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카페 소개팅을 통해 깨달은 것들
1부. 연애운을 잘 맞추는 맛집
30대 초반 솔로 시절 사주를 보러 갔다. 압구정에서 유명한 000 사주카페로 친구가 소개해 준 곳이라 기대감이 컸다. 유명 연예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해서 더 그랬다.
실제 사주를 봐보니 다른 건 몰라도 연애 운세만큼은 잘 맞추는 맛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연애성향이 어떻고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 두루두루 알려줬다. 내 경우엔 선비처럼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여자와 키스나 잠자리를 갖는 순간이 와도 쳐내버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극단적인 비유를 들어서 웃음이 나왔지만ㅎㅎ대체적으로 일리 있는 말이라서 수긍했다.
또한 내가 어떤 띠와 어떤 직업이 잘 맞고 배우자는 이런 사람이 될 것 같다고 말해줬다. 그동안 내가 실제 만났던 사람들의 나이와 직업을 맞춰서 신기했다. 아무튼 상담을 마치고 가려하는데, 갑자기 사주를 봐주신 선생님이 명함 한 장을 주고 가라고 했다.
나 : “명함은 왜요?”
사주쌤 : “아 자네 사주도 좋고 인성도 마음에 들어서 내가 소개 좀 주선해 주려고 해. 나에게 사주 보러 괜찮은 여자들이 꽤 많이 방문하니깐 말이야. 만약에 자네하고 궁합이 잘 맞는 사람 있으면 연락 줄게 허허허.”
그 말을 듣고 반신반의했지만 설마 하는 마음에 일단 명함을 주고 왔다. 가끔 식당에 갔을 때 명함을 넣으면 경품을 추첨한다는 이벤트 정도로 생각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2부. 사주카페에서 주선한 소개팅
폰에 뜬 번호를 본 순간 뭔가 직감적으로 그 사주카페에서 전화가 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주쌤 : “어 잘 지냈어? 나 누군지 알아?”
나 : “아~설마 그때 사주 봐주신 선생님인가요?”
사주쌤 : “응 맞아. 어떻게 알았어? 허허.
저번에 내가 여소해 준다고 했잖아.
마침 괜찮은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어때? 받아볼 의향 있어?”
나 : "아 네? 근데 진짜 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갑자기 말씀하시니깐 당황스럽네요."
사주쌤 : "난 빈말 안 해. 잠시만 바로 바꿔줄게."
소개팅 상대는 알고 보니 사주쌤과 실시간 상담 중이었고 우리는 얼떨결에 즉석으로 통화를 하게 되었다. 서로가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냐며 당황당스러워하면서 통화를 이어나갔다. 아무튼 이런 우스꽝스러운 해프닝 속에서 사주카페에서 주선한 소개팅이 성사되었다.
3부. 진정한 짝의 조건
대망의 소개팅 디데이가 다가왔다.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막상 상대를 만나니 전반적인 느낌, 취향, 가치관까지 모두 다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냥 전반적으로 잘 맞지 않았다.
소개팅녀는 사주 선생님이 추천한 만큼 외모, 직업, 학력, 지적 수준, 경제력과 같은 외적인 조건들은 뭐 하나 빠짐없이 훌륭했다. 하지만 내적으로 결정적인 끌림이 부족했고 마음이 통하지 않았다.
상대방 역시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 같았다. 우리는 1차로 밥만 먹고 소개팅을 급히 종결했다. 이렇게 기대했던 사주 소개팅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기대했던 해피엔딩은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난 사주 궁합 따위는 믿지 않기로 했다. 결국 마음의 끌림과 통함이 더욱 중요했다. 소개팅 결과는 이렇게 처참한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그래도 이 경험 덕분에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지에 대한 뚜렷한 확신이 생겼다. 나는 다음과 같은 다짐을 했다.
궁합보단 화합이, 조건보단 조화가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람을 만나자. 나와 맞는 사람이 나타나길 마냥 기다리지 말자. 내가 원하는 조건이 아니더라도 마음의 울림과 끌림을 전해주는 사람을 만나자. 그런 사람을 직접 찾아 나서자.
에필로그
그 후로 나는 나만의 짝이자 소울메이트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사람을 보는 안목을 키워나갔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짝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본질적으로 내가 원하는 내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또 그 사람과 좋은 인연이 되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연애에 대한 욕구는 누구보다 절실했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만은 잃지 않았다. '그래 진짜 사랑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만한 사람이면 됐지."라고 여기는, 그냥 때가 와서 연애하고 결혼하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진 않았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연애나 결혼 따위 하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굳이 억지로 만날 바에 혼자서 살아가는 게 더 괜찮다고 생각했다.
결국 인고의 시간 끝에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인생의 소울메이트는 진짜로 존재했다. 나는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기로 다짐했다. 나는 어떤 부분에서 그런 확신을 얻었을까?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음 글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