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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Nov 16. 2022

로또 같은 독일 주재원 생활

주재원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이곳 먼 땅 유럽, 독일에서 주재원을 하게 된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더 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자기소개에도 적어 놓았지만 나의 꿈은 백수이다. 스무 살 때부터 혼자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집안일에 자신이 있고 정리정돈도 깔끔한 편이며 요리도 잘한다. 그래서 이런 집안일 위주로 하면서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고 무엇보다도 일에 치여 바쁘고 힘들게 살아가기가 싫다. 그것도 서울, 수도권에서 대학교 이후로 계속 살다 보니 무한경쟁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그 경쟁 속에서 사는데 또 그 경쟁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하기도 하니..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일단 그냥 일을 하기 싫었던 것 같다. 요즘 같은 고령화 시대에 대학교 졸업하면 못해도 30년 이상은 일을 해야 되는데.. 그냥 안타깝다. 한 번 사는 인생에서 평생 스트레스받으면서 일만 하다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싫고 굳이 일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것이나 배울 것도 많고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여유롭게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말이다. 


나도 안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이 나이에 이런 철없는 소리나 하고 있네라고 얘기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너 돈 많니라고 물어보기도 할 거고 말이다. 그래도 어떻게 하나? 난 그냥 백수가 꿈인걸..


이런 나에게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은 너무 최적의 환경이었다. 경력으로 입사한 2015년 이후로 회사는 지속 수직 성장을 거듭하였고 대기업의 타이틀을 단 것도 모자라 업계 국내 1위, 전 세계 10위권의 회사가 되었고 복지와 환경, 그리고 연봉과 보너스는 매년 상승하였다. 물론 그만큼 다니면서 힘이 들었던 적도 많았고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들었었지만.. 그런 내게 예상치도 못한 변화가 찾아왔다.


바로 코로나 이후 회사가 재택근무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이 재택근무가 코로나 시국을 위한 일시적인 재택근무가 아닌 지속적인 상시 재택근무로 바뀌게 된 이후부터 가뜩이나 출퇴근 거리가 멀어 힘들었던 내게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수직 상승하게 되었다. 게다가 후리한(?) 상태에서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내가 꿈꾸던 백수라는 모습에 조금은 가까운 생각이 들었고 틈틈이 집안일도 하고 가족과의 시간도 더 많이 보내게 되니 더할 나위가 없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우리 딸아이는 19년에 코로나가 종식하기 바로 직전에 태어났고 돌-두 돌-세 돌이 지나서도 아빠가 집에 있는 모습만 바 왔기에 아빠는 분명 백수인 줄 알았을 것이다. 이에 가끔씩 회사를 나가야 할 날이 되면 대성통곡을 하면서 아빠를 그리워했고 회사에 가야 되는 아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곤 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많게는 두 번 이상 가끔씩 회사에 나가더라도 앉고 싶은 자리에 어디든지 앉을 수 있는 자율좌석제로 인해 일할 환경도 너무 좋았고 사내 카페가 있어서 좋아하는 커피도 무료로 언제든지 마시면서 편하게 근무할 수 있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까 가끔씩 생각이 든다.


주재원을 통해 해외법인에서 일을 하게 되면 대부분의 회사가 아마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이 들지만 근무 환경이 많이 열악하다. 특히 내 경우처럼 한국 본사에서의 복지나 근무 환경이 특출 나게 좋을 경우 어쩔 수 없이 비교할 수밖에 없으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해외 법인은 말이 한 회사의 해외법인이지 사실 아예 다른 회사이다. 전 직원 몇십 명 정도가 되는 회사가 각자도생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법인 유지를 위한 실적 및 성장에 목매달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냥 한국의 일반 중소기업과 비슷하다. 복지 물론 1도 없고 재택? 여긴 마스크도 안 쓰고 다닌다. 재택은 해외에서는 구글 같은 회사에서만 나올법한 얘기다. 또 앞서 해외법인은 본사와는 전혀 다른 회사라고 했지만 그러기엔 또 본사에서 전사 방향성과 목표를 토대로 무궁무진한 챌린지를 쏟아내며 끊임없는 실적 압박이 들어온다. 주재원이란 신분은 이러한 해외 법인에 본사를 대표하여 파견을 나가 니 역량을 다 쏟아부어 법인을 회개시키고 성장시키라는 공통 목표가 설정이 된다. 


