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10)
서울서초구에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 문을 열었다. 서울원효대교가 준공됐다. 대우조선옥포조선소 준공과 전남광양만에 제2제철소를 건립한다는 건설부최종확정으로 주식시장이 출렁였다.
건설부발표에 따른 포항종합제철의 광양제철소건설계획은 매출 70%가 제철소인 태선화학주가를 연일 상한가로 우상향그래프를 그렸다. 태선화학도 광양제철소건설에 발맞춰 태선화학광양공장건설을 추진하였다.
태선화학 박동후회장을 위시한 일가들은 경사를 맞았다. 문재환은 처남 박동후에게 태선화학지분을 다 빼앗기다시피 하여 혜택이 없었다. 허울뿐인 태선화학이사직함만 있었다. 산성광산을 시작으로 양밀광산과 백태광산을 빼앗긴대 이어, 박동후회장을 배후로 둔 곽복규소장농간으로 도안광산마저 넘어갔다.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순화광산만 남았다.
문승협은 어려서 할아버지 문재환의 사업상황을 알 수 없었다. 큰아들 문경준은 관심조차 없었다. 다른 가족들도 박옥춘의 친정자부심에 가려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박동후사업이 순풍에 돛을 달자 여기저기서 공치사가 등장하였다. 동생 박동일부터 자기 공이 크다고 역설했다. 국회의원이 되기 이전인 통일주체국민회의의원 때부터 형사업을 위해 음양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였기에 그럴만하였다. 하지만 박동후판단은 달랐다. 동생도움으로 정치경제금융까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유력인사들을 만나기는 했으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제철제강∙시멘트∙비철금속∙유리∙화학 등 판로를 개척하였다고 생각했다. 특히 포항종합제철사장과 담판하여 체결한 일일공급계약은 역사적인 업적으로 여겨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서로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그 가치에 대해서는 의견차이가 컸다. 형제사이에 갈등이 도사렸다.
지난봄 미국 NASA가 화물장비를 실은 세계최초우주왕복선‘컬럼비아호’를 휴스턴케네디우주센터에서 발사하여 시험비행에 성공했었고, 엊그제는 유인우주왕복선‘컬럼비아호’를 발사하였다. 오늘은 컬럼비아호가 로봇팔실험을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인들이 밤하늘별들을 바라보며 미래우주시대를 상상하였다.
문승협도 늦가을 지나 겨울문턱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헤아렸다. 사흘 뒤가 최선경추모일이고, 다가오는 토요일은 국민학교동창회를 겸한 모임이었다.
최선경추모를 겸한 동창회에는 겨우 다섯 명이 참석했다. 김철종과 가병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일관하였고, 박진숙과 제갈민주도 최선경추모에 관심 없어 보였다. 문승협은 실망감에 시무룩했다. 모임이 끝나갈 무렵, 제갈민주가 문승협표정을 살피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야 아그들아, 잠시 주목해봐 봐. 다름이 아니고, 우리 동창회를 계속해야 쓰까?”
“메락없이 뭔 말이대?”
“아니, 참석하는 아그들은 갈수록 줄고, 회장부회장도 안 나온께 한 말이어. 그라고, 선경이 추모도 이번이 삼 년짼께, 내 생각엔 그만했으믄 싶다.”
“하기사, 다들 공부하랴 뭐 하랴 바빠갔고잉. 삼 년 추모했으믄, 인자 선경이도 놔줘야제.”
“승협이 니 생각은 으짜냐?”
“동창회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회장단에 의견을 전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선경이 추모는 3년만 하기로 했으니까, 이번까지가 맞는 것 같다.”
문승협은 친구들 발언이 못마땅하였으나 틀린 말이 아니어서 동의했다. 이번으로 최선경추모가 끝나더라도 3년도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문승협은 모임에서 돌아오자마자, 최선경에게 받았던 카세트테이프와 소나기책을 추억상자에 담아 따로 보관했다. 최선경분신들과 아쉬운 작별을 고하였다. 뜬금없이 최선경과 닮은 지선이라는 아이가 또 생각났다.
