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37)
우장일과 결투 이후, 무엇보다 놀라운 일은 문승협에게 유화적으로 돌변한 모영욱태도였다. 모영욱은 중3 때 남강의 말을 기억하였다. 당시 이진구와 붙으려는 문승협싸움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했었다. 이번 대결결과로 사실임을 알았지만, 서로 노는 물이 달라 문승협을 경계할 상대로 생각진 않았다.
친구들의 비밀유지단속으로 문승협위상은 이전과 다를 바 없었으나, 암암리 퍼지는 소문을 타고 학교에서 작은 바람이 일었다. 자신에게 닥친 불의를 이기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주기도문처럼 회자됐다. 그저 당하기만 하던 힘없는 아이들이 적극 대항하였다. 괴롭힘과 폭력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이었다. 빈번했던 사건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힘이 없는데 나서면 용기고, 힘과 상관없이 참는 건 비겁이며, 불의에 나서면 의협심의 영웅이 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잠깐이었다. 한동안 조용히 다니던 모영욱이 우장일의 결석이 길어지자 다시 기세를 폈다. 어쩔 도리가 없어 모두 방관하던 차에, 누군가 선도부장 박현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영욱이 3학년교실에 불려 가 무릎 꿇는 굴욕을 맛봤다.
“느그 소식 들었냐?”
“뭔 소식아?”
“모영욱 그 시끼말이어, 3학년 선배들한테 불려 가 갖고 허벌창났단다야.”
“1년 꿇었다고 우리들한테는 위세 떨드만, 지 동갑들한테 디져불었그만.”
“왐마, 그래도 권선징악이 살아있다잉.”
“그람 당연하제, 나쁜 놈들한테는 필연이어.”
“저 시끼는 뭐 한디, 아까부터 대가리 처박고 있대?”
“어이 장기원이, 니 뭐 하냐?”
“잉, 쪽지 만들어.”
“뭔 쪽지야?”
“담주 월요일에 우리 수학여행 가잖애.”
“수학여행하고 쪽지가 뭔 상관인디.”
“아야, 수학여행 때 경주하고 설악산 가믄, 거그서 딴 지방 가시나들 만나잖냐.”
“그래서, 그것을 그 가시나들한테 준다고야?”
“잉, 이름∙전화번호∙주소∙학교랑 써갖고, 가시나들한테 쫙 뿌리믄 연락 온단께.”
“그것이 그라믄 거시기냐?”
“잉, 고상하게 말하믄 명함이제.”
“하여튼 니는, 그쪽 방면으로다가 비상하다잉?”
“말 시키지 말어, 지금 무자게 바쁜께.”
“하하, 염병한다 참말로.”
장기원이 명함크기종이에 펜팔목적의 연락처를 열심히 적었다. 선배에게 전수받은 비법이라며 자랑했다.
월요일아침 어두침침한 문일고등학교에 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관광버스 10대가 운동장과 교문 주변에 불을 밝혔다. 동틀 무렵 문일고 2학년들이 단상 앞에 도열하였다. 검정교복에 각양각색 가방을 하나씩 들었다. 친구들과 가는 수학여행에 다들 들떴다. 선생들은 줄 선 학생들을 보고 통일감 없이 오합지졸개판이라며 불만스러워했다. 두발자유화로 교모를 쓰지 않은 학생들 모습에 아직 적응 못하였다. 반면 학생들은 교모를 안 쓴 것만으로도 훨씬 자유분방해졌다. 각 반 담임이 일일이 이름을 호명하여 출석확인했다. 평상시 수업시간출석부명단과 달랐다. 그 순간만큼은 호들갑 떨던 학생들도 미안함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하였다. 한 반에 많게는 10여 명이 빠졌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수학여행에 참가하지 못한 학생들이었다.
교장선생이 단상에 올라 수학여행 중 지켜야 할 수칙을 일장 훈시했다. 이윽고 반별로 버스 앞 유리창에 붙여진 번호를 확인하며 관광버스에 올랐다. 담임을 맡지 않은 2학년 교과목담당선생들도 동행하였다. 2학년 4반에는 김생출선생이 배정됐다. 4호차에 승차한 4반 학생들이 드디어 출발한다는 생각에 환호했다. 조현동담임선생이 곧바로 통제하고 탑승인원을 파악하였다. 다시 한번 주의사항을 주지시켰다. 술담배 금지와 도난분실방지, 버스안전수칙 등 사건사고예방으로 교장선생훈시내용과 대동소이했다. 수학여행 중 마주친 타학교와 시비 붙지 말라는 말에 반아이들이 술렁였다.
