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국내 지도를 펼쳐놓고 직선거리가 가까워서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신입생은 기숙사 입주자격을 박탈당한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듯 고시원 생활로 서울살이를 시작하는 강원도 신입생이다. 고시원은 무한리필이라는 아주 특별한 서비스가 제공된다. 밥도 무한제공, 라면도 무한제공, 계란도, 김도 무한제공이다. 그런데 라면도, 계란요리도, 김도 좋아하는 강원도 신입생은 단 한 번도 무한리필의 혜택을 누리지 않았다고 한다.
창문 없이 크기도 모양도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문들이 촘촘히 부대껴 있는 복도는 이것이 그림자인지, 어둠인지 구별도 안 되는 잿빛만 내려앉아 있다. 그 길 끝, 가장 안쪽 구석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주방 입구에는 ‘따뜻한 밥 한 끼 든든하게 먹어요’라고 적힌 푯말이 걸려 있다. 주방 문을 여는 순간 적막한 복도보다 더 쓸쓸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팔팔 끓는 라면의 열기, 갓 지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쌀밥의 온기, 톡 하고 터트리고 싶은 계란프라이의 촉촉함 같은 것들을 순식간에 꺼뜨리고, 퍼석하게 말려버릴 것만 같았다. 쓸쓸함에도 습도가 있다면 고시원 주방을 향해 건조주의보가 선고돼야 할 것 같았다. 메마른 쓸쓸함은 웬만하면 식사는 밖에서 해결하고 싶은 욕구만 남겼다. 따뜻한 밥 한 끼 먹으라고 마련된 공간이 기피 공간으로 전락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고시원에서 밥을 먹어야 할 경우가 생기면 검은 봉지에 달랑달랑 사 들고 온 참치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재료를 손수 데치고, 볶고, 비비고, 둘둘 말고 써는, 번거로운 과정들을 거쳐 만들어진 김밥을 먹는다. 한 알 한 알 오물오물 음미하며.. 엄마 김밥만큼 참치김밥이 좋아진 건 그때부터였다.
바쁘다는 이유로, 본가에 가도 할 게 없어 심심하다는 이유로, 왔다 갔다 번거롭다며 이런저런 핑계로 몇 주 혹은 몇 달에 한 번씩 본가에 방문한다. 그 사이사이에 부모님은 밥은 먹었냐는 안부 인사처럼 ‘언제 와? 언제 올 거야? 한 번 안 와? 보고 싶어 딸’. 다른 듯 비슷한 언어들로 자주 애타게 그리워하신다.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딸이 올 때면 뭐 먹을까? 뭐 사줄까? 먹고 싶은 거 없어? 질문 폭격기가 되신다. ‘뭐가 먹고 싶었더라?’ 잠깐의 고민 후 답을 내놓는다. ‘엄마 밥. 엄마 밥이 난 제일 맛있더라.’ 오랜만에 온 딸 덕분에 밥 한 끼 편하게 외식할 수 있겠다는 엄마의 소박한 꿈을 뭉개 버린 대답이려나- 하지만, 엄마 밥이 제일 맛있는 걸!
아마도 몇 년 전까지는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들을 나열해 얘기했을 텐데, 근래엔 엄마 밥이 가장 맛있다. 엄마가 지어준 밥, 엄마가 끓여준 국, 버무리고 무치고 주물럭거려 엄마 손맛이 잔뜩 베어버린 반찬들. 특별한 요리가 없어도, 상다리 부러질 만큼의 진수성찬이 아니어도, 무한 제공이어도 들여보다 보지도 않았던 조미 김 한봉, 계란프라이만 달랑 있어도 돈 들여 사 먹는 음식들보다 (과장 좀 보태서) 몇십 배는 맛있다.
며칠이 지나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다. 가볍게 왔던 두 손이 버거울 정도로 무겁다. 이거 조금, 저거 조금씩 담은 반찬들은 티끌 모아태산이 된 채 가방에 들어가 어깨를 짓누른다. 반찬 고민 없이 잘 챙겨 먹으라는 엄마의 사랑을 외면할 수 없어 서울까지 짊어 메고 온다. 나물 반찬, 마른반찬, 고기반찬이 어우러져 화려하고 푸짐한 한 끼를 볼 때면, 힘겹게 반찬을 짊어지고 온 자신을 칭찬해 주어 마땅하지 싶다. 아, 물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그런데 한 입 먹는 순간 기대했던 맛이 아니다. 전 날까지만 해도 맛있게 먹었던 반찬들인데 그 맛이 안 난다. 영 성에 안 찬다. 반찬에 문제가 있을 리 없는데, 맛에 문제가 없을 리 없는데. 어제와 오늘의 간극 속에 달라진 게 있다면 부모님의 부재뿐이다. 밥을 먹다 갑작스레 차오르는 눈물에 앞이 흐려진다. 엄마 밥이 그리웠던 건, 엄마 밥이 가장 맛있던 건 그 어떤 음식도 담아낼 수 없고, 대체할 수 없는 부모님의 온기라는 사실이 목을 매이게 한다. 뭐 먹고 싶냐는 질문에 엄마 밥이라고 대답했던 이유는 온기를 그리워했던 무의식에서 비롯된 대답이 아니었을까.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밥 한 끼 이상의 의미, 그 의미는 ‘온기’였다.
고시원에서 먹었던 참치 김밥, 한 입 꾹꾹 씹어가며 음미했던 것 또한 참치 김밥에 담긴 ‘온기’였다. 그 이후, 밥 한 끼 먹자.라는 말을 온기를 나누어 주세요. 온기를 나누어 줄게요 라는 말로 해석해 듣는 버릇이 생겼다.
작품명: 절찬리 기록중
작가명: 세렌디피티
소개: 쓰고자 하는 마음에 사로 잡히다가, 이제는 쓰고자 하는 마음을 붙잡아 놓질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버렸습니다. 무엇이든, 어찌됐든 계속해서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쓰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