신이 선물한 망각이라는 습성 때문에 인간의 기억과 감정이 흐르는 세월에 따라 무뎌지는 건 당연하다지만, 문승협은 생각을 해야 생각이 난다는 단순진리를 놓고 싶진 않았다.
뉴델리 AGF총회에서 86년 아시안게임개최지로 서울특별시가 확정되었다. 국내대미환율이 7백 원대를 돌파했다. ‘34번가의 기적, 웨스트사이드스토리’로 인기를 누렸던 러시아계 미국배우 나탈리우드가 사망하였다.
“아야, 나탈리우드가 죽었다드라잉.”
“나탈리우드가 누군디야?”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영화에서 제임스딘 거시기로 나온 배우여.”
“이유 없는 반항? 제임스딘은 또 누구데?”
“오매오매 무식한 시끼, 제임스딘도 모르냐.”
“관심이 없은께 모른 건디, 무식이 뭔 말이어. 너는 우표에 대해서 아냐?”
“아야 운대야, 그깟 걸로 맘 상해 부렀냐, 예끼 시끼.”
“염병, 지가 뿔따구 나게 해 놓고서는 지랄하네.”
“하하하, 조운대 화나니까 무서운데?”
“야 문승협, 니는 중립을 지켜라잉.”
“성윤아, 빨리 운대 화 좀 풀어줘라야.”
“어이 운대씨, 뿔따구 내지 말고야, 이따 점심묵고 말뚝박기나 한판 하끄나?”
“오케바리.”
명성윤은 평소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오드리헵번을 좋아했다. 영화광이어서 영화지식이 많았다. 조운대는 우표수집이 취미랄 정도여서 영화계소식에는 문외한이었다. 명성윤과 조운대가 자주 티격태격하였으나 늘 같이 공부할 정도로 친했다. 문승협도 가끔 함께 공부하였다.
반아이들이 날씨가 쌀쌀한 탓에 쉬는 시간마다 조개탄을 넣은 난로 주변으로 모여들어 수다 떨었다.
앞뒤에 설치된 두 개 난로 위에는 50여 개 양은도시락이 5층까지 쌓여있었다. 가장 밑에 깔린 도시락은 곧잘 눌어붙었고, 2∙3층은 적당하게 데워져 가장 먹기 좋았다. 4∙5층은 그다지 온기가 없어 서로 자기 도시락을 좋은 층에 놓으려고 경쟁을 벌였다. 야간자습이나 심화반으로 도시락이 두 개라, 양은도시락을 싸 온 아이들의 난로 위 자리쟁탈전이 심했다. 가끔 양보하지 않으려고 다투어서, 선생들 지시 혹은 학생들 자율로 도시락위치를 로테이션시켰다. 겨우내 고소한 누룽지냄새와 반찬냄새가 교실에 진동하였다. 창문을 열고 환기시키라는 선생지시에 냄새가 빠질 때까지 추위에 떨곤 했다. 부유한집아이들은 갓출시된 보온도시락을 두 개씩 싸왔다. 보온도시락도 점심에는 따뜻하게 먹었지만 저녁에 먹을 때는 미지근하였다. 보온도시락은 국도 넣을 수 있었다. 대개 도시락통 맨 밑에 들어가는 용기가 국통이었다. 좋은 보온도시락은 잘 밀폐되어 점심때까지 국이 따뜻했으나, 그렇게 하려면 집에서 막 끓인 국을 담았다. 도시락냄새에 배가 고파서 2∙3교시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먹어버리고, 점심시간에는 숟가락만 들고 다니며 남의 도시락을 뺏어먹는 아이들이 있었다. 식사시간에 맞춰 도시락을 먹을라치면, 밥 먹는 그룹에 맛있는 반찬을 싸 온 친구가 적어도 한 명씩은 있었다. 도시락뚜껑을 열자마자 반찬을 다 빼앗겨서 정작 주인은 못 먹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열받은 아이들이 도시락쌀 때 밥 밑에 반찬을 깔아오는 스킬을 쓰거나 아예 반찬통을 두 개씩 싸왔다. 그쯤 되면 다들 미안해서 두 번째 반찬통은 건들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반찬은 김치와 콩자반, 멸치볶음, 오이지, 무말랭이가 주류였다. 좀 형편이 나으면 돼지고기볶음김치, 오뎅볶음, 달걀프라이, 장조림, 분홍소시지 정도였다. 