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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May 02. 2024

글쓰기 솔직히 만만하게 봤다

글쓰기 만만하게 봤다


그도 그럴 것이

초딩시절부터 글쓰기를 해왔고

고딩시절에는 문과 성향이라고 스스로를 규정지은 후

(사실은 수학이 싫었던 것인데)

'내가 글 하나는 잘 쓰지' 이런 근자감도 있었으니까


사실,

그런 착각은 아마추어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글 말고도 다른 먹고 살 거리가 있으니까

잘 쓰면 좋고 아니어도 뭐 큰 결격은 아닌


문제는 글 밥을 먹고살겠다며

글쓰기 프로의 길에 나서는 과정에서 생긴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막연한 느낌적인 느낌,

보고서나 사내 공지문, 사장님 담화문 등을 쓰면서

어 이 차장 글 좀 쓰는데?라는 말을 종종 들어서일까?

자신감도 붙은 나머지


나는 글쓰기로 먹고살겠다

선언하고 사표를 투척한 이후

얼마 못 가 알게 됐다

수렁에 빠졌다는 사실을


발등에 불 떨어진 심정으로

몇 개월 두문불출하며 어렵게 완성해 낸 원고가

수십 개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노라면

또 깨닫게 된다

돌아갈 다리마저 불타버렸다는 사실을


대체 내 글이 뭐가 부족해서?

패닉에 빠져

글쓰기 책들을 찾아다닌다

그렇게 탐독한 글쓰기 책들이 수십 권


그런데 웬일?

아무리 읽어도 그땐 뭔가 알 것 같은데

막상 글을 쓰려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내 스타일로


이게 맞나? 아닌 거 같은데?

희망을 품고 좌절하고의 반복

수많은 착오 끝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유려한 글솜씨? 아름다운 문장? 독특한 표현력?

그런 건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던 유니콘 같은 것이고

어떻게 쓰든 결국 읽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고

읽는 내내 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붙들어 두는 것

이야말로 글을 잘 쓰는 것이란 사실을


물론 알게 됐다는 것이

그렇게 쓸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더 혼란에 빠지고 만다

지금까지 멋 부리며 혼자만의 세계에 심취해

의식의 흐름대로 쏟아낸 것들이


사실상 토설물에 가깝다는 팩트를 깨닫고는

한동안 실의에 빠진다

그런 시간이 무려 4년

이 길에 웬만큼 의지와 확신이 없고서야

견뎌내기 힘든 인고의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독자의 반응을 접하기 전엔

내 글 수준이 어떤지 알 길이 없다

그게 두려워 혼자만의 글쓰기를 해봤자

일기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


때론 친절하고 때론 혹독한

피드백이 무엇보다 절실한데

브런치는 그런 면에서 잔인할 정도의

반면교사가 되어주었다


별생각 없이 써서 올린 글이

대문에 픽되면서

수천, 수만의 조회수로 어리벙벙하게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무척 공들여 쓴 글이

조회수 100도 안 되는 무반응으로

머리를 감싸 쥐게 하기도 한다

무슨 이유로 픽되고 안되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


지금이야

글내용과는 상관없이

서로 조회수와 라이킷을 올려주

품앗이 품평이 넘쳐나면서

객관적인 피드백 기능을 상실한 것은 아닐까

안타깝고 실망 마음이 크지만,


아무튼

이곳에서의 경험으로

점점 선명해지는 진실 하나는 얻게 됐다


"정말 좋은, 정말 필요한 글이라면

어떻게든 발견된다"

는 사실을


하여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저 쓸 뿐"

이라던 아이젝 디네센의 고뇌처럼

나 역시 아침에 일어나 눈뜨면

그저 읽고 쓸 뿐


최근,

상업적 글쓰기에 발을 디뎠다

'당신 곁의 랜선 사수'라는 모토를 가진

P모에 글을 올리기로 계약하고


'밑 빠진 회사'

초고를 마쳤다


이미 같은 콘셉트로 책 한 권을 냈고

각론 격의 원고를 a4 300장(단행본 3권)분량

다시 쓰기를 해왔건만

고작 10페이지 이내로 압축해 쓰는 일은

왜 이리 더디고 어려운


파스칼은 친구에게 10여 장이 넘는 편지를 보내며

추신으로 이렇게 썼다고 한다


"시간이 없어 짧게 쓰지 못해 미안하네..."


현명한 독자님들이여

부디 혹독한 채찍을 휘둘러 주세요

가끔은

달콤한 당근도 곁들여서


더 단단해지고

더 쓸모 있고

더 겸손한

글쟁이가 되도록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글을 배설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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