“선상님, 우리는 시비를 안 걸었는디, 그 짝에서 시비를 걸어오믄 으짜까요?”
“그라믄 잽싸게 그 자리를 피해야제, 그것이 대범한 우리 문일고전통이어.”
“음마, 우리 학교 전통은 육∙해∙공군 사관학교진학인디, 언제 바꼈다우?”
“맞어, 미래 사관생도로서 존심이 있제, 으째 쪽팔리게시리 피한답니까?”
“군인이 국민을 때리믄 되냐 안 되냐, 자존심은 그런데 세우는 게 아니다잉.”
“5.18 땐 잘도 때리드만, 칼로 쑤시고 총까지 쐈는디.”
“그건 군부독재정권의 민주화운동탄압이고, 느그들은 그냥 시시껄렁한 시비여.”
“너희들 정 못 참겠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나서서 모조리 다 뽀사불라니까.”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김생출선생이 벌떡 일어나 권투자세를 취하며 한마디 하였다.
“음마, 으짜스까잉. 선상님, 선상님 별명이 말하지 마 간디인디, 어뜨크롬 말한다요?”
“하하하, 김생출, 김생출.”
노병돈이 학생들 편에 서준 김생출선생재치에 호응했다. 시비 걸어온다면 혼연일체 임전무퇴하겠다는 결연한 반아이들 표정이 웃음으로 바뀌었다. 김생출선생은 학생들의 이성판단을 믿겠다는 뜻이었다.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본인이 앞장서겠다며 농담처럼 하였으나, 뜻밖의 학생들 반응에 살짝 당황했다. 담임선생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다들 조용, 제일 중한 것이 있어. 휴게소나 관광지에서 우리 버스에 다시 탈 때는 꼭 차량번호를 확인해라잉, 딴 학교차를 타는 일은 없도록 하라고. 미아가 돼도 책임 안 진다잉.”
“허허허, 버스 잘못 타서 미아 되믄 전국 쪼다 되겄네.”
“아야 장기원, 니는 모른체끼하고 가시나들 버스에나 타지 마라잉?”
“맞어, 저 시끼는 그러고도 남을 놈이여.”
“만약에라도 그렇게 되믄 나 찾지 말고 그냥 가라잉, 미아 돼도 좋은께.”
“하하하, 예끼 썩을 놈.”
“근디, 으째 간디 선상님은 우리 반 버스에 탔다요?”
“왜, 내가 타서 싫으냐?”
“뭐 싫을 정도까지는 아닌디, 손명옥선상님이 탔으믄 으째스까 싶네요.”
“아 그래? 음악선생님은 10호 차에 탔으니까, 보고프면 그 차로 가라.”
“여자분냄새라도 맡으믄서 가믄 좋을 것인디, 머시마들 냄새만 폴폴 나네.”
“어떤 놈이냐, 어떤 놈이 그런 말 했어?”
“장기원이라우, 장기원이 그랬어라우.”
“야 장기원, 그건 성희롱이야. 경고다, 한 번만 더 그러면 나한테 혼난다, 알았냐?”
“네, 알겄습니다.”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김생출선생이지만 여자음악선생을 넘어서진 못하였다. 10호 차는 각반 버스에 타고 남은 학생들을 모아 태웠다. 아이들이 쓰레기잡동사니차라며 놀렸다. 학생관리를 위해 김옥두교련선생과 손명옥음악선생이 함께 탑승했다.
날이 밝아지고 버스가 출발할 즈음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1학년학생들은 부러운 시선인 반면, 3학년선배들은 작년에 다녀온 추억을 회상하며 바라보았다. 교련선생이 모든 확인을 마친 뒤 확성기에 대고 ‘출발’을 외치자, 1호 차부터 서서히 움직였다. 버스옆에 매단 ‘문일고 수학여행단’이라는 플래카드를 펄럭이며 속도를 높였다. 수학여행은 일본제국주의와 나치독일군국주의 국가들의 국가주의적 발상을 실현하는 수단이었으나, 학생들에게는 지긋지긋한 공부를 떠나 친구들과 즐거운 여행이었다.