나름 미식을 즐기는 아이는 양은도시락밑바닥에 송송 썰은 신김치에 참기름을 뿌린 후 밥을 얹어 뚜껑을 닫고 난로 위에 놓았다. 점심시간이 되면 김치가 적당히 익은 도시락을 흔들어 비벼 천국의 맛을 즐겼다. 밥과 반찬이 살짝 눌어붙으면 또 다른 별미였다. 도시락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도 많았다. 등하굣길 책가방에서 반찬국물이 흘러 책과 공책을 물들였고, 만원 버스에 냄새가 퍼졌다. 김칫국물이 자기 옷뿐 아니라 옆 사람 옷에도 묻곤 하였다. 버스에 타면 앉은 사람이 짐을 받아주는 것이 예의였기에, 엎어진 도시락에서 흐른 국물이 책가방을 받아준 여학생교복에 묻어, 남학생이 미안함에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풍경도 빈번했다. 그런 실례를 예방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일반반찬통은 뚜껑이 잘 열려서, 국물이 흐르는 반찬은 대체로 맥스웰하우스커피병에 담아 갔다. 여기에 더해 라면봉지에 담거나, 뚜껑 위에 비닐을 씌운 뒤 노란 고무줄로 칭칭 감았다. 혹시 몰라 가방 속 책사이에 잘 세웠다. 보온도시락도 주렁주렁 들고 다녀야 해서, 버스에 가득 찬 사람들 틈에 끼어 미처 내리지 못해 지각하였다. 끈이 떨어져 분해된 보온도시락이 버스바닥에 나뒹굴어 안절부절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도시락으로 이런저런 불편을 겪자, 겁 없는 학생들은 학교를 탈출하여 근처분식집에서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학교마다 개굴이라는 월담하기 좋은 곳이 꼭 있었다. 교문개방시간을 틈타 하교하는 학생들 사이에 끼어 나가는 강심장도 있었다. 간혹 지도선생에게 걸려서 엎드려뻗쳐 같은 벌을 서거나 엉덩이를 맞았다. 겁 많은 학생들은 주로 학교매점을 이용하였다. 어쨌든 싸주면 들고 가서 먹으면 장땡인 자식들과는 달리, 엄마들은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야 하는 수고가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문승협과 김부일까지 네 명이 난로 옆에 모여 점심을 먹는데, 다른 반 장기원이 숟가락만 들고 왔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친구들 밥을 뺏어 먹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친구들이 나무랐지만 멈추지 않았다. 문승협과 점심을 먹는 네 명도 피해자였다. 장기원이 반찬을 뺏긴 아이의 두 번째 반찬통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무시했다. 안 뺏기려는 아이도시락에 침을 뱉었다. 황당해하는 아이와 상관없이 아무렇지 않게 침 뱉은 밥을 먹었다. 집이나 가난하면 형편이 그래서, 같은 반이면 장난으로나마 이해할 텐데 그도 아니었다. 자기 도시락은 2∙3교시 쉬는 시간에 먹어 치우고 다른 반까지 원정 와서 진상부리니 비난이 빗발쳤다. 김부일이 진심으로 화내며 점심시간출입을 엄금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뻔뻔함과 식탐 넘치는 한마디로 못 말리는 친구였다.
점심식사가 끝나자,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고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있었다. 일부아이들은 미처 못한 5교시 세계사숙제를 하느라 바빴다. 교실과 복도를 뛰어다니며 장난치는 무리도 있었다.
