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풋사랑인가? - (6)
한주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월요일 제출한 표어와 포스터가 강당벽면에 개시되었다.
‘북괴남침 예고없다 자나깨나 총력안보. 사천만이 살펴보면 오는간첩 설땅없다. 똘똘뭉친 멸공정신 빈틈없는 자주국방. 의심나면 다시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때려잡자 괴뢰군 물리치자 공산당. 간첩잡아 애국하고 유신으로 번영하자. 신고하는 엄마되고 간첩잡는 아빠되자. 어둠속에 떨지말고 자수하여 광명찾자. 우리모두 계승하자 이승복의 반공정신’등 글자수를 맞춘 수많은 표어들이 붙어있었다.
기발한 포스터도 부지기수였다. ‘뿔 달린 돼지를 국군이 저격하는 그림에 붉은색 글씨로 멸공이 크게 쓰인 포스터, 굶주리고 병들어 헐벗은 북한주민이 쇠사슬에 발목을 묶인 채 곡괭이를 들고 피 흘리며 노동하는 것을 인민복입은 빨간 늑대가 따발총 들고 감시하는 포스터, 판문점 미루나무를 중심으로 피살장면을 묘사한 포스터’등 셀 수 없이 걸려있었다.
반공 글짓기와 웅변대회도 열렸다. 어느덧 대강당에 지난번 시청각교육 때처럼 전교생이 빼곡했다. 웅변대회가 시작되고 반공열기가 강당에 가득하였다. 마지막 순서인 가병수의 웅변은 문승협예상과 다르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웅변을 심사하는 동안 세편의 글짓기 수상작을 발표한데 이어 바로 시상식을 거행했다.
가병수와 김철종이 웅변과 표어로 동상을, 현기정과 김용남이 글짓기와 포스터로 금상을 수상하였다.
“아야 가분수, 봤냐? 이엉아가 상을 타부렀어야.”
“어이 쫑, 그거 느그 성이 해준 거잖애.”
“뭐시어, 들켜 분거여? 우리 성이 눈곱만큼 돕긴 했는디.”
“니 대그박으론 불가사리제.”
“하하, 불가사의지. 병수 웅변도 대단하고, 철종이 표어도 잘했더라, 둘 다 축하해.”
“이거 상품으로 탄 스케치북하고 크레파스인디, 현아 갖다 줘라.”
“왜? 네 상품인데 네가 가져가야지.”
“어이 처남, 나는 집에 또 새삥 있은께, 사양 말고 갖다 주란 말이시.”
김철종이 강요하듯 떠밀었다. 문승협은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들고 집에 갔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잉, 왔냐. 내일은 학교 끝나믄 딴 디로 새지 말고, 곧장 집으로 오니라.”
“예? 예.”
“오빠, 할머니가 왜 바로 오라는 거야?”
“글쎄, 다음 주가 추석이라서 그런가?”
“그럼 엄마아빠도 오는 거야?”
“왔으면 좋겠어?”
“응, 보고 싶어.”
“그래, 오실 거야. 자, 이거 철종이가 너 주래.”
“뭔데, 왜?”
“표어로 받은 상품인데, 집에 또 있다나 봐.”
“나도 새것 있는데.”
“철종이 오빠 만나면 고맙다 하고, 뒀다 나중에 써.”
문승협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추석을 준비하는 할머니를 도와 심부름하느라 주말이 빨리 지나갔다.
서울과 부산에서 작은집식구가 시간차를 두고 도착하였다. 친척들이 올 때마다 안부인사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느라 모두 활기찼다. 엄마아빠를 기다리는 문승협남매만 갈수록 움츠러들었다.
“아부지는 언제 왔소?”
“잉, 나도 어저께 왔다.”
“어디서 오셨소?”
“도안광산에서 일찍 나와갖고, 순화광산 좀 들러보고 왔다. 오는디 사람들 많지야.”
“예, 추석이 내일이라 여그저그 부딪치는 게 사람입디다. 광산은 잘 돼요?”
“백태광산하고 양밀광산은 아직 시작이나 다름없고, 순화광산하고 도안광산은 인자 자리 잡혀간다.”
“산성광산은 으짜요?”
“거그는 뭐 오래됐은께,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제. 다른 광산도 산성광산만큼만 돌아가믄 좋은디.”
“잘 되겄지라우.”