한동안 조용히 달리던 1호 차에서 노래가 시작됐다. 금세 전염되어 뒤따르는 모든 버스가 들썩였다. 두 번 다시 갈 수 없는 고등학교2학년들의 4박 5일 수학여행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순항하던 문일고수학여행단은 지리산휴게소에서 버스를 잘못 타 소동이 벌어졌다. 그렇게 주의와 당부를 해도 꼭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이 있었다. 경주도착까지 한시 간여 남겨두고 여기저기 멀미하는 학생들이 속출하였다. 오랜만에 장시간 버스를 탄 탓이었다. 토하는 학생이나 옆자리에서 지켜보는 학생이나 고역이었다. 흐리멍덩한 학생들 눈빛이 경주톨게이트를 지나면서 생지옥을 벗어난 듯 초롱초롱해졌다. 단체수학여행단을 수용하는 대형여관주차장에 버스가 멈춰 섰다. 거의 8시간 걸려 3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다.
각반 선생들이 서둘러 방배정을 마쳤다. 소지품만 방에 두고 집합하라는 지시에 지친 학생들의 원성이 이어졌다. 빠듯한 일정이라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학생들을 다시 실은 관광버스가 가까운 불국사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이 교련선생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1반부터 백운교계단에 섰다. 4반은 청운교계단 위쪽에 자리했다. 문일고수학여행단 450여 명이 대웅전입구 자하문에 오르는 청운교와 백운교에 도열하였다. 발 디딜 틈 없이 빽빽이 섰음에도 부족해 계단 주변을 에워쌌다. 동행한 사진기사가 정해진 구도라며 자신 있게 셔터를 눌렀다.
“우리 누나 졸업앨범 단체사진 본께 숨은 그림 찾기 드만, 우리도 매한가지다잉.”
“우리나 알제 누가 알아보겄냐.”
“아야, 까만 교모까지 썼으믄 다 똑같을 것인디, 그나마 다행인 줄 알어.”
전체사진에 이어 각 학급별로도 찍었다. 긴 시간에 걸쳐 모든 촬영이 끝나자, 처음 본 사람이 확성기를 들고 안내원이라며 자기소개를 했다. 토함산을 배경으로 한 불국사역사를 설명하였다. 학생들은 듣지 않고 딴청 피웠다. 시험에 낸다는 국사선생엄포도 통하지 않았다. 급기야 학생들이 몇 명씩 뭉쳐 흩어졌다. 안양문에 오르는 연화교와 칠보교에서 사진을 찍었다. 다른 선생들은 이해한다는 듯 방조하며 주변을 거닐었다. 주위단풍에 감탄하여 지나가는 학생을 불러 보라고 추천했다. 학생들은 본체만체 자기들만의 추억 쌓기에 바빴다.
“느그도 선생님 나이 돼봐라, 그때 되믄 이 단풍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것이다.”
“예 선상님, 우리도 선상님 나이 돼서 알께라우.”
“오늘은 우리끼리 놀란께, 너무 서운해하지 마쑈잉.”
“그래, 느그들 학교에 돌아가서 보자잉?”
“음마, 우리 선상님 삐져 불었네, 으짜스까잉.”
교련선생이 느슨해진 학생들 통제에 확성기를 켰다. 대웅전으로 이동하라고 지휘하였다. 학생들이 어슬렁어슬렁 움직였다. 대웅전 앞에서도 역사설명이 있었지만, 학생들은 몇 명씩 짝을 이뤄 사진 찍느라 관심 없었다. 다보탑 앞에서 10원짜리 동전을 꺼내 비교해 보며 신기해했다. 교련선생이 다보탑돌사자 옆에 앉아 사진 찍으려고 올라간 학생을 호되게 혼냈다. 확성기를 통해 문화재를 잘 보존하라며 일장 연설하였다. 석가탑과 대웅전 등을 돌아보며 40여 분간 불국사관광을 마쳤다.
다음 목적지는 석굴암이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세워졌다는 안내원설명에 모두 감탄했다. 시끌벅적하던 불국사관람과 달리 엄숙하였다. 학급전체와 혼자 또는 친구끼리 사진을 남기는 일은 여전히 열중했다.
문일고학생들은 여관으로 돌아와 북적대는 공용세면장을 사용하였다. 게으르거나 너무 복잡해서 안 씻는 학생들이 있었다. 교련선생이 학급별 공용세면장이용시간을 정하여 다음날부터 적용키로 했다. 아직 멀미기운이 남아서인지 공용화장실도 만원이었다. 몇몇 학생은 방에 드러누웠다.