명성윤이 조운대와 약속대로 말뚝박기멤버를 찾았다. 장기원이 김영후와 강덕구를 데려왔다. 같이 점심 먹은 4명을 더하니 7명으로 편 가르기 곤란한 홀수였다. 명성윤이 체구 작은 조운대를 깍두기로 하자고 제안하였다. 모두 일언반구 없이 동의했다. 명성윤과 김부일에 문승협이 한편, 김영후와 장기원에 강덕구가 다른 한편이 됐다. 깍두기라고 불평하던 조운대가 엎드려서 공격받지 않는다는 훈수에 금세 좋아하였다. 한술 더 떠 빨리 가위바위보로 공수를 정하라며 다그쳤다. 명성윤팀이 공격, 장기원팀이 수비가 되었다.
놀이문화에서 깍두기는 통상 대등하지 않은 약자를 상징했다. 깍두기당사자는 자칫 자신에게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닐까 봐 꺼려하였다. 그러나 공동놀이에 다 함께 즐기자는 의미가 더 컸다. 남은 친구를 빼거나 따돌림시키지 않고, 가능한 형평성 있게 모두를 참여시키자는 배려였다. 공정공평하게 양 팀으로 나눌 수 없을 때 아주 유용했다. 깍두기가 된 아이도 나름 긴장하였다. 속한 팀이 바뀔 때마다 민폐 끼치지 않고, 한쪽 편에 기울지 않으려 노력했다.
말뚝박기는 실내외에서 적은인원으로 도구 없이 할 수 있는 놀이였다. 세 명 이서도 할 수 있는 마부놀이나 말타기와 유사하지만 달랐다. 수비팀은 가위바위보를 잘하는 한 명을 벽이나 나무에 세우고, 나머지는 앞사람가랑이사이에 머리를 박는 굴욕적인 자세로 길게 말을 만들어야 한다. 공격팀은 멀리서 달려와 수비팀의 등에 올라탄다. 공격팀전원이 말을 타기 위해서는 최대한 앞쪽으로 타는 것이 유리하다. 말을 타다가 중간에 떨어지거나 땅에 다리가 닿으면 공수가 교체된다. 반대로 수비팀이 무너지면 다시 말을 만들어야 한다. 공격팀이 다 탈 때까지 수비팀이 무너지지 않으면, 맨 앞사람끼리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팀이 공격하는 간단한 규칙이다. 비교적 건전해 보이나 규칙을 과격하게 적용하면 꽤 격렬한 놀이였다. 주로 공격팀의 떨어지거나 땅에 다리가 닿으면과 수비팀의 무너지면이라는 규칙을 이용하였다. 공격팀은 미친 듯이 연이어 달려가서 올라타는 무자비한 전술을 사용했다. 수비팀 중 가장 약한 1명의 등에 올라타 짜부라트려야 해서 몸무게가 많이 나가면 공격에 도움 되었다. 마른 애들이라도 꼬리뼈가 뾰족하면 무게이상의 타격을 줄 수 있다. 적절한 타이밍의 뜀과 내려찍을 때 힘조절이 관건이었다. 놀이가 격화되면 공격기술도 다양해진다. 옆으로 달려가 올라타서 수비팀을 붙잡고 늘어지거나, 맨 끝 수비팀등을 밟고 날아올라서 찍어내려 충격을 준다. 같은 공격팀 앞주자어깨를 짚고 위치에너지를 높인 뒤 내려찍는 수법도 있었다. 주변의 벽이나 책상 등을 이용하는 기상천외한 점프기술도 구사하였다. 반대로 수비팀은 공격팀에 비해 방어기술이 많지 않았다. 주로 발끝 세우기를 했다가 공격팀이 올라타려고 등에 손을 짚는 순간 허리높이에 변화를 줘서 떨어뜨리려는 기교를 썼다. 등에 올라타려 하거나 등에 올려 태운 뒤 몸을 좌우로 흔들어 떨어뜨리는 기술정도였다. 말뚝박기자체가 아래에 깔리는 수비팀이 불리하였다. 종종 사고 나는 경우도 있었다. 공격팀이 높이 뛰어 올라타다가 밑에 사람의 목이나 허리를 아프게 했다. 재수 없으면 구급차에 실려갈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