“경준이는 요즘 으짜냐, 만나봤냐?”
“예, 혼자서 일어설라고 고군분투한디, 피해가 너무 커갖고 쉽지 않을 것 같습디다.”
“하필 광산을 이렇게 벌려놨을 때 그래갖고, 도와줄 여력이 없어서 나도 깝깝하다.”
“아버지상황이 그런디 할 수 없지라우.”
“박준배는 수배해 봤냐?”
“예, 해외로 빠져나가 부렀어라우. 조사해 본께 부산에서 배 타고 일본으로 나갔는디, 거그서 또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 하요.”
문승협은 사촌동생들과 거실에서 놀다 안방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도 많이 힘들겠지만 엄마와 윤아도 고생하겠다는 생각에 그리움이 울컥 밀려왔다. 함께 살려면 아직 멀었다는 실망에 마음이 무거웠다. 문득 문현아가 보이지 않아 방으로 찾아갔다. 아직 기어 다니는 사촌동생옆에 엎드려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오빠, 왜?”
“아냐, 무슨 책보나 해서.”
문현아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오빠를 쳐다보았다. 문승협이 책갈피를 넘겨보고 측은한 동생머리를 쓰다듬었다. 주방 쪽에서 할머니목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박옥춘이 추석음식장만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전부침과 고기 굽는 작은며느리들에게 맏며느리험담을 늘어놨다. 제풀에 화가 커지면서 목소리도 높아졌다.
“시엄씨랑 시누들 이불이나 옷은 본 체끼도 안 하고, 즈그 것만 갔다 빨드란께. 청소도 하는 둥 마는 둥, 맨날 빈둥거리믄서 내 밥은 언감생심이어. 지 자식새끼들 밥도 안 차려주고, 사내새끼를 부엌에 들여서 김치 통을 엎고 지랄했어야. 거그다 내가 좀 뭐라 한께는 아, 벌렁 드러누워 쳐 자빠져서 눈 똥그랗게 치켜뜨고 말대꾸하는디, 아조 악을 바락바락 지르드라. 오메 내가 기가 차서, 어디 그뿐이냐. 서울로 간 뒤로 어버이날은 고사하고, 아그들날인가 거시기 때도, 지새끼들한테 전화 한 통화를 안 한 무정한 년이어. 그래도 나는 그런 에미애비없이 사는 손주들이 불쌍해갖고, 방학 때 아그들 데꼬 도안광산에 다녀오느라 쎄빠지게 고생했어야. 내가 전생에 뭔 죄를 졌나 모르겄다 시방.”
작은며느리들은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 시어머니 편이라기보단 며느리라는 동병상련이었다. 말실수를 하거나 대꾸라도 잘못하면 자기에게 화살이 향하기 때문이었다. 그냥 험담을 계속 들어야 하는 자체가 고역이었다. 큰 형님 이항리가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조카 문승협에 대한 측은지심이 컸다.
문승협은 엄마에 대한 할머니험담을 듣는 순간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숨이 막히고 슬픔이 몰려오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무심코 방으로 들어온 부산작은아버지 문경철과 눈이 마주치자 금세 아무 일 없다는 듯 미소 지었다.
“승협이는 공부 잘하나.”
“네,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동안 별일은 없었고?”
“네.”
말수가 적은 문경철이지만 작은아버지로서 조카가 처한 상황이 안타까웠다. 딱히 건넬 말이 떠오르지 않아 지갑을 꺼내 용돈을 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승협이가 열심히 공부한다는데, 이 작은 아빠가 용돈 좀 줘야 안 되겠나.”
“감사합니다.”
“현아는 오빠 말 잘 듣고 공부도 잘해야제?”
“예, 감사합니다.”
문경철이 거실로 나갔다. 문현아가 문승협에게 엄마아빠는 언제 오는 거냐고 물었다. 문승협이 재빨리 문현아입을 틀어막고 속삭였다. 엄마아빠를 죄인취급하면서 오든 말든 무관심한 어른들이 들을까 봐 한 행동이었다.
“밤늦게 오던지, 내일아침 일찍 올 수도 있어.”
“알았어.”
