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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미진진한 독자 Feb 20. 2024

이 많은 깃털은 다 어디서 왔을까

매일 빠지는 털 이야기

반려동물을 키우면 2가지 큰 문제가 있다. 바로 똥과 털! 그중에서 털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일어난 변화 중 하나는 청소기 먼지통에 시커멓기만 한 머리카락 뭉터기 속에 알록달록 아름다운 빛깔을 지닌 털이 합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새털은 강아지, 고양이 털과는 다르게 깃으로 되어있어 눈에 잘 보여 좋다.


큰 깃털은 줍고 작은 깃털은 청소기로 들어간다. 가장 가벼운 솜털은 사람이 움직일 때 날리기는 하지만 솜뭉치 같은 형태라 손에 잡힌다. 특히 겨울에는 패딩에 들어간 오리털이 빠져나올 때도 있어 앵순이 털인지 패딩 충전재인지 구분이 어려워 앵순이는 본인 털이 아니라고 앵무새발 내밀 수 있다. 털로 인한 스트레스는 강아지 고양이에 비해 적은 편인 듯하다.


제 털 예쁘지요?



1. 65g 몸무게를 지닌 앵무새 한 마리 몸에서 어느 정도의 털이 빠질까?


사람 머리카락은 머리에서 떨어지는 순간 청소해야 할 대상이 되는데 앵순이 털은 색이 예뻐서 버리기 아깝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새털은 드림캐처를 만드는 재료로 열처리되어 유통되기도 하고 인테리어 소품으로 칠면조 털이 판매되고 있기도 했다.


사람 머리카락은 케라틴이라는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어 잘 썩지 않는다고 하던데 새털도 털이니 성분이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 부식되지 않아 내구성이 좋고 색과 모양까지 예쁘니 장식품으로 활용도가 높을 것이다.


기괴스럽긴 하지만 앵순이 털을 모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노란 털, 빨간 털, 초록 털, 파란 털, 알록달록 색이 섞인 털, 긴 털, 짧은 털, 휘어진 털, 몽실몽실한 하얀 솜털까지.


1년 동안 앵순이가 생산해 낸 깃털. 청소기로 빨려 들어간 털도 있다.


이사 온 후로 앵순이 털을 모은 지 딱 1년이 되었다. 털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보니 모양도 색도 같은 털이 없다. 털은 그냥 '털'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앵순이 덕분에 털 한 가닥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고 사랑스럽게 바라본 털은 다양한 생각을 열어주었다.



2.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털도 그렇다.


박지원의 글 중에 까마귀 깃털 색을 이야기한 내용이 있다.

까마귀를 보면 깃털이 그보다 더 검은 것은 없다. 그러나 해가 비치면 자줏빛이 되고 어른어른하더니 비췻빛도 된다.
...(중략)...
본디 정해진 빛이 없는데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 버린다. 어찌 눈으로 정하는 것뿐인가. 보지 않고도 마음으로 미리 정해버린다. <능양시집서>


사람들은 마음으로 미리 정하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온몸이 검은색인 까마귀조차도 반짝이는 햇빛 아래에서 깃털을 보면 푸른 듯, 붉은 듯한 빛깔을 드러낸다. 선입견, 고정관념 때문에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현상을 까마귀 깃털 색으로 설명하다니. 앵무새 키우는 집사 눈에는 인상적인 글이었다.


박지원의 까마귀 깃털 이야기가 생각나 다시 앵순이 깃털을 보니 깃털 하나하나가 새롭게 보인다. 모양과 색이 100% 똑같은 깃털이 없다. 깃털이 초록색인가 싶어 보면 노란빛이 보이기도 하고 회색이 섞여 있기도 하다. 심지어 앵순이 몸에 붙어 있던 위치에 따라 털의 모양과 길이가 제각각이다. 한 마리 새가 날기 위해 필요한 깃털이 이렇게 다양할 줄은 미처 몰랐다.



3. 다양한 깃털 속에서 찾은 건강한 자연의 모습


반려동물 깃털 수집하다 갑자기 웬 자연? 그렇다.

빠진 깃털을 하나씩 주워 모을 때는 몰랐다. 한 군데 모아놓고 보니 한 마리 새가 날기 위해 필요한 깃털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꼬리 털도 길이가 서로 다르며 비행 깃도 모양이 다양하다

자연이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생명체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생물다양성'이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인 것이다. 최재천 선생님이 이사장으로 계신 재단 이름도 <생명다양성재단>이라고 하지 않던가. 다양한 생명체가 조화롭게 살면 어떤 변화가 끼어들어도 그 충격을 흡수해 안정적인 생태계 유지가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환경파괴와 지구온난화 등의 이유로 그동안 지구에 함께 살고 있던 동식물 멸종 속도가 빨라졌다. 자연이 점점 병들고 있다는 신호다. 생태계가 다양한 생명으로 채워져야 건강한 이유를 앵순이 깃털을 보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앵순이 몸을 구성하는 깃털을 생태계 전체로 본다면 멸종하는 동식물은 앵순이 몸에서 빠져버린 깃털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것도 더 이상 돋아나지 않는 깃털!


"가벼운 깃털 하나 사라지는 것쯤이야."라는 마음으로 지구에서 사라지는 동물들을 본다면, 종국에는 남아있는 깃털만으로는 날지 못하는 새가 되듯 사람이 살 수 없는 자연환경이 될 것이다. 깃털조차도 위치에 따라 모양과 길이가 모두 다르지 않던가. 생명이 있는 존재는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생태계 순환에 기여하고 있을 터였다.


자신의 깃털이 반가운 듯 한동안 신나게 가지고 놀았다.


앵순이 깃털을 바라보다 생각지도 못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며 덩달아 생각도 성숙해지는 것 같다.


새털같이 가벼운 깃털 속에서 찾은

새털처럼 가볍지 않은 깨달음이다.



ps. 반려동물 깃털 활용 액세서리가 있다니!


일본에서 앵무새를 키우는 집사가 반려조 털을 이용해 장신구 만든 것을 보았다. 손재주 있는 집사가 갑자기 부러워진다. 털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이렇게나 알뜰하게 활용하다니 그저 솜씨가 난다.


그렇다면 나는 앵순이 솜털로 베개를 만들어 볼 테다!

털만 열심히 모으면 되니 특별한 재주가 필요 없을 것 같다. 오리털 베개도 있는데 앵무새 털 베개도 멋지겠는걸?


하지만 털을 베개 만들 만큼 모으려면 앵순이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할 것 같다.



*<개새육아> 매거진은 주 2회 발행합니다. 개이야기와 새이야기가 번갈아 업로드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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