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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미진진한 독자 Jan 11. 2024

글쓰기의 행복한 부작용

글을 쓰다 보면 나의 욕망과 욕구, 불만이 주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욕구불만을 번역하여 글로 표현하면 읽는 분들이 공감해 주기도 하고 위로해 주기도 한다. 공감받은 상황이 되면 나의 욕구불만은 어느덧 마음속에서 욕구 충만감과 쾌감으로 바뀌어 불만 가득했던 육체에서 불만이 분만되어 밖으로 빠져나온다.


투덜대고 싶은 내용을 말이 아닌 글로 쓰는 것이 재미있다. 타인에게 공개되는 글이긴 하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수 있는 대나무 숲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글쓰기다(그러고 보니 옛날에 죽간이라고 해서 대나무를 얇게 쪼개 안쪽에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뜻밖에 부작용을 만났다. 부작용인 듯 아닌 듯한 부작용이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자린고비 남편과 함께 살면서 겪은 에피소드 중 남편의 알뜰 구매 소비 습관으로 인해 몇 년째 오리고기를 사 먹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을 글로 쓴 적이 있다. 그 글을 읽은 친구가 오리고기를, 그것도 백화점에서 파는 오리고기를 택배로 보내 준 것이다.

내 식탁까지 걱정해 준 친구가 정말 고맙다. 서로 아이 키우며 사느라 팍팍한 살림은 매한가지일 텐데 신경 써준 마음이 감사하다.


오리고기를 요리하던 날, 고기뿐만 아니라 친구의 사랑까지 곁들여 먹어서 배도 부르고 마음도 불렀다. 남편도 앞으로는 오리고기를 먹고 싶을 때 사 먹자며 자발적인 반성도 덤으로 얻어냈다. 나는 글을 썼을 뿐인데 현실에 실현되는 상황을 마주한 것이다. 괜히 내 사정을 알려서 주변사람들 마음 쓰게 했나 싶다. 이런 것이 글쓰기의 부작용이다. 



또 이런 사건도 있었다. 이번에도 자린고비 남편 이야기로 발생한 사건이다. 명품 가방 하나쯤 가지고 싶다는 바람을 쓴 글이 있다. 자린고비 남편을 도발하는 방법으로 명품을 선물로 요구해 보겠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뒤늦게 결혼하는 친구 결혼식에 가기 위해 준비하던 중 들고 갈 가방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쓴 글이다.


글을 읽은 가족들이 이번에는 가방을 사주겠다고 난리다. 몇백만 원이나 하는 가방을 말이다. 글이라는 녀석이 이렇게 무섭다. 지니의 램프도 아니고 글로 비비면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고 주변에서 마음 써주는 사람들이 많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나는 복이 흘러넘치는 사람이구나.'

글 쓰면서 다시 느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글 쓰는 게 도리어 무서워졌다. 주변에서 신경을 팍팍 써주니까 말이다.


결혼식장에 다녀오면서 명품 가방이 나에게 아무 의미 없음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가방 메이커가 눈에 들어왔지만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일어나지 않았다. 친구들이 들고 온 구찌나 샤넬 가방 사이에 지하철 매대에서 3만 원 주고 산 내 가방이 놓여있었지만 전혀~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냥 진짜 핸드폰과 화장품 몇 개 넣어 다닐 수 있는 가방이 필요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않는 기특한 나를 발견했다. 물건이 주는 만족감은 유한하고 모든 존재는 결국 멸(滅)할 텐데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고 욕망하는 모습이 때로는 허망해 보인다. 이렇게 쓰고 보니 해탈한 스님 같다. 있으면 사용하겠지만 집착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글을 쓰면서 욕구불만이 욕구분만으로 바뀌었다. 자연스럽게 욕구가 출산하듯 몸에서 빠져나간다. 나의 불만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시원스럽게 배출된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꼭 소유하거나 소비하지 않아도 이미 부족함이 없는 상태다.  


소유하는 물건이 소유하고 있는 주인과 동일시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지만 나는 물건을 통해 정체성을 느끼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이미 정체성이 완성되었다. 나를 사랑해 주는 이들이 많음을,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글쓰기는 나에게 '대나무 숲'과 '도깨비방망이' 다.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소리칠 수 있는 대나무 숲의 역할과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물질적인 만족감, 그 이상의 정신적인 만족감도 뚝딱뚝딱 내어주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다.


행복한 부작용도 조금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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