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38)
학생들이 경포대에 도착하자 너나없이 화장실을 찾았다. 손명옥선생이 문승협에게 화장실에스코트를 부탁하였다. 김생출선생과 장기원이 합류했다. 셋이 여자화장실옆에서 손명옥선생이 나오길 기다렸다. 화장실뒤편에서 남자목소리가 들렸다.
“와따, 점심묵고 한 대 때렸어야 했는디, 담배 고파서 디져분 줄 알았다야.”
“식후 3초 이내 불 연초하믄 조실부모한다 안 하디, 나 효도하게 언능 한대 주라.”
“뭐꼬, 어데 전라도 깽깽이 쉐끼들이 여서 난리고?”
“저 갱상도 보리문디 새끼가 뭐라냐, 씨발 놈이 디질라고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네?”
경상도학생이 자기들 담배 피우는 구역을 침범하였다며 시비 걸었다. 전라도학생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학생이 담배 피우는 것도 모자라 싸움까지 하려고?”
“그 짝은 뭔데예?”
“나? 나는 선생인데? 소란피지 말고, 너희 선생님들 부르기 전에 얼른 가라.”
김생출선생이 일촉즉발순간에 개입했다. 양쪽학생들이 선생이라는 말에 후다닥 도망갔다. 김생출선생은 굳이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때마침 손명옥선생이 화장실에서 나와 문승협을 불렀다.
“무슨 일이야?”
“아, 별일 아니에요.”
“그나저나, 비가 그쳐서 다행이다.”
“음악선생님이랑 저기 경포대 올라가는 입구에 가 있을 테니, 너희들도 화장실 다녀와.”
“저는 괜찮아요.”
“선상님, 저는 쪼까 다녀올께라, 먼저 가 있으쑈.”
셋은 장기원을 뒤로하고 경포대입구로 향하였다. 문승협이 김생출선생에게 질문했다.
“선생님, 깽깽이는 뭐고 보리문디는 뭐예요?”
“처음 들어보냐?”
“들어보긴 했는데,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라요.”
“전라도와 경상도를 비하하는 나쁜 표현이지.”
“비하요?”
“지역감정 같은 건데, 이따 버스에서 설명해 줄게.”
학생들이 선생통제 없이 자유롭게 끼리끼리 걸었다. 비에 젖어 떨어진 단풍과 솔잎을 사뿐히 지르밟고 올라가니 경포대가 나타났다. 정면 5칸과 측면 5칸에 팔작지붕형태의 32주 기둥을 둔 누대로 조경건축물이었다. 고려말 안축과 조선선조 때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절경을 노래한 관동팔경 중 하나였다. 바닥은 우물마루로 짜여 있고, 마루높이를 3단 단차를 두어 입체적 평면이며, 벽체 없이 모두 난간을 가설하여 공간개방성을 보여줬다. 경포대에 올라서니 경포호가 눈앞에 펼쳐졌다. 거울처럼 맑은 호수라 하여 ‘경호’라고도 불렸다. 과거에 바다였지만 해안사구에 막히면서 형성된 자연석호로 아름다운 경관이었다.
학생들이 구경을 마치고 한가로이 어기적거리며 내려갔다. 서둘러 승차하라는 교련선생의 확성기소리에 황급히 뛰었다. 학생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서서히 움직였다. 4호 차에 탄 김생출선생이 학생들에게 질문하였다.
“전라도깽깽이 경상도보리문디, 그런 말 들어봤나?”
“예.”
“충청도핫바지, 강원도감자바우라는 말도 있지라우.”
“서울은 뭔지 아는 사람?”
“서울뺀질이요.”
“아하, 그란께 승협이가 뺀질뺀질했그만?”
“하하하.”
“그럼 그런 별칭이 왜 생겼을까?”
“…….”
“지역적 특성과 언어적 특성을 고려해 붙여졌다.”
“그냥 욕하는 줄 알았드만, 딴 뜻이 있다고요?”
“낙산사에 도착할 때까지 간략하게 설명해 줄 테니까, 졸린 사람은 자도 된다.”
운전기사가 마이크를 권했다. 김생출선생이 잠자려는 학생에게 방해된다며 사양하였다.
경상도보리문디는 ‘보리를 먹고사는 문디’를 줄인 말이다. 보리를 먹고사는 가난한 시골 사람이란 지역적 특성에 문둥이라는 인상적 특성을 함축했다. 경상도사람들이 흔히 쓰는 ‘문디야, 문디 자석, 문디 같은 놈’에서 나타난 표현처럼 나병으로 얼굴이 문드러진 사람이라는 비하가 관습적으로 굳어졌다.
전라도깽깽이는 전라도의 언어적 특성에서 비롯되었다. 말끝에 ‘단께, 게라우’와 같은 ‘께, 게’를 자주 반복사용하여 '깽깽이'라고 불렀다.
충청도핫바지는 겨울에 입는 ‘솜을 둔 바지’에서 전래됐다. 바지에 솜을 두면 모양이 나지 않을뿐더러 입었을 때 둔해 보이고 답답해 보인다. 이같이 ‘핫바지’는 ‘핫바지 같은 사람, 촌스러운 사람, 시골 사람, 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의미한다. 시골사람처럼 행동이 세련되지 못한 충청도사람들을 빗댔다.
강원도감자바우는 ‘감자바위’의 경상도식 발음에서 유래되었다. 산이 많은 강원도에서 감자를 재배하여 주식으로 하는 특성 때문에 붙여졌다. ‘감자 먹고 자란 사람’으로 특정지역사람들을 무시하였다.
