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양을 품은 별 Sep 11. 2024

단테의 별 - 1권 1부 20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풋사랑인가? - (5)

2학기 반장을 뽑는 금요일 마지막수업 특활시간이 다가왔다. 보통 반장선거날을 예고하면 출마할 아이들이 홍보하며 야단법석이기 마련이었으나 1학기때처럼 조용했다.

담임선생이 선거시작  별다른 설명 없이 김용남을 반장후보에서 제외한다고 하였다. 반아이들이 의아해 웅성거리다 금세 수긍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도 그럴 것이 1학기 반장선거 때는 김용남의 사전담합과 공작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어서였다.

1학기 반장 김용남이 사회를 맡았다. 단상에  김용남이 손바닥으로 교탁을 두드려 반아이들을 집중시켰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조용히 시키고 반장후보추천을 받았다. 김철종이 문승협을, 강모세가 가병수를 각각 천거했다. 김용남은 트집 없이 공약발표순서로 넘어가 문승협부터 발표하라고 하였다.

문승협은 공약을 준비하지 않아 난감했다. 애당초 출마할 마음이 없었다. 옆에서 빨리 발표하라며 재촉하는 김철종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하는 수없이 평소 생각했던 몇 가지를 급조해 발표하였다.

“저는 반장이 된다면 세 가지를 실천하겠습니다. 첫째는 학급비뿐 아니라 학습자료와 준비물의 비용을 최대한 줄이겠습니다. 학습자료나 준비물을 단체공동구매하여 가격을 깎아 절약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준비물을 빠뜨려서 선생님께 혼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차별을 없애겠습니다. 먼저 남녀차별을 없애기 위해 현기정을 부반장으로 지명하겠습니다. 부반장과 상의하여 청소 등 학급 일도 차별 없이 공평하게 하겠습니다, 셋째는 솔선수범하는 반장이 되겠습니다. 시키기만 하지 않고 필요할 때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학습자료나 준비물을 깜박해서 선생님에게 벌 받고 혼나기 일쑤였다. 잘못 사서 난감한 경우도 있었고, 가격과 품질차이로 빈부격차를 느끼기도 하였다. 비용을 절약하여 줄이겠다는 공약은 호응받을 만했다. 부반장으로 여자인 현기정을 지명한다는 발언에서 반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이윽고 남자아이들이 여자부반장은 한 번도 없었다며 반발하였다. 무슨 뜬금없는 말이냐며 공산당이냐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여자아이들은 작은 소리로 나마 왜 여자가 부반장을 하면 안 되냐고 술렁였다.

사실 이제까지 여자부반장은 최선경이 처음이었다. 이는 과학담당 오성희선생이 과학실관리를 위해 특별히 임명하였기에 별다른 논란이 없었다. 반장선거공약으로 지명하여 투표를 통해 여자부반장을 뽑는 것이 전무한 일 이어서 남자아이들 반응이 무척 날카로웠다.

김용남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반응을 살피더니 이의를 제기하였다. 1학기 때도 마찬가지로 그동안 반장선거에서 차점자가 부반장을 했다는 전례를 들었다. 여자를 반장은 물론이고 부반장으로도 뽑은 적이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관례상 맞지 않다는 반론이었다. 잠자코 있을 것 같았던 여자아이들이 의외로 점점 거세졌다. 상기된 표정으로 여기저기 손들며 발언권을 달라고 하였다. 김용남은 생소한 여자아이들의 거침없는 반발에 몹시 당황했다. 그동안 김용남의 위엄에 숨죽였던 여자아이들이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놀라운 광경이었다. 뒤숭숭한 분위기가 문승협의 질문으로 다시 조용해졌다.

문승협이 김용남에게 그동안 왜 그렇게 했는지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김용남이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저는 우리나라가 광복 이후 신탁통치라는 미군정영향으로, 헌법에서부터 정치선거에 이르기까지 미국식 민주주의제도에 영향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초기 대통령선거에서 차점자가 부통령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도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후보자가 부통령을 지명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학급임원선출규정이 있어서 안 된다면 모를까, 부반장을 지명하는 것이 문제 될 순 없습니다. 더군다나 여자라서 부반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차별입니다.”