친구들이 말뚝박기를 시작한 처음 몇 번은 신사적이었다. 장기원이 그냥 올라타는 건 시시하다고 느꼈는지, 달려가는 중에 온갖 폼을 잡으며 재미난 포즈를 취했다. 구경하는 아이들이 배꼽 잡고 웃었다. 그러나 공수가 바뀌고 횟수가 늘면서 점점 과열되었다. 김부일이 굴욕을 준 장기원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깍두기 조운대에게 맨 뒤에 타라고 하였다. 창문에 올라가 뛰어내리며 등에 올라탔다. 장기원이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다. 김부일이 가위바위보에서 져 공수가 바뀌었다. 이번에는 장기원이 복수할 차례였다. 구경하는 친구들을 물리치더니 20여 미터를 도움닫기 하여 강하게 올라탔다. 등에 올라타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좌우로 심하게 몸부림치며 흔들었다. 명성윤이 짜부라지려는 순간, 문승협이 가위바위보에서 이겨 환호했다. 손뼉 치며 구경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교실로 우르르 들어갔다. 세계사선생이 복도 저편에서 뚜벅뚜벅 걸어왔다. 항상 챙겨 다니는 대나무뿌리회초리를 문승협을 향해 흔들었다.
“야 이놈들아, 복도에서 뭐 하는 짓거리여. 그쪽으로 나란히 서.”
“…….”
“강덕구, 이 말썽쟁이 놈. 김부일, 공부 좀 한다 했드마는. 문승협, 명성윤, 느그들은 모범을 봬야 할 놈들이. 조운대, 장기원이까정.”
“아!”
“아? 이 선상님 말은 안 아프고, 맞은께는 아프냐?”
“…….”
“다들 손등 대, 이것은 복도에서 까분 댓가다잉.”
“앗, 윽, 아.”
“언능 들어가서 수업준비 해.”
세계사선생이 한 명씩 쳐다보면서, 끝이 동그랗게 밤톨처럼 생긴 대나무뿌리로 머리를 한 대씩 때렸다. 아프다고 소리 지른 장기원 때문에 화가 나 손등을 세대씩 더 때렸다. 다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팠다. 아직 수업시작종이 울리지 않았기에 억울하였다.
세계사선생이 숙제검사를 했다. 숙제를 안 한 아이들에게 대나무뿌리회초리로 손등을 때렸다.
유럽의 봉건사회를 내용으로 한 수업이 진행되었다. 문승협뿐 아니라 대부분 학생들이 고리타분하여 수업시간에 졸았다. 신기하게도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잠이 싹 달아났다.
세계사선생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2학년선배 3명이 들어왔다. 문승협과 친한 직속선배 남강이 1분만 설명할 테니 듣고 화장실에 가라고 하였다. 1교시부터 매 수업시간이 끝나는 쉬는 시간마다 1학년 각반을 돌아다니며 홍보하는 중이었다. 문일고에 학교밴드‘윙스Wings’라는 그룹사운드가 있었다. 2학년 동안 1년간 활동을 마치면서, 1학년후배들을 상대로 3기 멤버를 모집 중이라고 했다. 흥미있는 사람은 오디션에 적극 참여하라며 독려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학교게시판에 붙인 모집공고를 참고하라고 했다.
문승협은 학교 행사와 소풍 때 학교밴드공연을 보았다. 그룹사운드윙스멤버임인 남강선배가 멋있었지만, 밴드에 관심은 없었다. 그래도 친한 선배말이라 쉬는 시간에 게시판을 찾아갔다. 학교게시판 주변이 생각보다 한산하였다. 김용남과 3반 부반장 장홍기가 찬찬히 보고 있었다. 밴드모집공고에 전교 50등 이내라는 특이한 조건이 눈에 띄었다.