서울뺀질이는 성격적 특성에서 근거했다. 서울에서 전학 온 친구를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라고 놀렸다. ‘다마내기’는 양파의 사투리로 ‘양파처럼 빤질거리다’는 개념이다. ‘뺀질이’는 자기 일만 챙기고 타인에게 관심두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을 뜻한다.
독특한 사실이 있다. 경상도만 지역별칭을 자신들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목적에 많이 사용한다. ‘우리가 남이가, 우리는 보리문디 아이가’라는 표현은 언어적 동류의식에 기반한 심리적 유대이자 결속이다. 지역말을 통해 연대감과 일체감을 느낀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지역은 불쾌해하며 별칭으로 자신들을 규정하지 않는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경상도와 전라도는 언어적 특성에 기인하면서도 전혀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말은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동쪽은 높낮이고 서쪽은 길다. 동쪽은 산간지방이라 말소리가 크고 끊고 맺음이 확실해야 멀리 잘 전달된다. 서쪽은 넓은 평야가 많아 끊어서 발음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 길어진다. 높낮이는 투박하지만 경제적이고, 길이는 부드러우나 가볍게 여겨진다. 보통 서울말을 쉬이 하는 전라도사람을 간사하다고 비아냥댄다. 반면 고향말투를 바꾸지 못하는 경상도사람을 융통성이 없다고 치부한다. 이는 본질적 언어차이를 이해 못 한 사람들의 편견이다. 평야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라도, 충청도, 서울경기도는 길이를 주로 사용한다. 전라도사람은 길이에 조금 변화를 주면 되니 서울말을 쉽게 배운다. 경상도사람은 높낮이를 길이로 바꾸기 힘들어 서울말을 쓰기 어렵다.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판소리도 동서지역특성이다. 역사를 보면 조선시대 세종의 육진정책에 따라 경상도사람들을 육진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동해안으로 길게 늘어진 높낮이가 그런 사실을 입증하는 셈이다. 경상도와 강원도, 함경도사람들은 약간 차이가 있어도 높낮이로 언어를 구별하는 일종의 동류인식을 갖고 있다. 외국의 경우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비교해 보면 유사한 경향이 나타난다. 평야지방 프랑스는 부드럽게 들리고, 위쪽지방 독일지역은 발음이 끊긴다. 경상도지역만 하더라도 대구중심 경상북도쪽은 ‘했십니더’처럼 말끝이 길어진다. 부산과 경상남도 쪽은 ‘했심더’같이 짧은 게 보통이다. 바다를 낀 지역은 빠르고 짧게 끝나야 말이 확실히 전달되어서다. 전라도평야지역사람은 ‘했는게라우’처럼 끝이 길어 가벼운 느낌이지만 정겹다. 충청도사람도 ‘했시유, 했는감유’같이 길어서 편견 없이 들으면 부드럽다. 경상도말도 ‘잘 가자’는 말보다 ‘잘 가래이’하면 더 깊은 정감인 것도 같은 이치다. 더러는 충청도말을 촌스럽다고 생각하나 끝맺는 부분을 느리게 처리해서 그럴 뿐이다. 이렇듯 우리들의 특정지역편견은 지역적 특성에 따른 언어구조를 깨닫지 못해 비롯됐다. ‘부추’가 지역에 따라 ‘정구지’가 되고, ‘소풀’도 되고, ‘솔’로 표현되는 건 지역적 다름이지 차이가 아니다. 일부사람들은 이를 몰이해하여 몰상식한 행동을 한다. 지역사람들을 조롱하며 감정을 자극할 때 지껄인다. 이런 지엽적 다름을 정치목적에 편갈라 부추기면서 지역감정으로 확장시켰다. 지역감정을 악용한 어른들에 의해 순진무구한 아이들에게까지 승계되어 우리나라의 고질병으로 굳어지고 있다. 어느 순간 정당과 공권력의 구성원을 판단하는 기준이 됐다. 선거의 달인과 설계자들이 마타도어에 이용하고, 통치수단에 따라 작위적으로 유언비어를 만들어 활용하였다.
“언어든 뭐든 지역을 멸시하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다, 잘 기억하길 바란다, 알겠지?”
“네.”
“하여튼 정치하는 놈들이 문제여.”
“우매한 백성이 안될라믄, 우리가 세뇌 안 당하게 정신 똑바로 차려야 써.”
“맞어, 진짜 세뇌가 무섭긴 무섭다야.”
“5.18 때 경상도출신 공수부대만 뽑아서 보냈다드만, 그것도 유언비어까?”
“진짜 문제는 말이어, 우리한테 유리한 것은 그냥 의심 없이 믿어분다는 것이여.”
“그래, 우리만이라도 지역특성을 존중하고, 지역감정을 경계하도록 하자.”
“네.”
“그란디, 우리만 노력한다고 되까?”
“기원아, 그것이 옳은 일이고 누군가 해야 한다면, 우리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야.”
손명옥선생이 장기원혼잣말에 동기와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김생출선생은 ‘하자’라는 평등과 권유의 언어로 강조했다. 예전의 ‘하라, 마라’라는 상하와 명령의 표현을 자제하였다. 학생들은 낙산사까지 50여분 동안 지역폄하별칭과 지역감정에 대해 들었다. 신기하게도 모두 잠자지 않고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경청했다.
