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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Feb 25. 2024

유아차와 모부를 아십니까?

나쁜 종자 Bad Seed  _7. 편가르기

요즘 실소를 자아내는 신조어? 가 몇 있는데

'유아차'와 '모부'가 그렇다.


먼저 '유아차'라는 단어는 여초 커뮤니티에서 꽤나 시끄러운 모양이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신조어로 보이는데, 유모차라는 단어를 쓰는 엄마들을 같은 여성이 나서서 '짓눌린 여성으로 살 것이냐?' 라며 공격을 한다는 것이다.


읽고 있는 소설에서 처음 '유아차'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무척 이질적이었는데 그저 내가 남성이고 육아라는 시점에 멀어진 탓인가? 싶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됐다. '유모차' 정말 처음부터 잘못된 의도와 왜곡된 차별의식, 성적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는 인습의 산물인 것일까?


결론은 '글쎄?'였다.

앞선 글에서 '머리를 올린다', '미망인' 같은 단어는 명백히 성비하 표현이 담겼으므로 대체가 시급하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린 바 있지만 이번엔 성격이 조금 달라 보였다.


논란의 '유모차'가 지금의 환경과는 모든 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유산이라는 문제인식은 오케이, 그런데 그것이 담은 의미가 차별적이냐? 성역할고착화를 부추기느냐? 에 대해서는 수긍할 수 없었다. 차별과 구별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 사회구조에서 남성과 여성의 가정 내 역할 구분이 비교적 명확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든 비슷한 형태로 성역할이 나뉘었다. 동일한 능력이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차별'의 영역이 아니라 효율을 추구하는 '구별'의 개념에 더 가깝다.


수렵, 농경 사회를 거치며 부족 내 유아를 돌보는 역할이 중요해졌고, 주로 여성이 그 일을 맡으면서 유모(乳母)라는 모계관점의 개념이 생겼다. 모정이라는 개념도 먼저 생겼다. 사회상의 변화, 평등 문제와는 별개로 여성의 몸과 정서가 남성의 몸과 정서에 비해 육아와 돌봄에 상대적으로 더 적합하도록 진화했다는 물리적 사실 역시 부인할 수는 없다.


유모차 역시 같은 맥락에유래한 단어이고, 유아와 유아를 돌보는 엄마(모)의 도구 정도로 이해한다면 심각한 차별과 비하, 성역할 고정의 의미가 담겼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진화와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생긴 일상 용어를 굳이 뒤집어 새 합의를 끌어내야 하는 공론의 장으로 올릴 가치가 있는가 하는 의문.


유모차-유아차 논쟁에서 '아버지는 유아를 돌보면 안 되는가?'라는 반론은 그런 의미에서 논점 이탈이다. 뜬금없다. 단어, 그 안에 숨은 불순한 본질을 헤아리는 일과 실제 일상에서 각자의 사정에 따라 역할을 논의하고 분담하는 일은 전혀 다른 성격의 문제이므로.


더 이질적인 신조어는 '모부'라는 단어다. 모 유명 작가가 자신의 책에서 창조한 것으로 보이는 이 괴상한 단어는 양성 평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뭐 좋다. 인권이나 사회적 대우에 있어 남녀, 여남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인식에는 백 프로 동의하고도 남음이 있지만, 뭔가 개운치가 않다. '부모'라는 대상을 굳이 남녀로 구분하고 '엄마와 아빠 누가 더 우위인지' 싸우자는 이야기 같아서다. 그 문제의식정말 해소해야 할 양성 평등문제에서 기인한다면 질문, 모가 부의 앞에 서는 것은 괜찮다는 말인가?


차라리 parent처럼 성구분 없이 통합된 개념의 단어를 제시한다면 모를까. 차별을 해소한다는 의미로 역차별을 자행하는 꼴 아닌가. 부모가 싫다면 '양친'이라는 성구분을 포함하지 않은 단어도 있다. 왜? 이건 올드해서 싫은가? '모부'라고 쓰면 왠지 트렌디하고 앞서가는 사람처럼 보이는가?


양성평등의 상징처럼 한때 유행했던 두 개 성씨 함께 쓰기도 마찬가지다. 박이, 김조 등 양친의 성을 모두 따와 쓰는 것인데 그런 이름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이들이 결혼을 해 자녀를 낳으면 그 아이의 성은 어떻게 되는 걸까?하는 궁금증이다. 양친의 성이 박이-김조고 이름이 길동이라면 이제 이 아이의 이름은 박이김조길동이 되는 것일까? 그 안에서는 어떤 성씨를 제일 앞에 세워야 할까? 세대를 거듭할수록 박이김조최장오구oo

아... 생각하기도 싫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여자가 결혼을 하면 원래의 성씨를 버리고 남편의 성씨를 따른다. 여기는 아예 자기 성씨를 버리는 것인데, 이들 나라의 여성인권의식이 우리보다 못하기 때문일까?


옆나라 일본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괜찮다'라는 의미의 일본어는 다이조부다. 다이조부가 뭔가? 대장부(大丈夫)다.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괜찮다고 할 때 '나 대장부야'라고 하는 꼴이다. 일본여자들은 '왜 대장부지? 난 여장부인데?'라고 생각해야 할까?(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아니면 '여자에게 무슨 장부? 난 공주야. 혹은 요조숙녀야. 그러니까 괜찮다고 말할 때 대장부 안 쓰고 나 공주야, 혹은 요조숙녀야 라고 할래'라고 한다면 어떨까? 혹은 그 반대일까? 핑크색, 치마, 긴 머리 이런 보편적 특징마저도 여성성을 고착시킨다며 거부하는, '탈코르셋'을 부르짖는 일부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오버랩된다. 이들은 대장부란 말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일까? 여성성 혹은 남성성 자체는 아무런 죄가 없다.


남북으로 갈리고 동서로 나뉘어 싸우는 것도 모자라 여남, 남녀로 편을 이뤄 서로를 차별하고 비하하고 계산기를 두드려 한치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는 대결구도가 심화되는 현실. 개선이 시급한 진짜 차별은 '유아차'와 '모부'를 쓰느냐 안 쓰느냐 논쟁 안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유아차-모부 논란은 피아를 구분해 상대를 낙인찍고 다투게 하려는, 젠더 갈등을 획책하려는 모종의 종자들이 주도하는 얕은 수작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아차란 말을 쓰든, 모부를 쓰든 그건 자유다. 말릴 생각도 없고 그럴 권리도 없다. 다만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적으로 몰며 적대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위험하다. 자연스러운 역할 구분까지 차별(물론 거의 모든 영역에서 온전한 성평등이나 계급 평등이 이뤄졌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로 몰아 극한 대립을 부추겨서는 답이 없다.


더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의 눈을 가리기 위해 놓은 덫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그런 허튼수작에 걸려 약자끼리 치고받고 증오와 혐오, 분란을 일으킬수록 이미 가진 자들의 기득권과 안온한 삶은 더 공고화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문제에 여남, 남녀 구분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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