저녁식사시간이 되어 반별로 식당에 모여들었다. 식당입구에 오래돼 보이는 플라스틱식판이 쌓여있었다. 1반에서 차출된 배식당번들 앞에 미역국과 잡채가 들어있는 양철통 2개, 김치와 어묵볶음이 담긴 사각쟁반 2개가 놓여있었다. 길게 줄 선 학생들이 질서 정연히 배식받았다. 식사를 시작한 학생들이 미간을 찡그리며 서로 눈치를 살폈다. 비위생적 식판, 설익은 밥, 고기 한 점 없는 맹탕 미역국, 시금치와 당근이 간간이 보이는 역한 냄새의 잡채, 고춧가루 몇 개 붙은 김치와 희멀건 어묵볶음까지 제대로인 게 없었다. 중학교수학여행 때 경험치가 있어 기대는 없었으나,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어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즐거워야 할 수학여행 중 첫 번째 찾아온 불쾌함이었다. 짜기만 할 뿐 간이 안 맞아 먹기 힘들었지만 시장을 반찬 삼아 허기를 달랬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추억이라는 이유로 마음 넓게 받아들였다. 자리가 충분치 않아 빨리 식사하라는 여관주인독촉도 기다리는 친구들을 생각해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눈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더욱이 마지막 9반 학생 절반은 음식이 부족해 먹지 못하였다. 이마저 인생처음 배식한 학생들을 탓했다. 마지못해 여관주인이 내놓은 빵과 우유로 저녁식사를 갈음하였다. 학생들은 저녁을 못 먹은 9반 아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대신, 차라리 빵과 우유가 낫다며 부러워했다. 얼마나 부실한 식사였는지 확인시켜 주었다. 직접 잔반을 비우고 자기 식기를 닦는 것까지도 마땅히 여겼으나, 모두 식사가 끝나고 식당청소를 담당한 4반 장기원발언으로 불만이 터졌다.
“아야, 우리가 여그 식당 뽀이냐?”
“긍께, 수학여행을 온 건지 일하러 온 건지 모르겄다.”
“2반은 화장실, 3반은 세면실 청소를 맡았드라?”
“염병, 친구들이랑 수학여행 와서 청소나 하고 자빠졌으니 환장할 노릇이다야.”
“느그 영훈고사건 들었냐? 선생들이 수학여행지숙소와 계약하믄서 수고비와 선물을 받았다드라.”
일주일 전 수학여행을 다녀온 영훈고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좋게 말해서 수고비고 선물이지 리베이트를 의심하였다. 이외에도 선생들이 칸막이로 가려진 식당 한쪽에서 학생들과 다른 메뉴로 식사했고, 선생들 방에 전골냄비와 생선회 등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을 봤다는 주장까지 뒤따랐다. 담당선생이 강력히 부인하며 덧붙인 말이 사건화 시켰다. ‘여관주인이 접대대신 선생들끼리 한잔 할 수 있도록 술과 안주를 준비해 줬다’고 변명하였다. 영훈고학생들이 어처구니없어하며 단체로 반발했다. 냄새나는 이불과 부족한 베개, 좁은 여관방에서 20명 넘게 투숙한 것을 꼬집었다. 관광버스 2인좌석에 3명이 앉아가고, 의자 밑에 묶어둔 안전띠를 절대 손대지 말라한 관광버스기사의 협박도 알려졌다. 이번엔 학생들 생명을 위협하는 안전사고우려에 학부모들이 발끈하였다. 차량임대 등 모든 비용을 실사하겠다고 나서면서 사태가 악화일로였다. 와중에 학부모들은 두부류로 갈렸다. 합리적 의심파는 오죽하면 학생들이 숙소벽에 ‘이불 좀 빨아라’라는 낙서를 했겠냐며,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고 힐난하였다. 설마파는 학생들에게 피해 주고 이득을 챙기려는 선생이 어디 있겠냐며 수습하려 했다. 학부모들 간 의견대립은 점점 설마에서 합리적 의심으로 무게추가 이동하였다.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문제였다. 수학여행에서 형편없는 숙소와 맛없는 식사는 누구나 알았다. 추억을 망치기 싫어 굳이 따지지 않았다. 이미 다녀온 데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에 대부분 그냥 넘어갔다.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수학여행비논란은 여전히 합리적 의심과 설마 사이를 오가며 계속되었다.