관광버스가 줄지어 멈춰 서고 차례차례 학생들을 토해냈다. 특별한 대열 없이 낙산사로 걸었다. 장기원이 맞은편서 내려오는 여학생들을 향해 움직였다. 무리 지은 여학생들에겐 무안당할까 봐 접근 못하고, 혼자 떨어진 여학생들에게 다가갔다. 호주머니에서 꺼내 들고 있던 명함크기종이를 나눠줬다. 펜팔목적으로 준비한 연락처와 자기소개를 적은 메모였다. 뜬금없는 종이를 받은 여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메모를 보았다. 대부분 장기원뒤통수를 째려보고 메모를 꾸겨 땅바닥에 버렸으나, 다섯 번째 여학생반응은 남달랐다. 그 여학생은 교복과 비슷한 옷에 외투를 걸친 여선생이었다. 여선생이 장기원을 불러 세워 허튼수작 말라며 야단쳤다. 주변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웃음거리가 되었다. 손명옥선생이 다가가 사과하여 무마됐지만, 4반 아이들이 창피하다며 장기원에게 멀리 떨어져 오라고 하였다. 낙산사홍예문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놀려먹었다.
사천왕문과 원통보전을 지났다. 높이 16미터의 어마어마한 해수관음상 앞에서 학급별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다시 의상대로 이동했다. 6각으로 만들어진 아담한 정자였다. 멀리 동해를 바라보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 주위풍경이 아름다웠다. 의상대와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친구들끼리 연신 셔터를 눌렀다. 사진촬영 후 몇몇은 해안가 홍련암의 관음굴을 구경하러 갔고, 대부분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주차장에서 홍련암에 간 학생들을 기다리는 동안, 김생출선생이 수리하고 오기로 한 버스를 물었다. 기사대표가 대수롭지 않게 설악산으로 온다고 했다.
“기사님, 장거리운행인데 출발 전에 점검 안 했나요?”
“맨날 모는 버슨디 뭔 점검하겄소, 그런 거 안 해라우.”
“아이들 수학여행버스인데 안전점검은 해야죠.”
“우린 운전한 지 오래돼갖고, 핸들 잡으믄 딱 알지라.”
“그럼 사고 난 차 기사님은 왜 몰랐대요?”
“그건 빵꾼께 그러제라, 갑자기 난 빵구를 으짜겄소.”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타이어가 출발하기 전부터 문제 있었을 수도 있잖아요?”
“그 그렇긴 하지라우.”
“학생들을 태우는데 최소한 점검은 했어야죠, 자칫 대형사고라도 났으면 어쩔뻔했어요?”
“아따 선상님은, 뭔 나지도 않은 사고를 들먹이요?”
김생출선생이 안전불감증을 지적하며 하인리히법칙 Heinrich's law을 설명하자, 기사얼굴이 일그러졌다.
큰 사고나 재해발생 전에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1930년대 초 미국보험회사 관리감독자 하인리히가 5,000여 건의 산업재해분석결과로 주창하였다. 큰 재해와 작은 재해, 사소한 사고의 발생비율이 1:29:300이라는 점에서 ‘1:29:300법칙’으로 부르기도 한다. 사소한 문제를 내버려 둘 경우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재해예방에 주요 개념이었다.
운전기사들이 김생출선생을 둘러싸고 모여들어 긴장감이 돌았다. 김생출선생은 태연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을 꺼냈다. 먼저 외양간을 둘러보고 수리하면 되는데, 소들을 다 잃어버린 뒤엔 아무 소용없다고 했다. 나라의 미래인 학생들의 안전사고예방을 차근차근 역설하였다. 그제사 울그락불그락하던 운전기사들 얼굴이 펴졌다. 두 손을 공손히 모으며 머리 숙였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으면 누가 보호하겠냐’는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수긍했다.
관광버스가 학생들을 채우고 시동을 걸었다. 설악산이 있는 북쪽으로 갈수록 쌀쌀하였다.
설악산국립공원의 여관과 식사도 경주와 큰 차이 없었다. 일부학생들은 어젯밤에 이어 연장전을 치렀다. 장시간 버스이동과 마라톤 관광에 치진 학생들은 일찌감치 자리를 폈다.
다음날아침 담임선생이 인솔하여 설악산관광에 나섰다. 신흥사 가는 길이 수학여행을 온 전국남녀학생들로 붐볐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여기저기서 번뜩였다. 서로 어느 지역 어떤 학교인지 두리번거렸다. 4반은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신흥사경내로 들어갔다. 한 스님이 반기며 안내했다. 신흥사는 ‘향성사’라는 이름에 신라진덕여왕 때 건립한 고찰이었다. 임진왜란과 화재로 완전히 소실된 것을 중건하였다. 예로부터 강원도지역에 화재가 빈번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문승협이 설명을 듣다가 본당 현판을 물끄러미 보며 손을 들었다.
“그래, 거기 학생?”
“보통 사찰에 가면 대웅전이나 대웅보전이라고 쓰여있는데, 극락보전은 처음 봤어요.”
“허허, 학생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구먼.”
“스님, 그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좋은 질문이네, 간단히 말하면, 정중앙 부처와 양옆에 있는 협시불의 차이지.”
학생들이 눈만 멀뚱 거리자, 스님이 말을 이어갔다.
