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가 999명이 됐다
그동안 3번을 탈퇴하고 4번 재신청한 끝에 2년째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다
올린 글도 어느새 164개가 됐다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고 얼마간은 의욕에 불타 열심히 글을 썼다. 초심자의 행운이었는지 브런치 알고리즘의 특징인지는 몰라도 초기 몇 개의 글은 올렸다 하면 메인에 오르고 에디터픽에 선정되면서 조회수 천 단위에서 만단 위까지 오르는 진기한 경험을 했다
아, 내 글이 이 정도였어?
어깨뽕이 잔뜩 들어갈 즈음, 알고리즘은 배반을 때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무리 글을 올려도 조회수는 100 언저리에서 맴돌고 좋아요 수는 10여 개에 머문다. 지칠만하면 뜬금포로 메인에 올라 조회수가 오르고 댓글도 달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대체 어떤 글들이 브런치에서 먹히는가? 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엑셀표를 만들어 메인에 자주 오르고 좋아요나 댓글이 많은 글을 분석하기도 했다. 글의 주제, 내용, 제목, 구성 등으로 나누어 내 글과 어떻게 다른가? 한 달 정도를 끙끙대며 분석한 결과는 '잘 모르겠다'는 것
명확히 알게 된 점이 있다면, 브런치는 3~40대 여성이용자가 많고 에세이 위주이며 주로 '이혼' '결혼생활' '우울증' '소비' '육아' '퇴사' 같은 주제가 메인 스트림이라는 정도
내 경우 2020년 퇴사를 했는데, 퇴사 후 먹고사는 일, 퇴직금, 퇴사 이유 따위 주제로 구체적인 숫자와 회사의 실명 등을 제목에 넣어 글을 올리면 여지없이 주목을 받곤했다. 대부분의 구독자는 퇴사를 주제로 한 글에서 생겼을 것이다
정작 내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커리어의 전부인 '조직문화'였다. 17년간 대기업 조직문화 책임자로서 경험과 퇴사 후 4년이 넘는 학습으로 생긴 통찰을 꾹꾹 눌러담아 글을 올려지만 반응은 '퇴사' 주제만 못했다. 잘 해야 한다는 의욕이 넘쳐 힘이 잔뜩 들어간 탓이었을까? 내 글은 나날이 발전하기는 커녕 더 퇴보하고 있다는 한동안 좌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또다시 브런치를 탈퇴해야 하나? 고민에 빠진 어느 날, 글이 주목을 못받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사실을 알게 됐다
첫번째는 이른바 '품앗이' 문화
내 글에 누군가 좋아요를 눌러 주면 나도 그 사람 글을 찾아가 좋아요를 클릭해 주고, 댓글을 달아주면 역시 맞댓글을 달아주는 일종의 상호작용이 큰 영향을 미친다. 품앗이에 참여하지 않고 구독도 하지 않고 자기 글만 주구장창 올리는 경우 주목받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품앗이를 하지 않는다. 그저 어떤 글의 제목이 끌리면 읽고, 또 내용이 정말 좋으면 좋아요를 누르고 어떤 식으로든 참견하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을 때 댓글을 달뿐이다. 맞구독도 없다. 이기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아무 의미도 없고 진정한 피드백도 아닌 품앗이가 글의 수준을 높이는데 무슨 도움이 되나 싶어서다
실제 읽는데만 5분 이상 걸릴 긴 장문의 글도 발행과 거의 동시에 좋아요가 달리기도 한다. 그럴 때는 오히려 기분이 상한다. 차라리 세심히 읽고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 지적질하는 글이 오히려 반갑다. 그런 반응이야 말로 내 글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고 발전할 수 있게 하는 진정한 피드백이기 때문이다
'품앗이' 활동을 해보니 100명 중 2~30명 정도는 반응이 오더라!'는 글을 공개적으로 올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 그 마음이야 이해는 하지만, 심할 경우 내 글의 진짜 수준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가 좀처럼 힘들어진다
두 번째는 브런치만의 '알고리즘' 이다
브런치는 알다시피 메인 화면에 띄우는 글과 에디터픽에 선정되는 글들이 있다. 특정 주제, 제목, 작가의 경우 꾸준히 '알고리즘'에 간택 받지만, 어떤 이유와 근거로 글이 선택되고 게시되는지 그 이유는 '며느리'도 모른다. 선택된 자만이 조회수와 좋아요 등 반응의 수혜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브런치의 개편을 통해서였다.
몇개월 전, 브런치는 수익화를 명목으로 큰 개편을 했다. 크리에이터 제도를 도입하면서 요일별 연재란을 메인 화면에 별도로 만들고 몇몇 선택된 작가들에 한해 시험 연재를 제안했다. 무슨 일인지 내게도 제안이 왔다. 지금이야 누구나 연재란에 글을 쓰지만 선택된 몇 작가들에게만 허용된 연재는 말하자면 신문의 1면을 독점하는 혜택과도 같았다.
그 효과는 컸다. 글을 올리는 족족 예외 없이 수천~수만의 조회수와 100개 언저리의 좋아요, 2~30개의 댓글이 달렸었다. 그 이전에 올리던 '조직문화' 주제 글과 크게 달라진 것도 없었다. 노출도가 달라졌을 뿐인데 이렇게 차이나는 반응이라니? 약 두 달 후 연재가 전면적으로 허용되면서 노출효과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글의 반응도 원상 복귀됐다.
헛웃음이 났다. 그 사이 글의 주제나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달라진 것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지금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고리즘으로부터 철저히 버려졌다. 이 악물고 외면하나? 싶을 만큼 메인에 오르는 일도, 에디터픽이 되는 일도 없다
이래서야 내 글의 수준을 정확히 알 수 없지 않은가?
글의 수준, 상호작용, 알고리즘을 만족시킬 요인
이 세가지 허들은 여전히 극복하기 힘든 난제다
그래도,
쓴다. 진부한 말일 수 있지만 내 글을 봐주는 독자가 1명이라도 있다면 쓴다. 적어도 글의 수준 이라는 본질만큼은 노력을 배신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반응이 없으면 없는 대로 뜬금포로 터지면 터지는 대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글과 씨름하는 동안 한명, 한명 거북이 걸음이라도 전진한다
그런 의미에서 999명은 내게 나름의 의미가 있다. 유튜브를 보면 구독자 1만 명, 10만 명도 수두룩한 시대에 그깟 1000명이 뭐 대수냐 싶겠지만, '조직문화'라는 지루한 주제로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새삼 뿌듯하달까? 꾸준히 반응해 주는 고정 독자도 생겼고 간혹이지만 응원댓글도 받으면서 더 잘 써야겠다는 동력을 얻는다
지겹게 말해왔지만,
돌아갈 다리도 불타 없어진지 오래다
1000번째 독자에게 감사의 이벤트라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