하루 일과 및 한 달 주기의 일정은 비교적 단순하다. 아침 일찍 기상하여 출근하게 되면 밤사이 쏟아진 메일 업무를 처리하고 동시에 오전에는 한국 시차와 겹치는 유일한 시간대이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메신저 교류를 하거나 화상 미팅에 참석한다.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이 사실 오전이다. 12시가 넘어서까지 오전에 끝내지 못한 일에 매진하다가 점심은 겨우 컵라면이나 아시아식당 가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오후에는 이제 시간대가 맞는 각 유럽 법인 담당자들과 실시간으로 교류하며 일을 한다. 본사에 보고할 리포트나 장표는 끝도 없으며 메일을 주고받으며 일해야 되는 담당자는 회사 내/외부 수두룩하고 유럽 상무님을 포함한 각종 높으신 분들은 수시로 연락 와 지금 하던 일도 멈추게 하여 나름 정시에 퇴근 한번 해보려고 세워놓은 나래비를 몽땅 다 망가트려 놓는다. 쉴 새 없는 걸려오는 업무 전화에 이렇게 화장실 한번 겨우 가지 못하고 일을 한다고 하는데도 이러한 노력에 비해 결국 풀리지 않은 일들이 대부분이라 고스란히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난 가장이라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침에 딸아이는 학교는 잘 갔는지, 와이프는 무사히 운전을 했는지 라이딩 잘해서 집에는 잘 도착했는지 어디서 혼자 심심해하며 우울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 학교에서 상담 요청이 와서 나는 갈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못 간다고 해야 될지 못가도 갈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해야 될지, 비자는 신청했는데 왜 연락이 없는지 관청에 물어봐야 되는지,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빨리 집에 와서 봐달라는데 언제쯤 간다고 할 수 있을지, 아이가 통화하고 싶다고 지금 통화해도 되냐고 묻는데 지금 너무 바빠서 안된다고 해야 될지 정신없고 바빠도 무조건 된다고 해야 될지, 잊어서는 안 된다.


하루 종일 이렇게 정신이 반절 가출한 채 이렇게 일-집-일-집이 매일 반복된다. 문제는 이러한 일상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퇴근을 하면서 가뜩이나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서는 보여주지 말아야지, 힘들어서 기진맥진하고 벌러덩 소파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야지 하고 수백 번 다짐하고 집에 오지만 매번 그렇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항상 화가 난다. 온종일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타지에서 의지할 친구도 없이 외로워하며 한창 손이 많이 가고 말도 안 듣는 3살배기 딸내미 뒤치다꺼리하느라 하루 내내 힘들었을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오늘도 수고했다고 안아주고 어깨 한번 주물러 줘야지, 말도 안 통하는 학교 가서 계속 긴장하고 힘들어하면서 놀 것도 없고 친구도 없는 유럽에서 떼쓰고 짜증 부리더라도 말없이 꼭 한번 안아주고 받아 줘야지, 하는 나 스스로의 다짐들은 매번 실패하고 또 매번 자책을 한다.


한국에서 집을 비우는 출장은커녕 회식도 1년에 2~3번 할까 말까 였다면 이곳은 또 다른 세계였다. 어찌나 찾아오는 출장자나 손님이 많고 만나야 할 사람이 많은지, 원치도 않은 회식은 주에 꼬박 하루 이상이고 업무상 유럽 인접국가들을 방문해야 될 일이 많아 2박 3일 이상 출장은 월에 한 번 이상 계속된다. 대무자, 팀원 따윈 없다. 출장 때문에 비행기 등으로 이동하면서 업무 시간을 날리게 되면 그만큼 호텔 가서 밀린 일을 밤새 해야 하며 휴가나 연차로 인해 쉬고 어딜 놀러 가더라도 휴대폰으로 연락은 끊임없이 오고 잠들기 전 항상 노트북을 켜고 밤새 일해야 한다.


난 분명 백수에 근접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 그러려고 했다. 근데 지금은 백수는커녕 회사에서는 질책받고 집에서는 도움 안 되는 웬수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그러려고 온건 아닌데 말이다..


주재원은 정말 로또인 것 같다. 

나랑 참 안 맞는다.


그럼에도 뭐 가족들을 봐서라도 파이팅하자!라는 상투적이고 평범한 멘트로 글을 마무리 짓고 싶지는 않다.

어찌 됐건 4년 혹은 5년은 이곳에서 있어야 하기에 그 기간들을 위한 원동력을 사실 오늘도 찾고 있다. 크고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오빠 그래도 우리가 언제 이런 집에서 살아보겠어!"라고 무심코 던진 아내의 말이나 "아빠 garden이 한국말로 뭐지?"라고 물어볼 때 내심 느끼는 뿌듯함. 그리고 평소엔 그럴듯한 취미 하나 없이 지내다가 이렇게 순간순간을 기록하고 싶어서 늦은 시간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대단함, 이런 소소한 하나하나가 내가 이곳에서 오랫동안 버텨낼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난 여전히 백수가 꿈이다.

그래서 일단 한번 해보련다. 백수가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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