대웅전은 현세 중생을 구제하는 석가여래불을 모신 절이다. 극락보전은 왕이나 왕족의 극락왕생을 비는 원찰이고, 아미타불을 받들어 사후 극락정토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절이다. 대웅전은 중앙 석가모니불 왼쪽에 지혜의 문수보살, 오른쪽에 덕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을 안치하였다. 극락보전은 중앙 아미타불 오른쪽에 제석천을 관장하는 지장보살이나 대세지보살, 왼쪽에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중생의 바람을 받아들이는 관음보살을 두어 구원받도록 했다. 아미타불은 극락세계에 머물며 뭇 생명 있는 자들의 극락왕생을 주관하는 부처다. ‘나무아미타불’만 외우면 현실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이 가득한 서방정토에서 환생한다.
대웅전과 극락보전은 똑같은 말이었다. 개신교는 ‘하나님’이라 부르고, 천주교는 ‘하느님’이라 부르는 경우처럼 불교교파에 따라 달리 부른다고 하였다.
스님이 설명을 마치며 범종도 한번 보라고 추천했다. 향성사시절부터 있었던 종으로 6.25의 총상흔적이 남아있다고 하였다. 학생들은 친절한 스님에게 합장하여 감사인사를 하고, 장엄한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자리 잡은 신흥사를 둘러보았다.
조현동담임선생이 다음 목적지인 흔들바위로 발길을 잡았다. 흔들바위까지는 2.5km 남짓 거리였다. 올라가다 보니 돌탑무더기가 있었다. 학생들 여럿이 주변의 돌을 주워 정성 들여 쌓고 말없이 소원을 빌었다.
“영후야, 니는 뭔 소원 빌었냐?”
“응, 그냥 있어. 니는?”
“나는 내년에 육사 합격시켜 달라고.”
“그래, 제발 소원아 이뤄져라잉.”
괜히 부정 탈까 싶어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누구도 말하지 않았으나, 장기원만 육군사관학교합격이라고 했다. 담임선생이 진심을 담아 큰소리로 축원하였다.
그리 힘들지 않게 흔들바위에 도착했다. 학생들은 일회용 카메라까지 동원해 교대로 찍었다. 장기원이 흔들바위추락설을 제기하며 호기심에 바위를 밀었다. 바위가 조금 들썩였다. 흥분한 친구들이 동참하였지만 혼자 밀 때와 큰 차이 없었다. 강원종은 바위가 굴러 떨어질까 봐 오금 저린 표정이었다. 모두 실패했다는 실망보다 딱 그만큼만 흔들거리는 바위를 신기해하였다. 웃으며 지켜보던 조현동선생이 손에 든 나무막대기로 먼발치를 가리켜 화제를 돌렸다. 학생들 시선이 나무 끝을 따라갔다. 단풍절정기가 지났어도 아름다운 경치였다. 단풍감상도 잠시, 뒤이어 올라온 5반에 의해 흔들바위가 점령되었다.
4반은 점령군에 밀려 하산했다. 신흥사를 거쳐 여관으로 가는 길에 김생출선생과 손명옥선생을 만났다. 학생을 인솔하는 담임들을 제외한 선생들은 케이블카를 탔었다. 손명옥선생이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설악산 감상평과 울산에서 금강산으로 가다 제때 당도하지 못해 설악산에 정착하였다는 울산바위설화를 이야기했다.
왕복 3시간가량 설악산관광을 마치고 여관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맨 나중에 도착한 반이 식사를 마치는 동안 여관방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1시 조금 넘어 문일고수학여행단이 버스에 탑승했다. 관광버스가 꼬불꼬불한 길을 아슬아슬하게 올라가 한계령휴게소에 들렀다. 잠시 정차해 학생들에게 경관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학생들은 별로 내키지 않아 설렁설렁 둘러보았다. 10분쯤 후 학생들을 다시 태운 버스가 왔던 길로 내려갔다. 내리막중간쯤 굽어진 길들머리에서 한 대씩 차례로 멈추더니 학생들을 쏟아내놓고 도망치듯 가버렸다. 조금 널찍한 길목이어도 곡예하며 오르내리는 차량들 때문에 위험했으나 아랑곳없었다. 학생들이 내린 곳은 용소폭포어귀였다. 담임선생을 따라가니 안내판이 나왔다. 용이 되려고 천년을 기다린 이무기 한쌍의 전설이 쓰여있었다. 수놈이무기는 용이 되어 승천하였지만, 암놈이무기는 시기를 놓쳐 비관하다 똬리 튼 모습으로 죽어 바위가 됐다. 학생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소폭포삼거리와 금강문을 지나 선녀탕이 있었다. 경치를 살피며 40분 정도 내려가자 오색석사 성국사가 나왔다. 학생들은 돌아볼 겨를 없이 하산길을 택했다. 20여분 뒤 오색천 너럭바위암반의 오색약수터에 도착하였다. 생각과 달라 실망스러워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줄 섰다. 당연히 샘물을 맛봐야 한다는 의지였다. 차례대로 3군데 구멍에서 샘솟는 약수를 떠 마셨다. 다들 미간을 찡그리고 녹슨 쇳물맛이라는 평을 내놨다. 손명옥선생이 빙긋 웃으며 철분 때문이라고 알려줬다. 철분함량이 많아서 강한 살충력으로 빈혈∙위장병∙신경통∙기생충구제∙신경쇠약∙피부병 등에 특효라 했다. 몇몇 학생은 솔깃하여 눈을 질끈 감고 꾸역꾸역 마셨다. 문승협도 덩달아 도전하였으나 비릿한 철분맛에 바로 뱉어냈다. 입안 가득한 텁텁함에 연신 혀를 날름거렸다. 버스기사들이 주차장에서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아까 학생들을 산중턱에 버려놓고 줄행랑쳤던 관광버스들이 모여있었다. 기운이 남아도는 학생들은 버스에 올라 약수맛을 화제로 떠들었지만, 오전오후 계속 걸은 탓에 대부분 늘어졌다.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저녁식사를 하였다. 파김치가 된 학생들은 방에 이불 깔고 드러누웠다. 일부는 주위를 둘러보겠다며 혼자 또는 여럿이서 자유로이 외출하였다. 문승협은 세면 후 휴식을 취했다. 9시 통금까지 한 시간 남겨놓고 바람이나 쏘이자는 김부일과 김영후를 따라나섰다. 셋이 한 블록 떨어진 광장으로 걸었다. 타 지역 남녀학생들이 꽤 많았다. 장기원이 구석에서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쩔쩔매는 모습이었다. 김영후가 무슨 일인지 호기심에 뛰어갔다. 금세 돌아와 어이없다며 껄껄 웃었다.
