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의 경계에서
불현듯 생각나는 아련한 추억(?)이 있다.
나의 구직 활약(?)기
여러 해 전에 이력서를 여기저기 보내어 구직을 위해 애쓰던 때가 있었다. 마침 한 군데에서 면접요청이 왔다. 채용 담당자와 면접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여러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짜, 요일, 그리고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하여 메일로 답장을 짧게 보냈다.
까맣게 있고 있다가 면접일이 가까워져서 시간과 날짜를 다시 체크할 겸 내가 마지막으로 보낸 메일을 확인했다. 메일을 클릭하고 눈으로 빠르게 메일을 읽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누가 내 목에 주사기를 꼽은 것 같은 따끔함에 이어 전신에 뜨거운 약물이 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눈을 비비고 다시 글자를 자세히 봤다.
"면접을 보러 가겠다", "가겠다",...
눈을 비빌 때마다 더 선명하게 보였다.
면접요청이 오면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할 '을'의 위치에 있던 내가 오히려 상대를 무례한 메일로 내리깐 것이다. 말도 여러 번 곱씹어서 조심히 하는 성격인 내가 이렇게 반말로 답을 보냈을 리가 없다. 뭐가 잘 못된 거지?! 한참을 생각해보니 마지막 메일은 핸드폰으로 보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아... 내 핸드폰의 자동완성 기능이 과도한 친절을 베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급하게 보내느라 미처 신경 써서 확인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었다.
인간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자기 합리화 능력을 갖고 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서 나를 보호하는 모드로 돌입했다.
그래, "가겠다"라고 적었으니 가지 않겠다고 한 것보다 낫다고 '정신승리'하였다. 나의 당당함을 좋게 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또 이런 사소한 것으로 나를 달리 본다면 내가 갈 곳이 아니라는 둥... '정신-완벽-승리' 후에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면접날이 되어 면접장소로 갔다.
면접날 본 채용담당자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인간의 얼굴은 만 가지를 표현할 수 있는데, 그 만 가지 중 여러 개를 동시에 보여줬다. 한마디로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이었다. 짧게 인사를 하고 개의치 않고 면접에 응했다. 결과는 탈락. 물론 메일 때문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정말 사소한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겪은 해프닝과 달리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을 때도 있다.
어쩔 때는 맞춤법을 틀리는 것이 하찮은 실수 같은데, 그렇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작은 오류가 글 전체를 부정하는 것 같이 느껴져서 마치 잘 차려진 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왜 글은 이리 작은 실수에 야박하게 구는 것인지... 맞춤법이 틀린 글자를 볼 때 느끼는 깐깐함을 누군가 노래를 부를 때도 똑같이 느끼는 것 같다. 음이 하나 이탈하면 그 노래는 왠지 망친 것 같다. 글과 노래는 똑같이 사소한 것이 사소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된다.
(1) 사소한 것이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한다.
글이 특히 그러한 것 같다. 작은 실수가 크게 보인다. 왜 그럴까? 글을 쓰는 과정이 다듬고 고치기를 반복하는 고단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작은 실수는 글이 마땅히 거쳐야 할 반복된 다듬기를 거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마치 음식을 성의 없이 대충 만들어 내놓은 것같이 느껴진다. 여태껏 쓴 공개글을 쭉 읽어 볼 때가 있다. 어쩌다 틀린 맞춤법을 발견하면 쥐구멍에 들어가 숨고 싶어 진다. 조회수가 낮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을 대하는 사소한 말과 행동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 준다. 그래서 말 한마디로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기도 한다. 비위를 거스르는 말 한마디로 미운털이 박힐 수 있고, 반대로 한마디 말로 상대의 환심을 살 수도 있다. 그 말 한마디는 한마디가 아니라 그 사람 전부를 나타내는 것이다.
사소한 것이 사소하지 않다 생각하기 때문에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사소한 것을 꾸며 전체를 위장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달콤한 말로 상대를 현혹하는 사기꾼이 있는 것이다. 부분적 사소한 실수로 괜찮은 전체가 저평가될 위험도 있다. 나의 서툰 말솜씨로 오해를 산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의 게으름으로 문맥을 생략하고 짧은 말을 건네었을 때가 특히 그랬다. 이것들이 연애/결혼 생활에서 흔한 다툼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니 내 삶에도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들을 실수하지 않도록 '맞춤법 검사'가 필요하다.
(2) 사소한 것이 습관이 될 때이다.
작은 습관이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것은 상식이다. 아침에 침대를 정리하는 사소한 습관이 하루를 효율적으로 또 행복하게 만든다고 '습관의 힘'의 저자 찰스 두히그는 말한다. 사소한 습관은 삶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절대 사소하지 않다.
반대로 '사소하지만 잘못된 습관'은 우리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이 잘못되면 남 탓하는 습관, 남을 지나치게 시기하는 습관, 일을 미루는 습관, 늦는 습관, 등이 그러하다. 사소해 보이는 마음가짐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잘못된 사소한 습관도 인생에 도움이 되는 습관으로 바꿀 수 있는 '맞춤법 검사'가 필요하다.
(3) 사소한 것이 시간이 지나 쌓일 때도 그렇다.
각기 다른 사소한 실수가 모이면 커진다. 하나하나는 사소하지만 합쳐져 커진다. 티끌이 모여 큰 산이 되듯, 사소 일들을 처리하는 것을 미루면 어느 순간 모여 감당하기 힘들 때가 많다. 메모지 한가득 소일거리를 적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면, 메모지는 쇠덩이처럼 무겁게 내 마음을 짓누른다.
사소한 것이 말 그대로 그냥 사소할 때도 있다. 옷에서 떨어진 단추는 사소하여 주변 사람들 중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정작 본인은 지나치게 신경 쓴다. 청개구리처럼 정말로 사소한 것을 거꾸로 사소하지 않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어리석게도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은 진짜로 사소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나치게 말의 뜻과 행동의 의미를 찾는 것에 집착하는 편이다. 이러한 마음의 습관이 작용하여 사소한 것을 보면 의미 없다고 치부하기가 더 당연했다. 그래서 사소한 것에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대로 사소하게 내버려 둔다. 내가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지 절대로 사소하지 않은대도 말이다. 때로는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나는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에 중독되어있다. 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하다 보니 덜 중요한 것들, 또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계속 뒤로 밀려서 제 때 나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 말고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지만, 나의 잦은 실수를 막아줄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에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