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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May 23. 2024

퇴사하고 책이나 내볼까? 버킷리스트? 버킷리스크!

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자기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내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올리고

출판사 제안을 받았다거나 투고를 해서 책을 냈다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읽으면

아, 어쩌면 나도? 싶다


글쓰기 플랫폼이 뭐가 있지?

검색해 보니

브런치라는 게 있다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재수, 삼수를 해서 합격했다는 사람도 꽤 있고

심지어 브런치 합격 비결 강의도 있는 것 같다


아니,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최근 1년에 책 한 권 안 읽는 성인의 비율이 60%를 넘는다는 기사를 봤는데 글쓰기는 또 다른 세상인가 싶다 


글쓰기에 진심인데다 

글좀 쓰는데? 라는 평을 곧잘 들었던

나 정도면 한번에 붙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한다


운이 좋으면 단번에도 합격하지만

한번 정도는 떨어뜨리는 모양이다

여자처자  브런치에 합격하고

그동안 일기장에 다이어리게 끄적였던 글들을

꺼내 다듬고 감탄한다


햐. 이런 글을 내가 쓰다니?

베셀 작가가 별거냐 싶다

약간은 떨리는 마음으로 발행 버튼을 누른다

두근두근


조회수가 하나 둘 올라가고

좋아요도 달린다


초심자 효과일까? 다음 메인에 내 글이 오르면서

수백, 수천회 조회수가 나오고 구독자도 하나둘 생긴다


와! 이렇게 작가가 되는 건가

꿈에 부푼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진심을 담아 담담하게 올리면

사람들이 공감해주는구나 싶다


하루 이틀 열심히 글을 올리다보면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계약도 하고

엄연한 출간작가가 되겠지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글을 올릴수록  

초반 기세는 봄눈 녹듯 어디론가 증발한다

조회수는 100회를 안 넘고 구독자는 좀체 늘지 않는다


다른 사람 글을 봐도

내 글보다 딱히 나은 것도 없는데

좋아요도 구독자도 압도적이다

힘 빠진다


알고보니

글을 읽지도 않고

자신의 글에 방문을 유도해

품앗이 좋아요를 노리는 좋아요 빌런들의

묻지마 클릭질이 대부분 이었음을 깨닫고

좌절한다


댓글 역시

글 내용과는 상관없이

서로를 작가님으로 부르며

상부상조하는 친목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녀 보인다


글로 승부를 보겠다며

끓던 열정은 차차 식고

점차 글 올리는 횟수가 줄어준다

구독자 10명 언저리 발행글 10개 정도에서

멈춘지 오래다




글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책을 내고 인세를 받고 그 콘텐츠로

강연을 뛰는 일은 어디까지나 프로의 영역이다

아마추어의 마음가짐으로, 실력으로, 노력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높은 벽임을 새삼 절감


가장 큰 문제는

자신만의 유니크한 이야기거리

소프트웨어가 있느냐는 거다


아마추어의 영역에서야

자신의 일상을 쓰던 시를 쓰던 소설을 쓰던

자유지만

프로의 영역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얼굴도 모르는 낯선 타인의 하루를

궁금해할 독자, 특히 돈 내고 들여다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유명인도 아니고 어떤 분야의 일가를 이룬 전문가도 아닌 사람의 

일상이나 감상적 느낌, 의견 따위를 돈까지 내고 사서 볼 사람은 0에 가깝다


내 글이 돈이 되려면

누군가의

풀리지 않는 문제를, 

잠못드는 괴로움을,

끝없는 궁금증을

지금 당장 필요한 위로를

자신만의 노하우로 깔끔하게 해소해 주어야 한다


나에게만 특별한 내 인생을

담담히 적는 일만으로는

그 어떤 독자의 니즈도 해결할 수 없다


내 인생을 글로 쓰면 소설  권이 나온다 말하는 사람치고

상 빈페이지를 열고 어디 한번 써보라고 들이밀었을 때

일필휘지로 술술 푸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과 실제 손에 든 것 사이의

크나큰 괴리를 깨닫고 뒷걸음질 칠뿐


프로와 아마추어를 나누는 선명한 기준은

바로 돈이다


독자의 돈으로 교환될만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없는가? 의 문제


프로의 영역으로 가까이 갈수록

평가의 기준은 냉혹해지고 디테일해진다


내가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나?