“으째, 뭔 일이디?”
“기원이 저 시끼 진짜 못 말리겄다.”
“왜, 무슨 일이야?”
“어저께 낙산사에서 장기원이가 가시나들한테 그 쪽지 나눠준 거 기억하제?”
“잉, 여그저그 막 뿌리드만.”
“저그 가시나가 쪽지를 받았는갑서, 그란디, 하하하.”
“워메 답답한 거, 웃지 말고 언능 말해봐야.”
“여그서도 또 뿌리다가, 어저께 저 가시나한테 준지 모르고 또 줬는 갑서.”
“허허허, 염병한다 참말로.”
“하하하, 그래서?”
“가시나가 종이를 박박 찢으믄서 막 뭐라 그러드라, 저 가시나한테 지금 허벌나게 쪽 당하고 있어.”
“그래도 그 명함인가 거시기가 효과는 있는 갑다잉.”
“아야 장기원이 온다, 얼굴이 벌게져갖고 꼴좋다.”
“예끼 시끼, 자유시간에 혼자 나와서 여학생 꼬실라고 수작이나 걸고, 잘하는 짓이다.”
김부일이 여학생에게 혼나는 모습을 흉내 내며 장난쳤다. 셋은 광장을 돌아보면서 놀려먹었다. 울그락불그락한 장기원과 숙소로 돌아갔다.
친구들끼리 수학여행마지막밤을 보낼 여러 계획을 세웠다. 신나는 음악과 춤으로 광란의 밤을 보내는 학생들은 순진하였다. 여관을 탈출해 음주를 즐기는 학생이 여럿이었다. 덕분에 선생들이 단속과 탈주범들을 잡아오려고 분주했다. 흡연범은 경미하다 하여 봐줄 정도로 음주범체포에 집중하였다. 아무래도 흡연은 담배 피우는데 그치는 반면, 음주는 자칫 뜻밖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였다. 노심초사 추적한 끝에 감옥으로 줄줄이 압송했다. 학생들이 술 먹다 걸려서 오거나 술 취해서 업혀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여기저기 토사물이 널려있었다. 당번들이 역겨운 냄새에 코 막고 치우느라 고생하였다.
학생들이 아침식사와 여관 주변정리를 마치고 관광버스 앞에 줄 섰다. 교련선생질책에 죄수처럼 고개를 숙이면서도 반성과 무관한 눈빛이었다. 일장훈계가 끝나고 승차하면서 무거운 분위기가 풀렸으나, 인원파악에 시간이 걸렸다. 친한 친구 따라 버스를 옮겨 탄 아이들이 문제였다. 마지막여정인 아산현충사로 향했다.
충남아산으로 가는 동안 버스마다 술병과 멀미로 괴로워하는 학생이 속출하였다. 학생신분에 술을 마신 분수 넘친 행동과 수학여행마지막밤을 치열하게 보낸 보너스였다. 지친 학생들이 어느 틈에 잠들었다.
현충사에 보슬비가 내렸다. 학생들은 비몽사몽 일어나 관광하기가 여간 귀찮았다. 얼른 한 바퀴 둘러보자는 선생들 독려에도 꾸물거렸다. 잠이 고픈 일부는 버스에 남으려고 요령 피웠다. 현충사 앞에서 단체사진만 찍고 바로 간다는 교련선생말에 갑자기 행동이 빨라졌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손으로 막으며 일사불란하게 촬영에 임했다. 와중에도 독사진을 찍거나 친한 친구와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학생들이 있었다. 아산현충사는 그렇게 번갯불에 콩 볶듯 지나갔다. 학생들은 버스에 올라 곧장 잠을 청하였다.
버스가 어느덧 광주를 지나갔다. 목포에 도착하기 1시간여 남았을 즈음, 학생들이 하나둘 잠에서 깼다. 1반 명성윤과 조운대가 탄 1호 차에서 신나는 음악을 틀고 춤추기 시작하자, 수학여행출발 때처럼 10호 차까지 순식간에 전이되어 버스가 출렁였다. 모든 학생들이 언제 피곤했냐는 듯 열심히 몸을 흔들어댔다. 한바탕 춤으로 수학여행마지막아쉬움을 달래고 목포에 들어서면서 차츰 안정을 찾았다. 9반은 시내를 통과하는 도중에도 계속됐고 학교운동장에 도착해서야 멈췄다. 어둑해서 출발한 수학여행이 어둑할 때 돌아왔다.
