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앨리스 Aug 04. 2022

내가 사랑한 남자들

P

P는 제가 영영 잊지 못할 사람입니다. 누군가 제게 그래서 네 마음이 가장 쓰였던 이가 누구냐, 물으면 두 명을 말하겠는데 그중 하나가 P입니다.

 

그를 처음 만난 게 된 건 그다지 건전하지 않은 루트를 통해서였습니다. 건전하지 않은 그 루트를 통해 사람을 만난 건 그나 저나 처음이었기 때문에 기분이 뭔가 묘했죠. 이런저런 이유로 정상적인 관계로 발전하는 대신 정상에서 벗어난 사이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에게 저는 일탈이었습니다. 아마 그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자기의 얘기인 걸 알 거예요. 어쨌든 평범한 연인이 아닌 일탈의 대상으로 도구화된 그때가 저에겐 아주 당연하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이 쓰인 것은 사실이니 참 아이러니하죠.


늘 착하고 바르던 그에게 저는 일종의 불량식품이었달까요.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면 제가 그렇게 부족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글쎄요, 그보다 객관적인 조건은 낫다면 나았지 부족하진 않았거든요. 그럼에도 당시에 그가 저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던 건 불안한 제 영혼과 애정결핍,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한 때는 그를 아주 많이 원망했습니다.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걸까, 내가 많이 부족하여 우리는 사귈 수 없는 걸까,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했고요. 저 혼자 상처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만난 누군가 제게 말하더군요.


'나도 상처받았어. 혼자 상처받고 아픈 척하지 마.

나도 상처받고 아팠어 너 때문에.'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때 조금 더 예쁘고 진실되게 사랑해줄걸. 비록 비정상적인 나였지만 사랑하는 일만큼은 정상적으로 해줄걸. 나의 어떤 말과 행동들 때문에 너도 많이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겠지,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보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어떤 일들을 함께 겪은 사람들은,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거든요. 아마 앞으로도 영영 마지막이 될 그날에 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했다고, 너는 늘 부정했지만 네가 나와 함께 보낸 날은 사랑이었다고. 그도 편지를 읽으며 깨달았겠죠.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구나.


홀가분합니다. 지나간 것을 놓아주는 연습 중이에요. 이제 어느 정도 단련된 것 같기도 해요. 새로운 사랑을 기다립니다. 저를 아프게 하고 슬프게 했던 사랑들을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사랑한 남자들을 쓰면서 그렇게 하나씩 기억들을 차곡 묻을 수 있겠죠?



작가의 이전글 이토록 쓸쓸한 날에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