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분 좋게 드라이브를 나가도 어느 순간 차가 막히면 "도대체 왜 이렇게 차가 많냐. “라며 짜증 섞인 불평을 해댄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자기 자신도 차를 끌면서 교통체증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이처럼 바깥에서 원인을 찾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우리는 현재 발생하는 일을 통제하지 못한다. 다만 우리는 그 일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서 보는 시야가 달라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또한 그렇다.
외부세계는 내부세계를 통해 만들어진다
외부세계에 놓인 조건들로 내부세계를 조성하도록 방치하면 온갖 두려움과 상처, 분노, 우울, 불안에 휘둘리게 된다. 내부세계를 다스리는 건 언제나 나 자신이어야 한다. 마음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면 외부세계의 변화와 풍파에도 흔들림이 없는 내적평화를 얻게 된다.
우리에겐 지금 이 순간,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분명한 권한이 있다. 그 권한을 부정적인 평가나 해석을 내리는 불안정한 자아에게 넘겨주지 말자.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건 사건이 아니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관점이 변화되면 생각과 감정이 바뀌고 내가 존재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달라진다.
우리는 지나간 결과를 통제할 수 없지만,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할지는 통제할 수 있다. 질투를 칭찬으로, 무시를 존경으로, 실패를 경험으로 치환해 보자. 외부세상의 풍파에 휘둘리지 말자.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최종 결정과 판단을 내리는 건 내부세상에 존재하는 나 자신이다.
외부와 내부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즉 내면을 바꾸면 외면의 환경 역시 뒤바뀐다. 좋은 생각과 감정들은 이상적인 현실 세계를 끌어당긴다. 그 장면은 곧 당신의 눈앞에 펼쳐진다.
신이 아닌 신성에 대한 믿음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나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가 보다 무엇을 잘 알고 모르는지 아는 게 더 중요하다. 모르면 알게 되고 알면 이해하게 된다. 앎은 새로운 변화와 창조의 가능성을 끌어당긴다.
나를 이해하면 뚜렷한 자기확신이 생긴다. 자기확신이 뚜렷한 사람은 자기 인생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신성한 힘을 갖고 있다. 이는 인생에서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과 실행력을 향상한다. 결국 확신 있는 삶은 타인에 의해 끌려가는 삶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끄는 삶을 창조해 낸다.
신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은 신을 향해 끊임없는 찬양을 보낸다. "신은 고결하고 거룩하다." "신은 궁극의 초월자다." "신은 무한한 우주다."라며 경탄해 마지않는다. 신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며 올바른 선택을 내릴 거라 믿는다. 그런데 사실 신을 향한 굳건한 믿음은 당신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당신은 존재 자체로 완전하다." "당신은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현실을 창조한다." 이러한 확언은 당신 내면의 고유한 신성과 잠재의식을 일깨운다. 깨어난 의식은 당신의 삶을 찬란한 빛으로 물들인다.
인생은 아는 만큼 경험하고 믿는 만큼 창조한다.
윤왕
신이 아닌 신성에 대한 믿음을 갖자. 자기창조는 현실창조로 이어진다. 오직 당신 자신을 등불 삼아 보다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 보자. 당신이 믿는 그 세상을 현실세계로 구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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