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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Aug 31. 2022

백수 8년차,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대상을 받다.

두번 째 스물,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내 이야기면 좋으련만, 2019년 교보문고스토리 공모전 대상을 받은 J작가의 이야기다. 


"결혼한지 8년, 9년차 넘어가는 데, 그동안 글쓰면서 돈을 안벌었어요..."

수상소감의 첫머리부터 뇌리에 박혔다. J작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덤덤히 그 말을 꺼냈지만 기약없는 도전을 인내해 준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대목에선 마음속 어딘가에서 울컥 치솟는 감정이 보이기도 했다.


덩달아 콧잔등이 시큰해지며 정말 잘됐다라는 마음이 앞섰다. 같은 시기에 응모를 했으므로 부러운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퇴사 후 2년째 돈한푼 벌지 못하고 글만 쓰는 내 모습이 오버랩 되어 도무지 남일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8이라는 숫자가 맴돌았다. 이런 시간을 6년이나 더 보냈단 말인가? 대한민국 최고의 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이라는 드라마틱한 결과로 해피엔딩을 맞았으니 다행이지 9년차 10년차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나는 도무지 자신이 없다고, 그 중간 어디쯤에서 포기하고 말았을 거라고 고개를 저었다.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은 올해로 10회차를 맞았다. 대상은 무려 5천만원, 본상 수상만 해도 상금이 수백 단위다. 상금도 상금이지만 무엇보다 수상작들은 정식 도서로 출간됨은 물론이고 영화나 드라마 등 2차 저작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시상식 그 자체가 컨텐츠 제작사 대상 피칭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드라마, 웹툰 등 컨텐츠 제작사들이 모두 참여해 숨은 원석을 찾기 위해 매의 눈으로 수상작들을 지켜본다. 우선 교보문고라는 거대한 컨텐츠 기업의 선택을 받은 만큼 2차 컨텐츠로 제작될 확률은 매우 높다. 당장 그 자리에서 계약이 이루어지는 일도 다반사다. 대상은 물론 입상만 하면, 작가라는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은 커리어가 펼쳐질 시작점이기에 글쓰는 사람에게라면 기회의 장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 공모전에 3년째 도전중이다. 첫 번째 도전은 재직중이었는데, 단편을 써서 응모했고 두 번째 세 번째는 퇴사 후 본격적으로 글을 써 장편을 응모했다. 결과는? 세 차례 모두 낙방. 이렇게 큰 공모전에서 글쓰기 프로와 프로에 근접한 무늬만 아마추어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입상은 언감생심일지 모른다.


2~3개월 공들여 쓴 원고를 접수하고 잔뜩 기대했다가 물먹고 나면 그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얼마나 노력했는데, 억울하기도 하고 내 글을 알아봐주지 못한 이름모를 심사위원들이 괜히 밉기도 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잠잠해진 감정으로 원고를 다시 읽으면, 그 형편없음에 또 한번 좌절한다. 이런 수준으로 수상을 바랬다니, 자책하는 일련의 과정은 지난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시간임에 틀림없다.


누군가 이런말을 했다. 애써서 작성한 자신의 글이 형편없어 보인다면, 그것은 그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그저 위로의 말이라기엔 8년씩 물먹고도 9번째 대상을 받은 J작가의 반전 스토리가 지나치게 눈부시지 않은가. 


그 과정이 힘들어 그냥 주저앉았다면, 5번 정도 도전하고 더는 못하겠어 펜을 던졌다면, 8년째 대상이 기다리는 벅찬 미래를 마주하지도 못했겠지. 결국 반드시 감내해야 할 수수료 라는 진리를 뒤늦게 깨달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년이라는 시간은 상상하기 힘들다. 어떻게 그 시간을 버티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돈 한푼 벌어오지 못하는 가장이라는 심리적 압박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미루어 짐작할 수도 없다. 무너지는 자기자신을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다잡기도 해야 하고, 실제 눈으로 보이는 쪼그라든 가족의 생활을, 현실을 감내해야 한다. 그 일은 정말로 고통의 연속이다.


2년 6개월쯤 그 생활을 해보니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미 돌아갈 다리가 불타 없어졌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일을 미치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다. 누가 알아봐주지 않아도,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그저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숙명.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8년이 아니라 8일도 버티지 못할 일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그 지난한 과정 모두 자양분이 되었음을 비로소 믿게 됐다. 그리고 무엇에 홀린 듯, 사표를 던지고 작가지망생의 험난한 길을 스스로 택했다.


온통 내일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과 돈, 현실이라는 장벽에 수시로 부딪히는 이 생활이 순탄하기만 할까? 다시금 굳은 마음을 비집고 회의가 스멀스멀 올라오던 찰라, J작가의 8년 늦은 대상 수상 소감은 한편의 완벽한 메치기 한판이었다. 


한 우물을 깊고 깊게 파다보면 결국 어떤 경지에 이르게 마련이다. 이제 고작 2년 반의 길을 왔을 뿐이라는 추스름이 동시에 찾아왔다. 하고 싶은 건 언제든 어떻게든 해야 한다. J작가도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다녀오겠습니다."

올해 중3이 된 아들이 학교에 간다. 문득 2년 반 동안 익숙해진 아이의 등교 인사가 낯설게 느껴진다. 언젠가 

"다녀오세요" 라는 원래의 인사말로 바뀔 수 있으리라.


휴대폰을 열고 달력을 본다. 지금까지 잘 왔다. 이제 머지 않았다.

잠시 주저 앉아 숨을 고르고 있던 열정 이라는 놈이 자리를 털고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씽긋 웃는다. 나 역시 마음을 일으킨다. 


가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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