평소 같은 문현아라면 오빠손을 떼어내고 답답하게 왜 그러냐며 따져 물었을 터였다. 점점 눈치가 빨라져 오빠목소리보다 더 낮춰 속삭였다. 문승협은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아빠에게 한참 응석 부리며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할 나이인데 눈치를 보는 동생이 안쓰러웠다. 아직 어린 아기인 동생을 눈치 보게 해서 죄책감마저 들었다. 눈치를 안 보게 잘 보살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편으로는 엄마아빠에게 전화해 보자는 말도 꺼내지 않은 어른들이 야속했다. 물어볼 엄두도 못 냈다. 혼자 끙끙 앓다 새벽까지 엄마아빠를 기다리다 잠들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포항작은아버지가족이 들이닥쳤다. 문승협은 잠에서 깨자마자 엄마아빠흔적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아 실망하였다. 어쩌면 안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결국 오지 않았다.
온 가족이 차례를 지냈다. 지난 설명절과 다를 바 없이 진외가증조할머니댁에 인사 갔다. 추석 또한 민족 대명절이라 역시나 박동후와 박동일을 찾는 손님들로 북적댔다. 어른들이 응접실에 앉아 인사순서를 기다렸다.
문승협은 항상 그랬듯이 당숙모에게 인사하러 문현아와 식당으로 향했다. 손님맞이 상차림으로 분주한 식당에서 조금 전 들어간 할머니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박옥춘이 어제 작은며느리들에게 했던 큰며느리에 대한 험담을 거의 똑같이 쏟아내고 있었다.
문승협은 마음이 아프고 참담했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 괴로움을 감추고 재빨리 문현아귀를 두 손으로 막았다. 문현아는 이번에도 오빠에게 왜 그러냐고 묻거나 손을 치우지 않았다. 가만히 고개 숙인 채 우울한 표정이었다. 이미 다 들었다는 뜻이었다. 문승협은 할머니의 엄마험담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용기를 내야 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문현아가 바짝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였다. 문현아손을 잡고 달래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식당에 있는 사람들 시선이 몰려들었다. 마치 ‘저 아이가 박옥춘이 욕한 그 큰며느리의 아들이구나’라며 비웃는 것 같았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당숙모에게 다가가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당숙모, 안녕하셨어요?”
“그래, 우리 승협이 왔구나, 현아도 더 예뻐졌네. 이쪽으로 가자. 순영아, 유과랑 수정과 좀 가져와라.”
큰 당숙모 이숙현이 문승협남매를 식당안쪽 방으로 데려가 얼른 문을 닫았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눈물이 그렁그렁한 남매를 보호해야 했다. 어린 남매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지만, 집중된 사람들 시선에 몸 둘 바 몰라하며 눈에는 슬픔이 배어있었다. 가여운 마음에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넸다.
문승협은 당숙모를 구세주처럼 무척 고맙게 생각하였다. 마치 지난 설과 데자뷔 한 느낌이었다. 이런 비슷한 일이 명절 때마다 있었다. 성장하면서 보는 상황과 듣는 말을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안 보이고 안 들리던 것들이 보이고 들린 것뿐이었다.
이숙현은 박동후회장큰아들 박일환의 아내였다. 교육자집안맏딸로 단아하고 검소하며 인자함까지 갖췄다. 일찍이 박동후회장 뒤를 이을 후계자의 아내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한동안 보살핀 문승협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문승협은 당숙모위로에 안정을 찾고 음식을 먹었다. 잠시 후 임집사안내로 진외가어른들께 인사드렸다.
문재환은 처가에서 점심을 먹은 후, 세 아들과 장손 문승협만 데리고 종갓집에 다녀오려 하였다. 문현아가 오빠와 같이 가겠다고 고집 피우자, 6명이 승용차로 두어 시간 가기에는 비좁아 세 아들과만 가기로 했다. 막내아들 문경민이 브리사를 운전하고 출발하였다. 남은 가족들은 어색한 분위기로 집으로 향했다. 박옥춘과 어른들이 오빠를 따라가겠다며 고집 피웠던 문현아를 야단쳤다.
문현아는 엄마도 없는데 오빠마저 없이 친척들 사이에 혼자 있는 것이 불안하였다. 어른들은 그런 문현아심리는 생각지 않았다.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로만 생각하고 구박하며 혼내기에 급급했다. 문현아는 가뜩이나 무서워하는 할머니호통에 사시나무 떨듯하며 서럽게 울었다.