“으째, 승협이 너도 그룹사운드에 관심 있냐?”
“아 아니, 남강선배가 한번 가보라고 해서 와봤어.”
“어떤 파트에 관심 있는디?”
“관심은 무슨. 근데 키보드에 지원한 사람 있니?”
“너 피아노 좀 쳤냐?”
“겨우 바이엘상권 입문, 피아노 쳤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지 뭐.”
“민상이가 지원한다드라, 걔 피아노콩쿨 나가서 상도 탔잖애.”
“홍기 너는?”
“나? 나는 퍼스트기타, 에릭클립튼 멋지잖애. 뭐, 베이스기타도 괜찮고.”
“아야, 기타는 지미페이지제. 나도 퍼스트기타 지원하까 했는디, 너도냐?”
“용남이 니가 퍼스트기타 지원하믄, 나는 베이스기타 지원해야 쓰겄다.”
“에릭크립튼은 누구고, 지미페이지는 또 누구야?”
“아, 지미핸드릭스랑 세계 3대 기타리스트여.”
“난 첨 들어본다야.”
“기타 좀 치는 사람이나 알제, 관심 없는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홍기야, 또 지원한 아그들 있냐?”
“강동우는 세컨드기타에 관심 있고, 우상호는 드럼인가 그래.”
학교밴드는 음악선생이 지도교사였으나, 명목만 학교밴드지 학교지원이 전혀 없었다. 악기구입과 교습뿐 아니라 연습실까지, 그룹사운드멤버들이 스스로 운영해야 하였다.
며칠 뒤 학교음악실에서 오디션이 치러졌다. 5인조그룹사운드윙스3기가 탄생했다. 우상호가 드럼, 장홍기가 베이스기타, 강동우가 세컨드기타, 김용남이 퍼스트기타와 메인보컬을 겸하면서 윙스3기리더를 맡았다. 이민상이 키보드와 서브보컬을 맡았다. 문승협은 오디션에 참가하지 않았다.
멤버들은 각자 악기를 구입하고, 남강을 위시한 2기 선배들 지도로 파트별 교습에 들어갔다. 맨투맨개인교습을 해주던 선배들이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3학년에 올라가기에 얼마 후 교습이 중단되었다.
문승협생일날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곧 겨울방학이 다가왔다.
1981년을 마무리하는 12월에 한국프로야구위원회가 창립되었다.
국세청이 서울강남지역 아파트투기전매자 1,005명에게 양도소득세와 증여세 31억 원을 추징하였다.
대한민국수출이 2백억 달러를 돌파했지만, 대일무역적자가 21억 달러로 전체무역적자의 82.8% 차지하였다. 세계은행은 한국에 산업구조조정차관 2억 5천만 달러를 포함한 3억 4천만 달러 공여를 결정했다.
이동철작가가 쓴 ‘꼬방동네 사람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5∙18 민주화운동을 추모하는 노래이자 한국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군사정권 하에서 유포와 가창이 금지되었던 탓에 구전방식으로 널리 전해졌다.
대중가요로는 ‘김현식의 봄여름가을겨울’ ‘로커스트의 내가 말했잖아’ ‘사랑의 하모니의 별이여 사랑이여’ ‘산울림의 청춘, 가지 마오, 산할아버지’ ‘정여진과 최불암의 아빠의 말씀’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미워 미워 미워, 일편단심 민들레야, 물망초’ ‘한경애의 옛 시인의 노래’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 등이 유행하였다. 사회분위기가 반영된 가사들이 담겨 사람들 마음에 심금을 울렸다.
팝송에서는 ‘Lionel Richie와 Diana Ross의 Endless Love’ ‘Olivia Newton John의 Physical’ ‘Queen의 Under Pressure’ ‘The Nolans의 Sexy Music’ 등이 유행했다. 뜻밖에도 일본 ‘콘도마사히코의 ギンギラギンにさりげなく긴기라기니사리게나쿠’가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더빙한 미국드라마 ‘스타스키와 허치, 기동순찰대’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