문승협발언이 끝나자, 여자아이들이 동조의 박수를 쳤다. 일부 남자아이들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핏대 세웠다. 두 사람과 남녀아이들이 팽팽히 대치하였다. 답을 찾던 반아이들 시선이 점점 담임선생 쪽으로 향했다. 이를 의식한 고삼랑선생이 잠시 생각하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래잉. 그동안 으째 그랬으까 생각해 봤는디, 시방 차별이라는 말 앞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가 무자게 옹색하다야. 그것은 그냥 오랜 고정관념이었어. 근디 또 앞으로 계속 그래야 할 합당한 사유도 못 찾겄다. 그라고, 한 번도 안 가본 길이라고 언제까지 안 갈 수는 없제. 승협이의 반장공약이 잘못된 것은 아니어.”


만약 세상에 불평등불공정을 외치는 사람만 있었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시대나 그러한 외침을 듣고 합리적 판단으로 수용하는 지도자가 존재하였기에 세상이 바르게 변화해 가는 것이었다. 문승협은 차별철폐를 외쳤고, 고삼랑선생은 합리적 지도자역할을 하였다.

사회전반에서는 그나마 새마을운동영향으로 부녀회와 YWCA 같은 여성단체에서나 여성지도자가 있을 정도였다.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이 따로 정해진 것처럼 여성리더 자체를 용인하지 않은 사회분위기였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관습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국민학교5학년 반장선거에서 벌어진 작은 일중 하나였지만, 이들에게는 일상의 유리천장을 깨는 용기이자 세상을 바꾸는 모험의 시작이었다.


고삼랑선생의 판결이 있고 나자, 일순간 남자아이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불만스러운 탄성을 쏟아냈다. 반면 여자아이들은 환하게 밝은 표정으로 환호했다.

“그란디 말이어, 승협이는 기정이한테 부반장지명승낙을 받았냐?”

“아 아뇨, 아직.”

“그라믄 그것은 절차에 문제가 있다야, 먼저 의사를 물어보고 했어야제.”

“지금이라도 물어보면 안 될까요?”

“뭐 안 된다는 법은 없는디, 기정이의 생각은 확인해야 겄제?”

“그럼, 현기정에게 묻겠습니다. 저의 부반장지명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현기정에게 쏠렸다. 현기정은 문승협 공약으로 지목된 순간부터 당황했었다. 갑작스러운 주목을 부담스러워하며 망설이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받아들이라는 여자아이들 재촉까지 이어지자 곧 문승협말에 따르겠다고 답했다.

문승협은 현기정의 승낙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의사확인도 없이 공약한 것을 반성하였다. 현기정에게 꼭 사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무리 좋고 옳은 일이라도 절차적 정당성이 필요한 대목이었다.

문승협 공약은 현기정의 지명수락으로 일단락되고 가병수의 공약발표차례였다.

가병수가 쭈뼛거리며 앉아있었다. 김용남의 거듭된 재촉에 마지못해 일어났다. 일어나서도 왠지 불편한 모습으로 계속 머뭇거렸다. 마침내 어금니를 깨물고 주먹을 불끈 쥐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반장 할 맘이 없어라우. 용남이가 시켜준단께 억지로 나왔는디, 그냥 승협이가 반장 했으믄 하요.”

가병수의 폭탄선언에 또 소란이 일었다. 김용남표정이 일그러졌다가 미소로 변하는 건 찰나였다.

“아야 가병수, 내가 언제 그런 말 했다고 그라냐?”

“니가 강모세한테 추천하게 하고, 나머지는 니가 다 알아서 반장 시켜준다고 그랬잖애.”

“저 쌍노무, 아니 뭔 소리까잉. 강모세, 내가 그런 말 한적 있어?”

“아 아니, 그런 적 없는디.”

김용남이 순간 이성을 잃고 욕할뻔했다. 겨우 냉정을 찾아 강모세에게 시선을 돌려 대질하였다. 강모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부인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고삼랑선생이 가병수에게 물었다.

“그라믄, 병수는 반장후보에서 사퇴하는 것이냐?”

모두의 시선이 가병수에게 향했다. 김용남이 아무도 보지 않은 사이에 가병수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위협을 느낀 가병수가 고개를 떨구더니 이내 말문을 열었다.