기본가정도 흔들린다

초중고 시절 사내 글쓰기 대회에서 상도 받고

직장에 들어가 보고서를 쓰면 

'이대리 글 잘 쓰네?'

했던 몇 번의 의례적 칭찬으로


'내가 글 좀 쓰지 훗'

근자감에 빠진 사람이라면 곧 시리도록 차가운

현실을 깨닫게 된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내가 그랬으니까


쓰면 쓸수록 글쓰기가 더 어려워진다

적당한 문장,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머리를 쥐어 뜯는다

글이 길어질수록 장황하고 핵심이 없다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는게 더 많아진다

 사실 자체를 몰랐다 사실을 알게 된다

책 한권만 읽고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더닝-크루거 현상을 깨닫고 몸서리 친다


절로 겸손해지는 일

프로를 지향하는 아마추어의 숙명이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는 것이 프로다

실력은 기본 중 기본이다

거기에 자신만의 철학, 가치관, 인생을 바라보는

확고한 시선 따위가 따라붙어야 한다

그 중 하나라도 빈다면 사이비다


버킷 리스트로 책 한 권 내기

그 자체가 목적이고 큰 의미를 가진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다

시작이 반이라고 그렇게 시작해서

더 큰 결과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 이상을 원한다면

책 내기를

'버킷리스트'에서 끄집어 내야 한다


그 정도의 염원과 애착과 노력으로

나오는 책은 자칫 민폐가 되기 쉽다

작가 자신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창고에 쌓여 썩어가는 애물단지,

버킷리스트가 아니라 버킷리스크가 되어버리는 거다


나는 종종 있는 강연에서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한다


"조직문화, 사람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글이라는 하드웨어에 담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조직문화 분야에서 17년간 일했고

대학원에서 인력관리학을 전공했고

퇴사 후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관련 영역을 공부했고

책을 두권 냈고

시간당 50을 받는 워크숍, 특강 등 여러 차례 진행해 봤지만

누군가 내게 그 분야 프로냐?라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전문가라는 말을 올리기에도 조심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낸 두 권의 책은

아무래도 버킷리스크이지 싶다


1년이면 6~7만의 책이 쏟아져 나온다

읽지는 않는데 쓰고 싶은 사람많은 웃픈 시대의 자화상이랄까?


투고든, 청탁이든

생판 초짜가 기획출간을 통해 책을 내는 일은 드물다.

운 좋게 편집자의 눈에 띄어 책을 내도

1000~1500권 정도인 초판을 다 팔고 중쇄 이상 찍는 일 역시 5% 도 안된다. 


최소 6개월 이상 초고를 써야 하는 엄청난 노력과 내 노하우가 총집결된 지난한 과정의 결과물이지만

그에 비해 성과는 초라하다

책 한 권 냈다고 무언가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일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단권작가로 끝난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

무례한 사람에게...

하마터면 열심히...


베셀은 수만 권 중 손가락에 뽑는 정도다.

차라리 복권을 사는 것이 들이는 노력대비 효과가 더 좋을지도 모른다


특히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접고

글쓰기에 올인하면 어떨까 고민중이라면, 

프로가 될 요량이라면


버킷 리스트

'내 이름으로 책내기'

따위 말랑말랑한 소망으론 어림도 없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글쓰기로 밥먹고 살려면

최소 몇년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터널에 들어서는

인고의 과정 겪어야 한다는 사실 

먼저 받아들여야 한

'splendid isolation'

찬란한 고립을 스스로 택해야 한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그 누구도 모르지만

그래도 좋다면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는 거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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