시작과 끝을 맺어야 해서 다들 고단한 몸을 이끌고 단상 앞에 집결했다. 담임선생의 이상유무점검과 절대 빠지지 않는 교장선생마무리인사말이 이어졌다. 다음날 토요일은 휴무라고 하여 환호성이 터졌다. 담임선생이 잘 쉬고 월요일에 보자는 말로 종례를 대신하였다. 김부일은 내일 쉰다는 생각에 좋으면서도 시무룩했다.
“아야, 우리 앞으로 뭔 낙으로 사까?”
“긍께, 수학여행도 끝나 불고, 인자 낙이 없다야.”
“일단은 내일이랑 모레는 푹 쉬어 불고, 이단은 또 딴 놀거리를 찾아야제, 허허허.”
문승협이 한탄과 한숨 섞인 친구들 말에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김부일어깨처럼 축 처져 걸었다. 앞으로 학교생활에 재미있을 일이 없다는 것이 또 다른 숙제였다.
“쉬벌, 이 지긋지긋한 공부는 언제 끝나까잉.”
“언능 어른 돼갖고 공부나 졸업했으믄 좋겄다.”
“어른 되믄 공부 안 해도 되까?”
“우리 엄니가 한 말인디, 대학 가서 노라드라, 대학만 가믄 공부 안 해도 된다고 했단께.”
“설마, 평생교육, 뭐 그런 말은 안 나오겄제?”
“염병, 설마가 사람 잡는다잉, 부정 타게 씨잘데기 없이 그런 말은 하덜 말어.”
“모르겠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
“아야, 버스 왔다.”
문승협과 친구들은 암울한 학교생활 때문인지 수학여행에 기진맥진해서인지, 각자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조용하였다. 다들 월요일에 보자는 인사로 헤어졌다.
문승협이 집에 들어서자, 문현아와 문윤아가 엄마를 대동해 거실로 마중 나왔다. 며칠 동안 집에 없었던 오빠를 반기는 줄 알았는데 수학여행선물이 궁금해서였다. 여동생들에게 옥장식 앞머리핀세트를, 엄마와 작은 고모에게 옥으로 만든 집게머리핀을 건넸다. 아버지에게는 설악산나무로 만들었다는 담배파이프를 드렸다. 엄마만 용돈 아껴 사 왔다며 기뻐했을 뿐, 다들 기대 이하였는지 고맙다면서도 시큰둥하였다. 설악산관광상품매장에서 고심 끝에 골라 사 온 선물인데 반응이 좋지 않아 섭섭했다.
토요일정오까지 늦잠을 잤다. 다음 주에 수학여행을 가는 천영기와 이담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학여행 준비물과 즐기는 법을 경험담으로 전하고 또 잠들었다.
일요일아침 정난희와 통화를 마치고 TV를 켰다. MBC장학퀴즈가 시작하였다. 차인태아나운서가 500회 돌파기념 역대 기장원전을 예고했다.
지상파방송사에서 기업스폰서로 제작된 유일한 프로그램이었다. 통상적 지상파광고는 15초짜리 여러 개였지만, 100초 길이 선경그룹이미지광고가 항상 나와 파격이었다. 장학퀴즈에서만 볼 수 있는 한정판 광고였다. 그룹이미지메이킹보다는 공익광고스타일의 교훈적 내용이었다. 선경그룹계열사광고도 있었으나 학생대상프로니만큼 스마트교복광고가 많았다. 선경그룹회장의 강력한 의지에서 비롯되어 장원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기장원에게 4년간 대학등록금, 기차석은 2년 등록금, 월장원에게는 입학금 혹은 1년 등록금을 약속한 장학증서가 수여되었다. 장학퀴즈가 명문고교 간 자존심 싸움으로 치달았다. 교장선생이 녹화장에 단체응원단을 동원해 대규모 응원전을 펼쳤다. 개교이래 주장원을 처음으로 배출한 여고는 고적대를 앞세워 시가행진을 벌였다. 주장원만 돼도 현수막을 걸었다.
장학퀴즈가 끝나고, 문승협이 부리나케 외출을 준비했다. 점심 먹으라는 엄마말을 외면하고 대문도 닫지 않은 채 다급히 뛰었다. 정난희와 약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기도 하였지만, 2주 만에 만나는 설렘과 조급함이 앞섰다. 유달산 충무공이순신동상 앞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가쁜 숨을 고르며 충무공을 바라봤다. 수학여행 중 비가 와서 보지 못했던 아산현충사동상과 비교할 순 없었다. 무심코 장군시선을 따라가니 건너편 노적봉이었다. 동상을 세운 지 8년이 됐는데 이제야 알았다. 그때 계단 끝에서 정가운데로 가르마 한 머리가 수평선일출하듯 올라왔다.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반가운 얼굴이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등장하였다. 한걸음 달려가 맞이하고 싶었으나 참아야 했다. 정난희가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들을 의식하였다. 따라오라고 눈짓하며 충무공동상 뒤편으로 걸었다. 벤치에 앉아 주위를 다시 살폈다.
“오빠, 이리 와 앉아, 잘 다녀왔어?”
“응, 너는 잘 있었어?”
“나야 늘 그렇지 뭐, 수학여행은 재미있었어?”
“응, 재미있었어.”
“반응이 왜 그래, 별로였어?”
“하하, 아냐 재미있었어. 참, 이거 기념으로 사 온 거야.”