“영훈고 꼰대들이나 된께 그런 거여, 우리 학교 선상님들은 안 그래.”
“그래도 모르제,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은께.”
“우리 학교선상님들은 아까 우리들하고 같은 반찬에 같이 식사했는디야.”
“그라믄, 돈으로 받았나 보제.”
“지랄하네, 말 같은 소리를 해라. 우리는 버스도 한 명씩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았잖애.”
“선상님들 숙식비는 아?”
식당청소를 마친 학생들이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이 말뚝박기를 해서 방안에 먼지가 날렸다. 장기원이 이불을 가져다 코에 대고 킁킁댔다. 여관벽에 ‘이불 좀 빨아라’라는 낙서는 없었지만,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건 다를 바 없었다. 인상을 찡그리며 이불냄새를 맡아보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아이들은 떠들고 노느라 관심 없었다. 김영후가 장기원손에든 이불을 빼앗아 사각형으로 접어 내려놓고 고스톱멤버를 찾았다. 다른 아이들은 이방 저 방 오가며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놀았다. 천진난만하게 자유시간을 만끽하던 8시 30분 즈음, 담임선생들이 각방을 돌며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내일 아침 7시에 기상이고, 9시에 전부 소등할 것이어. 그라고, 술담배와 외출은 절대 금지다잉.”
“아따 김 빠진 거, 한참 재밌었는디.”
“각방 조장은 8시 50분 되믄 이불 깔고 누워서 점호받을 준비 해, 알겄냐?”
“예.”
“반장은 열외일명 없이 인원파악 해놓고잉?”
“네.”
학생들이 바라지 않는 취침시간이 다가왔다. 담임들이 반장을 대동하고 각 방을 점검하였다.
“소등과 동시에 일체 이동을 금한께, 꼼작들 말고 자. 뻘짓거리하지 말고, 알았냐?”
“화장실이 급하믄 으짜까라우?”
“느그가 국민학생이냐, 하나하나 갈쳐줘야 알어?”
“아따, 군대 가믄 이런 기분이까?”
“옆방에 잠깐 가는 것도 안 되까요?”
“음마, 느그 무자게 말이 많다잉.”
“선상님, 베개하고 이불에서 냄새 나 죽겄는디요?”
“느그들 군대 가믄 그 정도는 암것도 아니어, 시끄럽게 그만 떠들고 언능 자.”
“…….”
“꼰대들 이불은 깨끗한갑다.”
직접 불 끄고 방을 나가는 담임선생뒤통수를 향하여 누군가 한마디 했다. 담임선생은 별말 없이 그냥 갔다.
그로부터 5분도 채 안되어 장기원이 불을 켰다. 망볼 당번을 정하자고 하였다. 이병규와 노병돈이 자진했다. 김영후와 장기원이 문승협에게 고스톱을 치자며 화투를 꺼내 이불 위에 펼쳤다. 그사이에 1반 명성윤과 조운대가 슬그머니 방문을 열고 들어와 합류하였다. 김부일은 짤짤이 할 친구를 모았다. 다른 친구들도 조용히할거리를 찾았으나, 딱히 할만한 게 없어 화투와 카드를 들고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4개 조로 나뉘어 화투 2팀과 카드 1팀, 짤짤이 1팀이 놀이를 시작했다.
30분 정도 지났을 즈음, 아래층 선생들 숙소 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교련선생을 위시한 선생들이 식사와 이불냄새 등 학생들 불만사항을 여관주인에게 항의하였다. 학생들이 귀를 쫑긋 세워 듣느라 모든 방에 정적이 흘렀다. 여관주인은 덜 마른 이불을 쌓아놓아서 나는 눅눅한 냄새라고 해명했다. 식사는 내일 저녁부터 신경 쓸 테니, 이미 준비한 내일 아침과 점심도시락까지는 양해해 달라고 하였다.
일주일 전 영훈고학생들의 폭로영향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대부분 학생들은 여관주인을 상대로 목청 높인 선생들 항의를 듣고, 잠시나마 혹시나 했던 의심을 풀었다. 선생들과 여관주인의 소란은 금세 잦아들었다. 학생들은 하던 놀이를 계속하였다. 다들 말이 없었지만 표정만큼은 한층 밝아졌다.
