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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Jun 11. 2024

퇴사 4년, 마흔여덟. 조직문화일로 먹고살기

출사표

드디어 빈털터리가 되기 직전이다

4년 넘도록 고정 수입도 없이

그래도 잘 버텼다고 박수라도 쳐야 할까?


퇴사 후 1년 차까지는 나름 여유로웠다

명색이 대기업 17년 차로 일하면서

꿍쳐둔 비자금이 제법 됐다


퇴직금과 위로금을 한 푼 남김없이 집에 넘겨 주고도

매월 5~60 정도의 용돈은 쓸 수 있었다

물론 절반이상은 보험료, 관리비 등 고정비였으니

실제로는 절반의 플렉스였던 셈이다


여유가 넘치다 못해

1000만 원짜리 자전거를 신품으로 지르기도 했으니까

(비싸서 못 자 CX 이라는 별명을 가진 영롱한 로드는

3개월도 못 타고 중고로 떠나보내야 했지만...)


그러다 2년 차부터

조금씩 쫄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1년 정도면

어떤 결론이 줄 알았는데

웬걸


조직문화와 사람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글이라는 하드웨어에 담는 일을 해보겠다며

호기롭게 내지른 퇴사


17년의 현장 경력에

소싯적 글 좀 쓴다는 소리도 곧잘 들어왔다

스스로도 '나 좀 쓰는 듯'이라며 착각하고 살았으므로

조금만 각 잡고 집중하면 금세 이 분야의

프로가 될 줄 알았다


일인자 까지는 몰라도

여기저기 컨설팅이나 워크숍, 특강 의뢰가 들어와

그일 만으로도 밥 먹고 살 줄 알았다


최악의 경우

어디든 재취업을 해서 먹고는 살 수 있다고

믿었다


4년이 쏜살같이 훌쩍 지나

마흔여덟이 된 지금,

그게 크나큰 착각이었음을

진작에 깨달았더랬다


회사에 그냥 붙어 있었다면 잃지 않았을

기회비용 역시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연봉만 7~8000. 각종 수당과 보너스,

이런저런 복지혜택까지 감안하면

못해도 수억을 손해 본 셈이니까


그렇다면 지난 4년은

무의미하고 철저히 낭비된 시간이었을까?

천만에, 오히려 그 반대다


회사원 시절보다 더 밀도 있고 체계적인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자부한다

퇴사 첫날부터 기록으로 남긴 결과물들이 그 증거다


약 540여 권의 책을 읽고 그중 200여 권의

관련 서적을 파일로 정리했다

분량으로 치면 약 4000~5000장 가량 된다

매일 내 생각을 글로 써서 그 분량 역시 1500여 장

a4지 100장 정도면 단행본 1권 분량이 되니

650권 정도의 글을 써본 셈이다

브런치에도 100여 편이 넘는 내 생각을 기록했고

900여 명의 소중한 구독자도 얻었다


그 결과

사람과 조직문화에 관한 책도 2권 정식 출간했다

그중 조직문화 관련 책은 

해당 분야 베셀 6주를 기록했고, 1쇄를 모두 팔았다

출판사에서 조금 다듬어 중쇄를 내보는 것이 어떻겠냐?

제안도 있었지만 출간 후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빈틈 때문에 사양했다


출간직후

운 좋게 대기업과 교육청 등 굵직한 곳에서

요청이 들어와 특강과 나름 대규모 워크숍도 몇 차례 진행했다


이런저런 부수입을 합쳐 따져보니

퇴사 후 내가 쓴 글만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약 1200만 원가량이었다


4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수입이니

연봉으로 치면 300 정도 될까?


십여 년간의 무명시절 동안

월 10만 원도 못 벌어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연기가 좋아 놓지 않았더니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던

어떤 조연배우의 시상식 수상소감이 유독 가슴을 찔렀던 이유


문제는 실력이었다


돌아보면

출간한 책과 출강 모두

내용면에서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부끄러운 기억에 더 가깝다


무지하면 용감해진다고 했던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무모하게 내질렀던 결과

단발성 이벤트로 그치고 말았으니까


그럼에도

그 시간들이 자양분이 되어

매일 조금씩 나를 성장케 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 큰 소득은

내가 누군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지,

왜 이 일을 하고자 했는지,


진지하게 묻고

그 답을 하나씩 찾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덧붙여

죽기 직전까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기 위해

발버둥쳐야 한다는 사실도




수천의 비상금과

수억의 기회비용을 잃고

계좌 0원을 눈앞에 두고 있는

2024년 6월의 11번째 날


나는, 인생 2막을 열기로 선언한다


온갖 비루함과 자괴감과 불확실성을 무릅쓰고

묵묵히 축적해 온 인사이트를

밖으로 내놓고 심판받는 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생산적인 일을 하기로 한다


우왕좌왕 엉망진창이라도 그 과정을 겪고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는 스토리를 만들어가기로 한다


사실 구체적인 준비는

두어 달 전부터 시작했다


우선 내 브랜드부터 만들었다

이름하여


'OHDin'


Organization and Human Design의 앞글자를 땄다

in은 한자 사람人 이면서, 영문 in  들어가다의 이중의미를 품고 있다

그것들을 합치니 오딘이 된다


"회사는 전쟁터고 밖은 지옥이야."

나는 현역시절부터 이 말이 정말이지 싫었다


전쟁터가 대체 뭔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짓밟고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인간말살의 현장 아닌가?