문승협이 경주관광상품점에서 구매한 수학여행선물을 건넸다. 정난희가 고맙다는 인사를 빠뜨리지 않고 잔뜩 기대하며 포장을 펼쳤다. 일순간 마뜩잖은 표정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손거울을 슬쩍 비춰보고 얼른 가방에 넣었다. 문승협이 머리띠를 한번 해보라고 했다. 정난희가 나중에 하겠다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문승협은 뭘 사가면 좋아할까 고민 끝에 골랐었다. 머리띠를 하고 거울 보는 정난희모습을 상상하였다. 설사 별로여도 금세 태도가 바뀔 일은 아니란 생각에 섭섭했다. 정난희는 선물 받은 예의상 거울을 봤고, 머리띠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성격자체가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꾸미려 하지 않았다. 다정과 애정을 갈망하는 문승협에겐 아쉬움이면서도 마음을 흔드는 점이었다.
“오빠, 지난번 우리 학교 축제에 왔을 때 서운했지?”
“아 아니야.”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오빠 마음이 좀 이해되더라.”
“괜찮아, 지난 일인데 뭐.”
“이해하지?”
정난희가 사과대신 이해를 강요하며 문승협어깨를 감싸 안았다. 문승협은 정난희포옹에 조금 위로되었다. 그만큼 문승협에게 정난희마음이 필요하였다. 감격해서 울지 않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난희야, 너 MBC장학퀴즈 알지, 우리 학교도 장학퀴즈에 나갈 대표 뽑는대.”
“그래? 그럼 오빠도 출연하는 거야?”
“하하, 일단 학교예선에 참여할 20명에는 뽑혔는데, 잘될는지 모르겠어.”
문일고에서도 학교명예를 위하여 장학퀴즈참가를 검토 중이었다. 문승협을 포함한 명성윤과 김영후, 조운대와 임창열 등 전교 20등 안에 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대표를 뽑을 계획이었다.
“와, 그 예선 언제 해?”
“다음 달 말쯤.”
“오호, 오빠, 내가 열심히 응원할게.”
“우리 학교에 온다고?”
“아니, 마음속으로 응원한다고요.”
“아, 그 그렇지.”
문승협은 정난희 앞에서 자꾸 바보가 되어갔다. 그래도 쑥스러울 뿐 부끄럽진 않았다. 환하게 웃어주는 정난희를 보면서 불현듯 아프로디테가 떠올랐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키프로스왕 피그말리온처럼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각오가 가슴밑바닥에서 꿈틀댔다. 현실의 여성을 불신한 나머지 오랫동안 독신을 고집했던 피그말리온과는 다른 의미였다. 설사 정난희와 잘못돼 헤어지더라도 사랑하는 한 여자만을 위해 살겠다는 새싹이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아프로디테에게 끊임없이 사랑받는 아도니스가 부러웠다. 피그말리온이 사랑하여 상아에 조각한 아프로디테와 에로스의 황금화살을 맞고 아도니스를 사랑한 아프로디테가 한 사람이듯, 문승협에게 정난희는 아프로디테와 다를 바 없었다. 아도니스를 향한 아프로디테의 책임지는 사랑을 갈구하였다. 아홉 살 때 베아트리체에게 첫눈에 반해 죽을 때까지 사랑한 단테의 사랑을 실현하고 싶었다.
“오빠, 무슨 생각해?”
“아, 갑자기 아프로디테가 생각났어.”
“바람둥이 여신을?”
“바람둥이?”
“응, 올림포스 12 신중 한 명인 아레스와 불륜관계이면서도 아도니스를 또 사랑했잖아.”
“하하하,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네. 하긴, 남편이 헤파이토스니까.”
“피, 남자들은 그냥 예쁜 여신이면 만사 오케이지?”
“아냐, 나는 아도니스를 애틋하게 사랑하는 아프로디테를 말하는 건데?”
“왜, 오빠도 그렇게 사랑받고 싶어?”
“그렇긴 한데, 강요한다고 되는 건 아니라서.”
“호호호, 아프로디테한테 그렇게 사랑받던 아도니스도 아레스의 질투로 죽었어.”
“아, 아네모네꽃 이야기구나?”
“오빠, 점심 안 먹었지?”
둘은 일본만두전문점 ‘긴자’로 자리를 옮겼다. 야끼교자와 아게교자에 튀김우동을 먹었다. 점심을 먹으며 대학진학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정난희가 서울로 대학가지 않으면 헤어질 거라며 문승협에게 엄포했다.
“응 알아, 전에도 말해서 기억하고 있어.”
“왜, 자신 없어?”
“아니, 자꾸 말하니까.”
“다시 한번 강조한 거야, 오빠가 공부등한시 할까 봐.”
“그러니까 꼭 너랑 안 헤어지려고 공부하는 거 같아, 대학 가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라도 생각하고, 공부 열심히 하세요.”
“알았어, 알았다고.”
“이미 누누이 말했지만, 난 이화여대에 갈 거야.”
“설마, 너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라는 건 아니지?”
“그러면 안돼?”
“그게 사랑의 전부는 아니잖아.”
“어허, 사랑타령한다 진짜, 다 오빠를 위한 거라고.”
“난희 너, 꼭 우리 엄마 같아.”
“호호, 내가 좀 심했나?”
“응.”
“뭐야, 반항하는 거야?”
“반항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
“잔말 말고 내 말대로 해. 그리고, 여기서 나가면 오빠는 바로 도서관으로 가 공부해.”