문승협은 그런 문현아를 보듬어 달래기는커녕, 어른들 앞에서 보란 듯이 더 큰소리로 나무랐다. 길거리에서 어린 동생을 혼내는 어른들이 싫었지만, 집에 와서도 계속 꾸짖어 화가 났다. 그런 어른들이 미워 오기가 발동해서 그랬다. 그러나 방에 들어서자마자 문현아를 안아주며 사과했다.
“오빠가 미안해.”
“흑흑, 오빠, 나 혼자 있는 게 무서워서 그랬어.”
“그래 잘했어, 괜찮아. 오빠가 현아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구나, 많이 놀랬지.”
문승협은 문현아눈물을 닦아주며 달랬다. 복받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잘 참아 오던 눈물을 쏟았다.
남매는 부모를 원망할 겨를도 없었다. 둘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울음소리가 새어나지 않게 입을 틀어막고 서럽게 울었다. 어떤 어른도 남매에게 관심 주지 않아 서운한 문승협이었지만, 만약 그런 눈치가 보였다면 그 순간 감정이 무너져 목놓아 울어버렸을 것이어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는 연민이나 동정이 아닌 가족의 사랑과 공감을 바랐다.
종갓집을 다녀온 작은아버지들이 문승협남매에게 적지 않은 용돈을 주고 직장과 삶의 터전으로 갔다.
문승협은 용돈을 받은 기쁨보다, 부모와 명절을 보내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사촌동생들이 부러웠다.
“오빠, 내 용돈은 오빠한테 맡길게.”
“아냐, 네가 잘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써.”
“싫어, 잃어버린단 말이야. 오빠가 갖고 있어, 오빠가 써도 돼.”
“그럼, 용돈기입장을 사서 같이 쓰자.”
북적이어서 오히려 서러운 명절이 그렇게 지나갔다. 문승협남매는 친척들이 돌아간 후 서로를 위로하고 또 위안 삶아 남겨진 적막함과 허전함을 달랬다.
문승협은 자신이 받은 상처와 감정을 동생에게 절대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에게 눈 떼지 않고 필요한 순간 옆에 있어 주는 것 외엔 딱히 방법이 없었다. 사정이 그러하니 추석을 보내면서 동생을 살피느라 자신의 그리움과 슬픔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동생이 있어 견뎌낼 수 있었다. 가족의 의미가 궁금했다.
세상사람들은 가족을 사랑한다기보다는 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자식이니까, 아들딸이니까, 장손장남장녀이니까, 형누나오빠언니동생이니까’라는 세상이 만든 역할놀이에 급급한다. 여기에 더해 지극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 역할에 맞는 무게와 가치까지 정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내가 그랬으니 상대방도 그렇게 하기를 강요하는 것처럼,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가족에게 그 대가를 요구한다. 이런 가족문화는 장례제사문화에서 비롯되어 명절과 일상을 통해서 마치 전통처럼 계승되어 왔다. 문승협도 세상사람들처럼 오래전부터 무의식 중에 강요받고 길들여졌다. 그렇게 길들여지는 것도 스스로 보는 눈치와 남에게 받은 눈치가 더해진 삶의 눈치에서 비롯되었다.
가족은 선택의 조건이 아니었다. 싫어도 미워하면 안 되는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하는 당위성이었다. 서로 진심을 아는 것이 무섭거나 알고 싶지 않아 모른 채 살 수 있다. 조금이라도 진짜감정을 드러내면 갈등이 생길까 하는 두려움에 서로 모른 척하며 살 수도 있다. 아무리 사랑과 정으로 똘똘 뭉친 가족이어도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을 수 있다.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내 가족을 가장 모르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가족은 편히 기댈 수 있고 어떤 일에도 내편에 서줄 사람이었다.
그러나 문승협은 가족과 있어도 공허하고 외롭고 아무것도 아닌 듯한 고립된 기분을 느꼈다. 공감받지 못하고 자란 환경에서 기인한 결과였다. 가족관계를 맺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상대욕구를 우선시하는 법을 본능으로 터득했다. 자신의 가장 절실한 마음을 숨기면 가족과도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기에는 문승협나이가 너무 어렸다. 타인에게 최고의 유대감을 표현하고 싶을 때 가족이란 말을 쓴다. 하지만 내면의 가장 깊은 거대한 상처는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얻는 것이 현실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