생각하니까 쉽게 윈윈 구조를 그릴 수 있었어요. 가끔은 나를 위하지 않고 남을 위하는 경우가 있어도, 그거 조금 베푼다고 해서 상대만 win이 되고 나는 lose가 되는 구조는 드물더라고요.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며, 지혜롭게 이기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에게 인간관계가 크게 어렵진 않다는 깨달음을 준 삶의 지혜였습니다.




이 지혜가 새로 다가오는 2024년의 삶을 더 풍족하게 만들어 주는 데 이바지할 수 있길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저는 내일도 나를 위해서, 남을 위해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2023.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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