9시 소등은 선생들이 눈감아준 허울이었다. 학생들은 12시가 돼서야 선생들 단속에 잠자리에 들었다. 수학여행 첫날밤치곤 너무나 건전했다. 물론 새벽까지 노는 학생들이 있었다. 피곤해서 업어가도 모르고 자는 학생들도 여럿이었다. 수학여행이면 빠질 수 없는 친구얼굴에 낙서와 치약 바르기는 당연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일어나 킥킥대며 난리법석이었다. 1반에서 술 취해 자는 아이를 이불에 똘똘 말아 복도에 내놨다. 다들 선생에게 혼나는 광경을 즐겼다. 유치하면서도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 장난들이었다.
반별로 정해진 세면시간에 맞춰 씻었다. 아침식사는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아침일정인 김유신장군묘와 천마총을 둘러봤다. 날씨가 쌀쌀하여 관광버스에 앉아 일회용 얇은 나무도시락에 싼 멸치볶음과 단무지를 반찬으로 점심을 때웠다. 차가워진 밥에 맛은 별로였으나 친구들과 먹으니 이마저도 즐거웠다. 시간계획에 따라 첨성대로 이동하였다. 각 반별로 첨성대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다. 친구끼리 특별한 추억을 남기려 첨성대에 올라가 포즈를 취한 학생들이 있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안압지를 경유하여 박물관을 관람했다. 포석정에 도착해 화장실이 급한 나머지 버스창문으로 하차하다 발목을 다친 친구가 있었다. 살짝 삔 정도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디를 가든 튀는 학생들이 출현하였다. 한창 그럴 나이였기에 선생들이 늘 노심초사했다.
간밤에 선생들 항의 때문인지, 양념과 간을 맞춰 조금은 나아진 저녁식사였다. 여관주인이 특별히 계란프라이를 해주겠다고 하여 모두 감사의 박수를 쳤다. 전날처럼 배식을 잘못해 또 밥과 반찬이 부족하였다. 어제처럼 빵과 우유가 아닌 라면을 끓여주었음에도 그다지 부러움을 사지는 못했다.
식사가 끝나고 화장실뒤쪽이 시끄러웠다. 학생 몇 명이 담배 피우다 걸렸다. 교련선생지시에 따라 엎드려뻗쳐 자세로 기합 받았다. ‘학생 연초는 즉사요, 학생 불연초는 불로장생이라’며 복명복창하였다. 담배 피우는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식후 연초는 불로장생이요, 식후 불연초는 3초 후 즉사라’는 말을 바꾼 것이었다.
자유시간이 된 둘째 날 밤은 조용히 보낸 첫날밤에 비해 광란의 밤을 예고했다. 중학교수학여행이 어려서 멋모르고 선생지시를 따랐다면, 고등학교수학여행은 머리가 커서 자유와 방종이 있었다. 학생들이 이방 저 방에서 가볍게 팔씨름과 씨름으로 워밍업 하였다. 닭싸움과 말뚝박기 등으로 차츰 격해지던 차에, 옆여관에서 들려온 신나는 음악소리에 웅성거렸다. 누군가 보낸 신호에 부산하게 움직여 각 반별로 한방에 모였다. 반에서 준비한 동그란 대형건전지 4개가 들어가는 휴대용 대형카세트를 한가운데 놓고 플레이버튼을 눌렀다. 가로 60Cm 높이 30Cm 정도 되는 카세트에서 ‘I Was Made for Dancing’이 흘러나왔다. 고출력 4개 스피커음량이 방안을 울리자, 4반 아이들이 디스코와 고고를 추기 시작했다. 1969년 ‘클리프리처드’ 이후, 1980년 6월 내한공연하여 여성청소년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레이프가렛’ 노래로 개시된 디스코타임이었다. 옆여관 다른 학교 수학여행단으로 촉발된 댄스파티에 대부분 아이들이 흥겨워 땀을 흘렸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한 시간가량 춤을 췄다. 한바탕 정신없는 광란의 순간이 지나고, 문승협이 후끈해진 공기와 날리는 먼지를 환기시키려 방문과 창문을 열었다. 김영후가 라디오 FM과 AM을 오가다 조용한 음악이 나오는 채널에 맞췄다. 옆방 3반에서 기타 소리와 함께 장홍기노래가 들렸다. 잠시 뒤 1반 김용남이 기타를 들고 문승협방으로 들어왔다. 김용남의 대학가요제노래반주에 맞춰 떼창을 하였다. 40여분쯤 지나 취침시간이 다가왔다. 담임선생이 인원점검과 단속을 하고 나갔다. 역시나 누군가 불을 다시 켰다.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화투와 카드를 펼쳤다. 김부일은 어제 잃은 걸 복구하겠다며 짤짤이 팀을 모았다.
