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친구들은 무슨 일이든 왜?라고 질문하는 내게 질려버렸다. 왜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눈 동그랗게 뜨고 생각하거나, 나름의 답을 내려주거나, 도저히 모르겠다 하거나, 왜냐고 그만 물으라는 유형으로 나뉜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삶을 삼킬 때마다 '왜 살아야 할까?' 스스로 묻고 또 묻는다. 고요한 수평선 너머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왜? 가 덮친다. 그러다 발등에 떨어진 삶의 문제만으로 벅차 질문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답을 미룬 채 게으르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왜 이렇게 김치를 많이 보냈어? 몇 해 전 은퇴한 순덕이와 명수는 연고도 없는 해남으로 내려가 소소하게 농사를 지으며 산다. 순덕이는 어떻게든 딸에게 김치를 보내주고 싶다. 어찌나 종류가 많은지 겉절이, 깍두기, 파김치, 김장김치, 총각김치, 갓김치••• 무럭무럭 자라는 순덕이와 명수 밭 농작물만큼 보내줄 사랑도 쌓인다. 직장 다니라 운동하랴 집에서 밥 먹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딸은 어떻게든 조금만 받고 싶다. 어려서부터 음식 남기는 걸 싫어했던 명수 아래 자란 딸은 음식을 남기기 죄스럽다. 거절하면 서운해할걸 알기에 딱 한번 먹을 만큼한 보내달라 간청한다. 간청은 도달하지 못하고 한 달 내내 먹어도 못 먹을 양의 김치가 도착한다. 매번 딸과 실랑이를 하면서도 순덕이의 손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왜 운동해? 왜 직무랑 관련도 없는 자격증 시험을 봐? 왜 100대 명산에 도전해? 끝없는 질문에 친구 지은은 머리가 터진다. 그녀는 상대의 모든 말에 대답을 하는 습관이 있다. 한꺼번에 여러 질문과 이야기를 쏟아내도 한 줄도 빼놓지 않고 대답을 한다. 바빠서 답을 늦게 할지언정 그녀의 답은 언제나 촘촘하다. 성격상 한 번에 한 가지 일 밖에 못하는 그녀에게 왜 질문 폭격은 버겁기만 하다. 미처 답을 하기도 전에 운동하고, 시험공부를 하고, 산을 타는 그녀다. 답하지 못한 물음표만 가득 안고 할 일을 해낸다.
풀지 못한 숙제를 던져놓으면 뇌는 그 답을 찾으려 움직인다고 한다. 김한민 작가의 『책섬』을 만난 것도 질문에 답을 찾으려 뇌가 노력한 결과일지 모른다.
난 늘 동물로부터 배우지.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법을.
가령 '왜 책을 만드냐'는 질문 따위.
필요도 없고, 하더라도 답이 너무 간단해.
이보게 자넨 왜 책을 만드나?
나? -> 너 땜에 -> 난 너 땜에-> 난 애 땜에 -> 난 얘-> 난 얘
p41 『책섬』김한민
왜라는 질문에 답을 할게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준다. 책을 만드는 동물들은 저마다를 가리키며 자기 존재 이유를 말한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일하고 그들은 큰 원으로 하나가 된다. 그렇다. 왜 사느냐에 대한 답은 내게 없었다. 네게 있었다. 딸에게 김치 가져다주는 맛에 사는 순덕이, 취업에 도움 될 거란 선배의 말에 혹해 100대 명산 등산에 도전한 지은이, 글쓰기가 삶에 도움이 될 거라는 유투버의 말에 매주 어떻게든 글을 쓰는 나까지. 너 때문에 하고 있고 너 때문에 살고 있다.
[요마카세] 월요일 : (흑)역사 모음집
작가 : 흐름
소개 : 현재에 살자 집착하는 사람. 문득 지금의 나를 만든건 과거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꽂힌다. 과거의 내가 미래를 만든다면, 과거는 미래요 미래는 과거가 아닌가. 흑역사가 미래가 될 순 없어 써내려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