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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Jul 18. 2022

내가 사랑한 남자들

K

K는 실질적인 내 첫사랑이다.

그것이 온전히 상호 간에 이뤄진 사랑이었나,

생각해보면 내 마음이 더 컸던지라...


어렸을 때 짝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깨달았다.

돌려줄 마음이 없는 이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내가 스물셋이었나.

그는 나보다 한두 살 어렸던 걸로 기억한다.

자세한 전공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일터에서 만난 사이였다.


(내가 만난 남자 대부분이 비슷한 전공이었는데

아무래도 특정이 되는 것 같아

이 부분은 밝히지 않으려 한다)


그는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성적 에너지가 넘쳤다.

그때까지 남자를 만난 경험이 거의 없던 나와 달리

그는 아주 많은 여자애들과 잠자리를 가졌고

또 꽤 많은 여자 친구들을 사귀었다.


나와는 싸움이 안 되는 상대였다.

나는 전형적인 짝사랑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를 향한 마음을 접으려는 시도를 몇 차례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귀신 같이 당근을 던져줬다.


불안한 자아를 가진 이들과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나는 별 감정 없이 그를 떠올리지만

그 시절의 나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롱패딩의 지퍼를 올려주는 하수 여우의 장난이

이십 대 초반 어린 여자에게는 통하는 법이었다.


이후로 나는 너무 많은 남자를 만나고

너무 쉽게 사랑에 빠졌다

너무 쉽게 절망하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여전히 첫, 사랑하면 내게는 네가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어째서 그 애의 여자 친구가 될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지.


그 시절의 나와 너, 우리는 업계에서 성공하겠다는 열망에 휩싸여 있었지.


지금이 우리 둘 모두에게

동 트기 전 가장 어두운 때가 아닐까?

나도, 내 첫사랑인 너도

부디 이 어둠을 잘 헤쳐 나가길.

그리고 언젠가 다시 우리의 일터에서 만나길.


혹여 우리가 다시 사랑에 빠진다면

그때는 뜨겁게 말고, 가볍게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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