심지어 함께 일하는 동료조차 잠재적 경쟁자로 여겨 경계하고 질투하며

도태될까 두려워 밤잠 설치는 비극의 현장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비유적 표현일지라도 나는 그 말이 끔찍했다


회사는

전쟁터 Battle field 가 아니라

놀이터 Play ground 가 되어야 한다

인간은 놀이터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활동적이 되고 협동심을 배우며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줄 안다


오늘날 조직이 갖춰야 할

덕목이란 바로 놀이터의 생동감이다

그 중심에는 인간, 그 자체가 있다


OHDin의 존재 이유는

'사람이 사람답게 일하는 세상'을 꿈꾸고 만드는 것이다

남이 써놓은 것이 아닌 오롯이 자기대본으로 살고싶고

일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고

죽을때까지 매일 한뼘씩이라도 성장하고 싶은

이 시대 직장인들을 위해

즐거운 일터를 만들어 보겠다는 다짐


로고도 손수 그려 만들고


오딘 OHDin 로고


O~D로 갈수록

그라데이션으로 점점 밝아지는데

이는 희망, 미래를 뜻한다

결국 회색에서 멈추는 이유는

인간의 일에 흑이냐 백이냐

일도양단되는 절대 원칙이란 없고

무엇이든 섞이게 마련이라는 본질을 상징한다


손을 들고 멀리 내다보는 사람은 마스코트 '오드씨'다


오드씨


상체 포즈는 고정되어 있지만 하체의 형태

(짝다리 포즈, 발의 모양 등)는 바뀐다

멀리 내다보고 장기적인 방향성을 추구하려면

안정과 변화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OHDin의 메인 비즈니스는 조직진단 및 솔루션이다

USP(Unique Selling Point)는 '밑 MEET' 이라는 콘셉트다


그렇다

전래동화 <콩쥐팥쥐>의

밑 빠진 독 에피소드에서 따왔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워 놓으라는 계모의 지시에

착한 콩쥐는 묵묵히 물을 길어

깨진 독에 붓기 시작한다

얼마나 했을까?

채워지지 않는 독을 바라보며 울상을 짓는다

'나도 원님 잔치에 가고 싶은데'

그때 두꺼비가 나타나 밑을 메꿔주고

콩쥐는 마침내 원님의 잔치에 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


나는 S그룹 W계열사 조직문화 책임자 시절,

밑 빠진 독을 종종 떠올렸다

펀더멘탈이 완전히 망가져버린 조직에

그 어떤 인풋(사람, 돈, 시간)을 쏟아부어도

무소용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만 손을 놓아버렸다

사장 보고서에 '밑 빠진 독' 한 장을 그려 넣고

"더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라는 항복선언


그 최종보고서를 끝으로 팀을 (강제로) 옮기고

2개월 후 회사를 나왔으니

나의 조직문화 여정은 잔혹동화로 끝난 셈이다


바보 같은 콩쥐는 왜 '밑부터 메꿀' 생각을 못했을까?


MEET은 건강한 조직이 갖춰야 할 네 가지 펀더멘탈

Motivation/Emotion/Envionment/Trust

에 대한 정의다


로고는 이렇다


밑 로고


블루보틀의 로고


를 오마주 하고 싶었으나, 생각대로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추어의 한계.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므로 이 정도면 됐다. 아쉽지만 성장해서 자금이 생긴다면, 실력 있는 프로에게 맡기기로 한다


진단문항을 구조화해 진단툴도 만들고

https://forms.gle/amKJr1vGTPJtnju99


진단결과에 대한 분석자료는 이렇다


쉽고 직관적으로 만들려고 했다. 조금만 조직문화에 애정이 있는 오너, 팀장, 담당자 라면 진단 결과 보고서에서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네 가지 펀더멘탈 중 어느 하나라도 망가졌다면,

즉 밑이 빠졌다면 아무리 인풋(사람, 돈, 시간)을 쏟아봤자

무용하다는 가정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싱킹포인트(Sinking Point)가 수면 아래에서 생겼다면

아무리 커다란 배라도 침몰하는 법이다

타이타닉의 교훈은 멀리 있지 않다

문제를 정확히 정의할 수만 있다면 솔루션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겨울이 되면 눈이 내린다' 같은 뜬구름 잡는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로 효과가 있을 솔루션을 구체적으로 도출한다. 탁상공론이 되지 않으려면 실제 현장으로 내려가 진단하고 관찰한 후 가장 취약한 부분부터 적용해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조직문화 활동은 밑 MEET이 탄탄하게 다져진 이후에 비로소 효과가 있다. 이땐 뭘해도 먹힌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나는 이 과정을 실제 조직으로 들어가 실험해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구체적 실행내용은 추후 소개를 할 예정이다




두서없이 이것저것 이야기했지만

큰 틀은 어느 정도 완성 됐다

남은 건,

실행의 디테일과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가?

증명의 문제다


여기가 아닌가벼? 좌초할 수도 있고

운 좋게 기회를 잡아 가설을 증명하며 흐름을 탈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회사, 좋은 문화, 좋은 일이란 무엇일까?

끝없이 고민하고 실험한다.

이왕이면 반박자라도 앞서서 이끌어가고 싶다

너무 진지하고 어렵지 않게 휙휙 그려보고 싶다


그래서 Carry cultur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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