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되는 기록
나방은 달을 향해 날지 않는다. 눈앞 시린 불빛을 좇을 뿐. 며칠만 사는 나방이 달로 향하지 않는 건 현명하다. 반짝임을 동경하다 보면 나방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출근길, 억만장자를 꿈꾼다. 상상은 공짜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로선 닿을 길이 없다. 월급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다들 입을 모아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으면 이것저것 다 해보란다. 그러면 분명히 뾰족해진단다. 유치원 때는 선생님 놀이를 제일 좋아했다.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중간ˑ기말고사 전 족집게 특강을 열어주곤 했다. 선생님이 던진 농담까지 필기한 내 노트는 반에서 제일 인기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장래희망은 선생님이 되었다. 꿈은 동사로 꾸라는 말이 생각난다. 내 꿈은 ‘누군가에게 내 재능을 나눠 도움을 주는 일’이다. 10대에 재능은 시험에 나올법한 수업 내용이다. 다 커버린 지금, 어떤 걸 나눌 수 있는지 묻는다면 나는 여전히 불빛 앞을 헤매는 나방이다.
직장동료는 블로그 리뷰를 남기는 대가로 식당, 운동, 화장품까지 협찬받는다. 정말 대단하다. 점심시간 한 시간도 칼같이 지키는 그녀가 일하고 운동하면서 언제 글까지 쓰는지. 덕분에 떡볶이도 얻어먹고 서핑투어도 함께 한다. 정말 초인플루언서구나. 매번 감탄하는 내게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하지 않다고 말한다. 경험한걸 글로 쓰기만 하면 된다고. 용기가 생겨 강의를 듣고 그때부터 2주간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 가게 사장님과 블로거를 연결해 주는 수많은 블로그 체험단 사이트가 있었다. 하고 싶은 체험을 신청하고 선발되면 제품이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틈틈이 체험단을 신청한다. 정말 신기하게 일주일 만에 미용실, 음식점, 화장품 등 당첨된다. 귓가에 맴도는 한 마디. 야 너도 할 수 있어!
블로그에 글을 쓰며 제일 좋은 건 운동 협찬이다. 요가 한 달권, PT 5회권, 복싱 한 달권, 발레 2회 체험권 등 다양하게 운동을 즐기고 싶은 내게 딱이다. 2년간 PT 체험권으로 20명 이상의 헬스 트레이너와 만나고 100회 이상의 수업을 받는다. 운동방법부터 티칭팁까지 온몸으로 흡수한다. 수업을 듣고 글로 쓰니 정말 피가 되고 뇌가 된다. 살아있는 공부다. 공부도 되는데 내가 쓴 후기를 보고 왔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기록은 습관이 된다.
F45? 그게 뭐야? 그룹운동 붐이 인다. 지인의 권유로 체험을 간다. 신세계다. 45분간 정신없이 운동을 하고 나면 온몸이 땀이다. 아무 생각 없이 순간에 집중한다. 바로 이거다. 코치님이 자세 설명하는 순간부터 운동하는 장면까지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어떠한 보상도 없지만 무료체험 일주일 동안 블로그 리뷰 3개나 올린다. 정말 너무 재밌어 다들 해봤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인다. 다른 지점 무료체험을 간다. 이번에도 후기를 올리려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사진 찍지 마세요. 코치님이 만류한다. 아 찍으면 안 되는구나. 급하게 카메라를 넣는다. 다음날 코치님이 잠깐 이야기할 수 있냐고 묻는다. 무섭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거지. 오만가지 상상을 한다. 싫다고 할 수도 없고 하릴없이 알겠다고 한다. 나를 산업 스파이로 오해했단다. 그럴 만도 하다. 시도 때도 없이 사진을 찍었으니. 당시 F45 운영방식 그대로 차용한 그룹 운동이 막 생기고 있었다. 내가 그쪽 사람이라 확신했단다. 그러던 중 대표가 내 블로그를 보고 누명을 벗겨주었다. ‘이 사람 스파이 아니고, 광팬이네요.’ 한국어라곤 ‘안녕하세요’ 한 마디밖에 할 줄 모르는 외국인 대표가 내 글을 구글에서 발견하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F45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블로그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사람들이 움직인다. 인스타그램은 거의 하지 않고 3개 있는 게시물은 일기에 가깝다. 팔로워도 80명 남짓 지인들 뿐이다. F45에서도 블로그가 아닌 인스타그램으로 홍보를 원한다. 최소 1만 명 팔로워가 필요하다. 그때부터 보이는 사람마다 팔로우를 구걸한다. 1000명. 한 명 한 명 채워 만든 숫자다. 한계가 명확하다. 팔로워 늘리는 법을 찾는다. 퍼스널 브랜딩을 하란다. 나를 위한 일기가 아닌 남을 위한 이야기 해라. 분명한 메시지를 갖고 꾸준히 콘텐츠를 발행해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운동이다. 일기 피드를 모두 지우고 운동과 관련된 콘텐츠만 올린다. 인스타그램만 보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운동인 같다. 맨날 운동만 하지 않는데. 괴리감이 든다. ‘진짜 내 모습이 아니어도 된다. 되고 싶은 내 모습을 올리라’는 말이 위로가 된다. 그렇게 매일 릴스(숏폼)를 찍어 올린다. 꾸준함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렇게 팔로워가 아닌 사람들에게 내 게시물이 도달하기 시작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나를 팔로우 해줬고 무려 7000명 팬이 생긴다.
낯선 이에게 온 DM. 웰니스 스튜디오를 오픈하는데 원년 멤버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코치가 되어줄 수 없겠냐고. 내 피드만 보고 제안이 오다니! 마침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 필기도 합격해 실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블로그로 만난 수많은 헬스 트레이너에게 쌓인 배움이 헛되지 않았다. 진심으로 회원들이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런 나를 믿고 재등록하는 분들도 생겨난다. 그렇게 코치가 된다. 내가 나눌 수 있는 재능을 얼떨결에 찾는다.
믿기지 않는 일은 계속 일어난다. 더 이상 늘지 않는 팔로워에 그만둘 법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콘텐츠를 올리고 또 올린다. ‘지금부터 릴스로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수익을 내려면 메타의 간택을 받아야 한다. 수익화 기준이 명확지 않아 언젠간 되겠지란 마음이 드디어 닿았다. 1만 팔로워도 안 되는 계정에서 이룬 쾌거다. 4개월 만에 처음으로 받은 407달러. 너무 값지다. 월급과는 다른 기쁨에 벅차다.
이 모든 기회는 ‘검색 가능’한 기록 덕이다. 블로그에 후기를 남기지 않았다면 F45에서 스파이로 의심받고 쫓겨났을 테다. 인스타그램을 운동 계정으로 브랜딩 하지 않았다면 내가 나눌 수 있는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세상에 기록해야 한다. SNS는 유명해지려고만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무엇으로 빛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최적의 도구다. 꼭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 얼굴 없는 수많은 유명 계정이 있지 않는가. 기회가 되는 기록을 안 할 이유가 없다.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온다. 불빛을 쫓는 나방에게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기대하며 오늘도 부단히 날갯짓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