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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Dec 29. 2021

퇴사해서 좋겠다, 자기 일 해서 좋겠다던 이에게

[타인이 내 삶의 주도권을 쥐게 놔두지 마라 #17.]

사실 퇴사한 지 벌써 8년이 되었기에 이제 그 누구도 나에게 "퇴사해서 좋겠다"라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퇴사 1~3년 정도였을 때는 누구를 만나든 "퇴사해서 부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좀 궁금했다. '부러우면 퇴사하면 되는 거 아닌가?'

참, 말이 쉽지. '퇴사' 자체는 쉬울지언정 퇴사를 위해서는 수많은 준비와 고민이 필요하다.


왜 우리는 퇴사를 하지 못할까?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1) 회사의 네임밸류가 있다면 그게 가져다주는 혜택은 무시하지 못한다. 그 안정감과 인정은 생활의 많은 부분을 지탱해주니까. 2)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월급은 중요하다. 이미 고정비용이 있기에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월급이 필요하다. 3) 고정비용을 줄인다고 해도, 그리고 저축액이 있어 몇 개월은 버틸만하다고 해도 만약 퇴사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 명확한 플랜 A, B, C가 없다면 선뜻 퇴사 카드를 날릴 수 없다.


그런데 아마 퇴사를 하지 않고 나에게 "퇴사해서 부럽다", "자기 일 해서 좋겠다"라고 한 사람들은 몇 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퇴사 자체로 인생에서 뭐가 엄청나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뭐, 인생에서 큰 결정을 했고 주변 환경이 달라지니 안 달라진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결국 퇴사 이후의 삶에도 패턴이 생기고 뭐라도 어떤 일이든 하기 시작하면 업앤다운이 있고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건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좋지 않냐고 말한다면, 그래 좋다. 근데 그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하기 싫은 수많은 일들 또한 해야 한다. 그걸 배제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퇴사해서 좋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좀 궁금했다. 그들은 과연 뭘 기대하는 것인가?


1. 의사결정을 스스로 한다는 점? - 결국엔 선택의 문제이다. 선택엔 책임이 따른다. 회사를 나오는 순간 모든 결정에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회사라는 뒷배는 없다.


2.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는 점? - 다른 건 몰라도 이거는 글쎄, 이 또한 선택의 문제지만, 회사를 나오면 말 그대로 받쳐주는 게 없기에 모든 걸 다 스스로 일궈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땅을 논밭으로 만들려면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오히려 난 퇴사 이후에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치열하게 습관을 만들면서 생활하고 있다. 스스로 나태해지면 바로 저 세상이란 불안감 때문에.


3. 회사 스트레스가 없다는 점? - 뭘 하든 스트레스를 통제하는 건 개인의 몫이다. 그건 상황이 바뀐다고 달라질 문제는 아니다. 제가 특정한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회사를 나가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결국 '회사'와 '회사 내 상황'이라는 변수 자체가 문제는 아닐 거란 뜻이다.


4. 기타의 행복감? - 다른 건 뭔지 모르겠다.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정리를 해보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조건부 행복이란 없다. "내가 ㅇㅇㅇ 하면 행복해질 거야"라는 말. 예를 들어, 내가 100억 부자가 되면 행복할 거야. 내가 결혼하면 행복할 거야. 내가 ㅇㅇㅇ에 취직하면 행복할 거야. 기타 등등. 이 또한 관점의 문제라면 할 말이 없겠지만 난 이런 걸 믿지 않는다. 전공이 심리학이라 '주관적 안녕감'이란 수업도 들었고, 긍정심리학에서 '행복'을 주제한 강연도 듣고 책도 봤지만 특정한 조건에 의해서 행복감이 급상승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행복을 결정하는 건 외부 조건이 아니다. 

그런데 정말 퇴사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의 좋은 점도 있다.

1. 스스로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의심하고 몰아붙이면서 기존에는 얻지 못했을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얻고 있다. (성향에 따라 이런 걸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2.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리스크는 다른 말로 adventure라고 할 수도 있다.

3. 원할 때 하늘을 볼 수 있다. - 퇴사한 이후에 생각해보니 이 또한 선택의 문제였나 싶긴 하다. 회사 다닐 땐 눈치가 보여서 하늘을 보러 밖을 나오지도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바빠서 하늘을 보지 못할 때가 있긴 하지만, 바람을 쐬러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밖으로 나간다. 하늘이 보이는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 있으면 제일 좋다. (원하는 사무실 선택 가능하다는 장점 + 하늘이 보이는 사무실은 비싸다는 단점)


4. 기타: 생각만큼 원할 때 쉴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평일/주말 상관없이 계속 일한다. 쉬고 있다가도 일한다. 그래서 이건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일단 좋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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