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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Oct 22. 2018

아무도 모른다

영화 리뷰


믿음직스럽지 못 한 엄마라도 의지하고 싶은 아이들. 엄마가 집에 오자, 쿄코는 (집안 일을 척척 해내던 아이가) 가스렌지 불이 안 켜진다고 하고 또 장남인 아키라는 (혼자서 잘 쓰던) 한자를 모르겠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렇게 엄마랑 붙어있는 시간이 좋았다.

어느 날인가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 잠에서 깬다. 아마도 이 눈물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낙천적이고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았지만 실은 버거운 걸까? 그리고 아들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본다. 그리고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 놀이를 한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학교에는 갈 필요 없다고 했다. 엄마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깔깔 웃는 걸 아들은 또 지긋이 지켜본다.

아키라는 엄마와 이불을 털러 나와서 햇빛 냄새가 배인 이불에 코룰 파 묻는다. 좋구나!

어느 날 쪽지 한 장을 남기고 엄마는 사라진다. 그래도 아키라와 동생들은 곧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일상을 살아간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이인지라, 엄마가 있을 때의 일상을 지켜보려던 힘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집은 엉망이 되어간다.

엄마는 잠깐 돌아왔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떠났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되었는데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 번에도 돌아 왔으니까 이번에도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지만, 어쩐지 불안하다. 아키라는 마냥 기다리기만은 할 수 없어 여기 저기 전화를 하다가, 엄마 목소리로 추정되는 사람과 연락이 된다. 그리고는 말 없이 그냥 끊는다.

그 이후 아마 아키라는 기대를 완전히 접었던 것 같다. 엄마 대신 동생들의 세뱃돈을 대신 준비하고, 동생들에게 이 돈으로 뭘 갖고 싶은지 태연하게 묻는다. 그리고 본인은 글러브를 사고 싶다고 말한다. 어느 날인가 밖에서 다른 집 아빠와 아들이 야구를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그렇게 추운 겨울을 처절하게 살아냈다. 어느새 봄이 왔고 벚꽃이 피었다. 그동안 엄마가 시키던 대로 숨어살던 아이들은 정말 오랜만에 밖에 나왔다. 컵라면 컵에서, 길에서 뜯어온 씨가 싹을 틔웠다.

그래도 엄마는 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아무도 듣지 않은 혼잣말을 중얼대며 길거리를 걷고, 먹을 것을 얻고, 공원에서 물을 받는다. 키우던 화분을 떨어뜨려 깨뜨리고 말았다. 그래, 엄마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 했던 엄마는 과연 행복해졌을까? 야속하게도 엄마는 아키라에게 봉투에 돈을 보내고 동생들을 잘 부탁한다고 했다.

첫 장면은 캐리어를 들고 지하철을 타고 가는 아키라의 모습이었다. 그 캐리어는 엄마와 처음 이 집에 이사를 왔을 때 동생을 몰래 넣어온 가방이었다. 그 때만 해도 가방은 깨끗했고 아키라는 그 가방을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아마 이사오던 날, 그 때는 몰랐을 것이다. 다시 들고 공항 근처로 가는 그 가방 속에 얼마나 큰 슬픔이 들어 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이 감독의 다른 영화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본 적이 있다. 그 때도 해소될 수 없는 꽉 막혀 있다는 답답함이 마음을 짓눌렀다. 이 영화가 그 영화보다 더 한 것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싶게, 멀찍이 바라보는 아키라의 눈빛 때문이다. 자꾸만 잔상이 남는다.



(아키라 역의 야기라 유야는 어린이였는데 무려 2004년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

주변 사람들은 몰랐다. 정말 아무도 모른다. 그 아이들의 마음 속 깊고 깊은 곳에 얼마나 커다란 슬픔이 자리하고 있을지. 특히 그런 것들이 자신의 안에 자리잡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더욱 마음이 아프다. (아는 지 모르는 지 천하 태평..) 이건 단순한 슬픔을 넘어서서 물리적으로(?) 진짜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이 왜 이렇게 어른 처럼 살아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감히 응원도 건네지 못 하겠다. 대견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저 살아가며 더 이상은 고개를 떨구지 않길, 시간이 빨리 지나서 어린이를 벗어나고 그 시절을 흐릿하게 잊어버릴 수 있길, 그렇게만 바랄 뿐이다.

<예고편>

https://youtu.be/B6UZMv1BHzs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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