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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심 Aug 26. 2022

아들에게 8년 동안 매일 책을 읽어줬다

의도와 결과가 다를 때


의도와 결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아들이 지금 9살이니 ‘엄마 아빠’라고 입을 떼기 시작한 뒤부터 거의 매일 20-30분 정도 책을 읽어줬다. 내가 출장을 가면 아내가 대신 읽어줬다.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읽어주기 하나만큼은 책임지고 해 봐야겠다는 그런 굳은 결심… 이라기보다, 읽어주다 보니 습관이 되었고 딱히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것이 큰 이유였다. 아직까지 내가 책을 읽어주면 아들이 싫어하지 않아 마땅히 핑계로 삼아 멈출 근거도 없다. (설마 이렇게 20살까지?)



아주 어렸을 때는 품에 앉고 책을 읽어주면  아이의 정서와 두뇌계발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어서었고, 아이가 조금 자라서는 책을 가까이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가끔은 나의 노력 덕분에 영재 발굴단에 나오는 영재가 되지는 않을까?-라는 막연한 상상을 했었다. 물려줄 것도 딱히 없는데 이렇게 책이라도 읽어주면 머리가 좋아져서 학교 공부를 할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작은 노력 하나에 나의 온갖 욕심을 덕지덕지 붙였고, 어찌어찌 올해로 8년간 책 읽기를 하였다. 오늘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자는 것을 확인하고 글을 쓰고 있다.



나의 지나친 기대 아니면 어리석음이었을까? 책을 읽어준 나의 의도와 조금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아이는 나의 바람대로

책을 좋아한다. but 오디오 북을…


아이가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그림이 많아 집중도가 높았다. 아이가 눈을 책에서 떼지 않고 나에게 밀착해있었다. 차츰 글씨가 많아지고 그림이 줄어들자 아들이 책을 눈으로 볼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읽는 도중 딴짓을 하는 경우가 생겨 그런 아이를 혼을 내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책 읽을 때 안 보면 그만 읽을 거야!“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었다.


혼을 내도 집중하지 않으면 이것을 명분으로 이제 책 읽어주기를 멈추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녀석 내가 혼낼 때마다 자세를 바로 잡고 책에 집중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나중에는 딴짓을 해도 그러려니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를 위한 것인데, 딴짓을 해서 혼을 내면 아이의 정서만 나빠지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느 날 아이를 혼내는 나를 보고 아내가 깨우쳐준 것이다. 그리고 아들이 딴짓을 하면서도 책 내용을 다 듣고 있다는 사실과 내 목소리에 아이가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아들의 딴짓을 허용해주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인간 오디오 북’이 된 것이었다. 내가 ‘소리’에 민감하듯 아이도 귀로 듣는 것으로 더 많은 것을 느끼는 것 같다. 유전이란 놀랍다.



이제 혼자 책을 읽을 때도 아들은 오디오 북을 듣는다. 글을 읽을 줄 알아도 오디오 북의 편리함에 빠져있다. 비록 나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낳았지만, 또 크게 문제 되지 않으니 괜찮다. 다만 이일을 성찰의 기회로 삼고 싶을 뿐이다.



그 외에 나의 의도와 결과가 달랐던 것들

이번 여름에 화분의 식물들은 잘 키워보겠노라 물을 잘 줬는데 불구하고 모두 죽었다.

고향 가까운 곳에 살고 싶은데 열심히 일할 수록 고향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평생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했는데 오랫동안 공부하니 이제 공부하는 것이 싫어졌다.





의도와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


1) 총체적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데 부분에 집중한다. 부분에 몰입하다보면 전체를 살피는 것에 소홀해진다.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현실적으로 많은 것을 고려하기 힘들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



2)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착각한다

원하는 결과에 알맞은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것에 걸맞지 않아도 좋은 의도이면 마치 원하는 결과를 성취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책을 읽어주면서 책 읽기를 좋아하기를 바랐지만, 오디오 북을 좋아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 이와 같은 경우이다. 원하는 의도를 이루기 위해 딱 맞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아기가 스스로 책을 읽도록 가르치거나 내가 책을 읽는 모습을 솔선수범하여 보여줘야 했었다.



3) 의도는 옳았으나 지나치게 욕심을 냈거나 과했을 때이다.

아이에게 애정이 지나치면 아이는 간섭으로 느끼거나 감정의 억압을 받는다. 공부하라고 아이를 혼내면, 나의 의도와 다르게 아이가 오히려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된다.



4) 꾸준함에 너무 집착하여 중간에 방법을 수정하는 유연함이 부족하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에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평소 생각했다. 그 꾸준함은 반복을 의미하고 중간의 전략 수정을 하는 것에 소극적인 태도를 갖게 만들었다. 좀 더 더 반복해서 노력해야 원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진인사 대천명> 아무리 딱 맞는 의도를 갖고 노력하더라도 결과는 하늘의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의도가 맞지 않으면 뜻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맞지 않는 의도로 결과를 바라면 욕심인 것이다.




때로는 의도와 결과가 달라지면 자괴감이 들 수 있다. 또 내 노력이 부족한 것인지 방법이 잘못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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