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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만난 호밀밭의 파수꾼

by 자유인

[호밀밭의 파수꾼]을 완독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부동산경제학>을 가르친 교수님 덕분이었다. 교수님은 대면수업 대신 실시간 온라인 강의로 수업을 진행했다. 이전에도 교수님 강의를 여럿 들은 적이 있었던 터라, 강의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들을 수 있는지 요령을 잘 알고 있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강의를 녹화하는 것이다. Obs studio라는 아주 훌륭한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손쉽게 실시간 강의를 녹화할 수 있다. 강의를 녹화한다는 것은 강의를 지금 듣지 않고 나중에 듣겠다는 말이다. 이게 이 교수님 강의를 듣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온라인 강의를 실시간으로 들어 봐야 제대로 집중도 되지 않을뿐더러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내용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럴 바엔 시험 기간이 임박했을 때 하루 날을 잡아놓고, 미리 녹화해 놓은 강의를 긴장감 있게 몰아서 듣는 편이 낫다. 그렇다면 수업 시간에는? 생산적인 딴짓을 하는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만나게 된 것은 <부동산경제학> 수업 시간 때였다. 늘 그렇듯, 줌 수업에 들어가 출석체크만 하고, 카메라를 끈 뒤 Obs 프로그램을 실행해 강의 녹화를 시작했다. 장소는 언제나 학교 도서관이다. 노트북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교수님의 음성이 희미하게 울렸다. 그를 애써 외면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어디 읽을 만한 책이 없는지 물색하며 서가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집었다. 모든 이름난 명작이 그러하듯, 책 표지가 너덜너덜하게 찢겨있었다.


<부동산경제학> 수업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는 시간이 되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그 책을 웬만해서는 수업시간 외에 읽지 않았다. 혼자 나름의 규칙을 정한 것이다. 이 책은 <부동산경제학> 시간에만 읽는다는 규칙. 그렇게 하면 지금의 일탈이 완결성을 갖춰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훗날 회고할 만한 에피소드를 하나 만들고 싶었다고나 할까. 실제로, 수업 시간에 세계 명작을 음미한다는 것은 참으로 짜릿하고 황홀한 경험이다. 덕분에 수업 시간을 보다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사회와 적절히 조화되지 못하는 주인공 홀든이 끝없이 방황하고 외로워하는 이야기다. 그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퇴학당하고, 학교를 여러 번 옮겨 다닌다. 끝내 명망 높은 사립학교에 입학하지만, F로 도배된 성적으로 학교에서 다시 쫓겨나려고 한다. 그는 학교에서 쫓겨나기 전, 자신이 자진해서 학교를 떠난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그 사실을 모른다. 이번에는 아들이 끝까지 학교에 남아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부모는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홀든이 본가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지만, 홀든은 방학 전, 이미 학교 기숙사를 뛰쳐나왔다. 짐을 싸고 기숙사를 나선 그가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갈 곳이 없어진 그는 고민 끝에 기차를 타고 뉴욕을 향한다. 가지고 있는 푼돈으로 값싼 호텔에서 묵는다. 소설 속 그의 방황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책을 읽다가 한 번씩 강의 중간 체크도 할 겸, 살며시 이어폰을 꽂고 강의를 잠깐 들어보기도 했다. 어느 때나 교수님은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고, 언제나처럼 그것을 열심히 듣는 학생들이 있었다. 방황을 기준으로 수직선을 긋는다면, 방황의 끝에는 홀든이 있을 것이고, 그 반대편에 저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홀든과 저 학생들 사이 어딘가에 있을 나는 어디쯤 있을까.


홀든은 치기 어린 젊은 피를 대변한다. 그는 자신만의 이상적인 잣대로 세상을 평가질하며 숨 쉬듯 혐오감을 느낀다. 세상을 얕잡아보고, 다수의 사람을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누구보다도 세상을 향해 관심을 희구한다. 자기에게 조금만 잘해주면, 엄격했던 평가 기준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그 사람에게 곧장 매료되어 버린다. 시시각각 필요에 따라 바뀌는 세상에 대한 그의 기준은 그가 얼마나 취약한 사람인지를 드러낸다. 그는 모순덩어리다. 때때로 그의 언행이 감당하기 힘들어 책장을 덮고 있기도 했다. 그것은 홀든에게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내 과거의 편린들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책은 홀든의 흑역사를 적나라하게 까발림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사무치게 방황했던 어떤 개인적인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격정적인 방황, 불완전함에는 숨기고 싶은 우리의 과거가 곳곳에 투사되어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더 이상 그를 미워할 수만은 없게 된다. 그에 대한 동정은 과거 자기 자신에 대한 동정이고, 용서다. 사람들은 각자 가슴속에, 자기만의 홀든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영원한 반항아 홀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속 깊숙히 어딘가, 시간에 파묻힌 채 우리에게 화해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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