“아야 이병규하고 노병돈, 느그 망 안 볼 거여?”
“병규랑 병돈이가 어제 봤으니까, 오늘은 내가 할게.”
“선상님들도 즈그끼리 노느라 안 올 것이다, 어제도 안 왔잖애. 꼰대들도 우릴 이해하는 거여.”
“그래, 그냥 냅둬 부러.”
“그라다 들키믄 또 난리 나는 거 아니어?”
“아야, 우리가 뭔 나쁜 짓하냐?”
“느그 지금 도박하잖애?”
“염병, 이것이 도박이믄 대한국민이 다 도박꾼이다.”
이병규가 문승협옆자리에 와 누웠다. 헤드폰을 쓰고 마이마이를 틀더니 카세트테이프를 들어 보였다. 문승은 테이프를 받아 워크맨에 넣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Joe Cocker & Jennifer Warnes의 Up Where We Belong, Culture Club의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 Duran Duran의 Rio, F.R.David의 Words, Laura Branigan의 Gloria, Men At Work의 Down Under, Survivor의 Eye of The Tiger’등이 녹음된 최신팝송모음이었다. 이병규덕분에 눅눅한 베개와 이불 냄새를 잊고 편안히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난 문승협얼굴은 친구들에게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캔버스가 되어 기상천외한 그림으로 그려진 얼굴을 지우느라 세면장에서 꽤 시간을 보냈다. 강력한 범인으로 김부일을 의심하였지만, 어젯밤 짤짤이를 하다 담임에게 들켜 벌 받는 중이었다. 큰돈이 오간 카드 친 팀과 술 먹다 들킨 팀은 징계위기에 처했다.
문일고수학여행단은 3일 차를 맞이하였다. 경주보문관광단지를 한 바퀴 경유해 감은사지 3층석탑과 바닷가에 있는 문무대왕릉을 둘러봤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한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업적을 확인했다.
문일고2학년들을 실은 관광버스가 보슬비를 맞으며 국도를 타고 경포대로 향하였다. 짓궂은 비가 시야를 가리려 부지런히 차창에 달라붙었으나, 동해안 바다에 넘실거리는 파도를 막지 못했다. 운전기사가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려고 틀은 신나는 음악도 파도소리를 이길 수 없었다. 학생들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차창밖경치에 최면 걸리듯 어느 순간 스르륵 고개를 떨궜다. 졸음과 싸우며 선잠과 깊은 잠에서 헤맬 즈음 점심도시락이 나눠졌다. 일회용 얇은 나무도시락에는 김밥과 계란말이가 담겨있었다. 뜻밖의 선물도 들어 있어 학생들을 미소 짓게 하였다. 손바닥 반만 한 작은 종이에 쓴 여관주인의 메모였다. ‘후배들에게는 더 나은 식사와 숙소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염병, 차 떠나 분께 손 흔드네 참말로.”
“말로하제, 사삭시롭게 뭔 편지는 편지까잉.”
“그라믄, 우리가 후배들을 위해 살신성인한 거여?”
“아따, 김밥이 크고 이것저것 든 것이 실하다잉.”
“왐마, 이렇게 맛난 달걀말이는 첨 먹어본다야.”
“긍께, 당근이랑 파도 들어있고, 아삭아삭 씹히믄서도 보들보들한 것이 여간 맛나다.”
버스가 쉼 없이 달려 동해고속도로를 진입해 삼척을 지나갔다. 맨뒤에 따라오던 10호 차가 빗길에 미끄러졌다. 인명피해는 없이 타이어이상이었다. 수리를 위해 10호 차에 탑승한 선생과 학생들이 다른 차로 옮겼다. 손명옥음악선생이 4호 차에 탔다. 4반 학생들이 서로 자리를 양보하려고 호들갑 떨었다. 10호 차는 수리한 후 낙산사에서 만나기로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