“무용연구소까지 바래다주고 갈게, 그 정도는 괜찮지?”
“안돼.”
정난희는 단호하였다. 목적의식이 뚜렷했다. 문승협에게 한치 양보가 없었다.
문승협은 식당에서 나와 정난희시선을 받으며 도서관으로 향하였다. 아쉬움과 미련이 남아 계속 뒤돌아 보았다. 정난희는 전혀 동요 없이 눈에 힘주고 지켜봤다. 팔짱 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언덕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문승협을 지켜보다 무용연구소로 갔다.
문승협은 시립도서관에 들어와 책을 폈지만, 수학여행을 다녀온 여파와 정난희생각에 공부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학교친구들도 보이지 않고, 수학여행출발을 하루 앞둔 천영기와 이담마저 없어 무료했다. 결국 책을 덮고 책가방을 챙겨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갈 곳을 잃어 처벅처벅 힘없이 걸었다. 방황하던 발길을 붙잡은 곳은 집 가는 길목 전파사였다. 때마침 10월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듯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이 흘러나왔다. 가라 않은 우울한 기분을 쓰다듬어줬다.
친구끼리 가을 타는 남자를 가리켜 ‘추남’이라 불렀다. 못생겼다는 중의적 놀림은 문승협에게도 해당되었다. 한주가 무겁고 고독하게 지나갔다. 흔히 가을을 하늘이 맑고 모든 것이 풍성하다며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하였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이라 하나, 문승협가을은 흉노의 노략질로 고통받으며 절박한 삶을 살아가는 그 옛날 변방백성들 심정과 비슷했다.
천고마비의 계절은 일반적 의미 외에도 비극적 유래가 있었다. 북방유목민족흉노가 활동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라는 뜻이다. 광활한 초원에서 봄부터 여름까지 풀을 먹은 말이 가을에 토실토실하게 살쪘다. 해마다 가을철이면 그 말을 타고 변방에 쳐들어와 곡식과 가축을 노략질해 갔다. 변방의 중국인들은 가을이 되면 언제 흉노의 침입이 있을지 몰라 전전긍긍하였다.
문승협은 정난희와 공부에 노심초사했다. 점점 공부보다 정난희사랑을 애타하였다.
일요일에 도서관에서 천영기와 이담을 만났다. 둘은 같은 날 같은 지역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수학여행에서 벌어졌던 뒷이야기를 한참 늘어놓았다.
문승협은 월요일 등교하여 반장 강원종에게 수학여행사진표본을 받았다. 일일이 번호를 써서 게시판에 붙였다. 반아이들에게 사진인화신청접수를 공지했다.
점심식사 후, 강원종과 문승협이 수학여행에 불참한 반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수학여행에서 찍은 단체사진과 풍경사진을 나눠줬다. 관광상품점에서 사 온 연필세트도 건넸다. 강원종이 반아이들 앞에서 주려 하였으나, 문승협이 따로 전달하자고 했었다. 수학여행 못 간 것도 속상한데 자존심까지 상할까 봐였다.
“음마, 아따 느그들 돈도 없었을 것인디, 뭐 한다고 이런 것까정 사 왔냐?”
“학급비로 샀은께 부담 갖지 말고 받어, 같이 추억하고 기념하자는 의미인께.”
“함께 못 갔지만, 이렇게 라도 아쉬움을 달래자.”
“고맙다잉.”
“느그 수학여행 간 동안 우리도 재밌게 지냈어야.”
“뭐 했는데?”
“느그들이 출발한 첫날은 꼼꼼히 출석확인하고, 하루 종일 자습만 시키드라.”
“다음날부턴 출석확인도 대충 하고, 맘대로 하람서 냅뒀어. 우리끼리 축구하고, 이것저것 하믄서 놀았제.”
“음마, 저것들은 뭐 한데? 저거 난로 아니어?”
“맞그만, 인자 난로 뗄 때가 돼간께 미리 청소한갑다.”
강원종이 난로를 날라다 펼쳐놓은 아이들을 가리켰다. 수학여행에서 술담배와 도박으로 걸린 친구들이었다. 동계철이 다가와 난로청소로 대신 벌 받는 중이었다. 문승협은 벌 받는 친구들을 보면서 무단결석한 지 꽤 오래된 우장일과 모영욱이 생각났다. 둘은 각자 사건 이후 권위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학교친구들 시선을 견딜 수 없어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각각 오거리파와 뒷개파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무성하였다. 두 계파는 학생폭력조직으로 성인조직폭력배가 배후에 있었다. 문승협은 자신 때문에 두 사람이 학생폭력서클에 들어간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이틀 뒤, 윙스멤버들이 찾아왔다. 그룹사운드탈퇴문제로 해코지한 일을 사과했다.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보아 우장일과 싸운 소문을 들은 듯하였다. 문승협을 괴롭히자며 꼬드긴 주신과 앞장섰던 강동우는 함께 오지 않았다. 둘은 계속 문승협을 회피했다.
문승협은 우장일과 싸움을 결코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힘이 없어서든 용기가 없어서든, 불의에 나서지 않는 누군가를 비겁하다고 비난하는 것이 맞는지 혼란스럽기도 하였다. 김용남과 김부일의 강력한 단속으로 워낙 조용히 치러진 비밀결투여서 일반학생들은 알 수 없었다. 조동구 말마따나 싸움 좀 한다는 세간에 잠깐 회자되었다가 곧 사라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