“그 그건 아니고요, 만약 여러분이 반장을 시켜주믄 최선을 다할게라우.”

가병수는 따로 준비해서 알려준 김용남의 공약을 갖고 있었으나 반항의 의미로 말하지 않았다.

김용남은 예상치 못한 가병수의 돌발적인 태도에 화났다. 그럼에도 침착하려 애쓰며 투표로 이어갔다.

문승협 35표, 가병수 24표가 나왔다. 문승협이 11표 차로 2학기반장에 선출되었다.

여자아이들의 몰표 29표를 감안한다면 최소 남자아이들의 6표가 반란을 일으켰다. 반대로는 여전히 24표의 남자아이들이 여자가 부반장이 되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였다.

문승협은 이런 결과를 낳은 배경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1학기 때와 다른 점이라면 이성짝꿍이 동성짝꿍으로 바뀌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떠오르지 않았다. 공간경계로 남녀를 구분한 제도가 역설적으로 남녀차별을 느끼게 하고 남녀평등을 생각하게 하였다. 동성짝꿍으로 바뀌자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뭉치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고삼랑선생의 마무리 말처럼 아이들이 그렇게 민주주의를 배워가고 있었다.

“기정아, 많이 당황했지, 진심으로 사과할게. 너의 의사를 묻고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어야 했는데, 내 맘대로 부반장으로 지명해 버렸어, 정말 미안해.”

“내가 쥐구멍만 있었으믄 그냥 들어갔다잉. 무자게 놀라고 황당했는디, 너나 된께 참고 넘어간 거여.”

“고마워 이해해 줘서.”

“그란디 말이어, 여자부반장지명을 뜬금없이 생각해 낸 것은 아니제?”

“실망스럽겠지만 갑자기 생각난 건 사실이야, 나는 반장선거에 나갈 생각이 없었거든. 근데, 1학기 반장선거 이후에, 왜 여자는 반장이나 부반장은 없을까 하고 생각은 했었어.”

“짝꿍이랑 가시나들이 다 하라는디, 싫다고 하기 어렵드라. 그나저나,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잉”

문승협은 현기정과 상의하여 부반장이 과학부장을 겸하기로 했다. 총무부장 박진숙, 미화부장 가병수, 급식부장 강모세, 오락부장 김철종으로 학급임원을 꾸렸다.

5학년 1반 2학기 반장선거는 학교전체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반장선거를 실시한 몇몇 학급이 여자부반장을 선출하였다. 최선경이 반장으로 선출되는 파격적인 일도 생겼다.

 

각학년 학급별임원선출이 완료된 수요일 점심시간에 교내방송이 있었다.

‘5학년 1∙2학기 반장과 부반장들은 합동체육시간에 학생회임원을 선출하므로 강당에 모이고, 다른 학생들은 교실에서 조용히 자습합니다.’

“승협아, 오늘은 태권도수업 안 하냐?”

“그런가 봐, 합동체육시간에 학생회임원선출한대.”

“너는 누구 뽑을래?”

“글쎄, 후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선출한다는지 모르겠다?”

“하기사, 학급임원도 그렇고 학생회임원도 그렇고, 다 작년부터 투표로 뽑기 시작했은께.”

“그래?”

“잉, 전에는 다 담임하고 학교에서 그냥 임명했어.”

문승협은 점심을 먹고 현기정과 대강당으로 갔다. 강당에는 단상을 향해 직사각형태로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문승협과 현기정이 먼저와 있는 최선경맞은편에 앉았다.

“최선경, 반장 된 거 축하해.”

“너도 축하해. 기정이도 축하해.”

“아따 나는 승협이 땜시 된 거여야.”

“호호, 사실 나도 승협이 덕분에 반장 된 거 같아.”

“무슨, 내가 뭐라고 나 때문에 되냐, 다 너희들이 자격이 있으니까 된 거지. ”

“아니어, 나는 니 때문에 부반장 된 거 맞어. 우리 반 가시나들이 1반 현기정이 부반장 됐다믄서, 이정주가 반장 하고, 내가 부반장 하기로 해서 된 거여.”

차여선이 문승협옆자리에 앉으며 불쑥 끼어들었다. 차연선은 올해 창설된 학교고적대대장으로 여자아이치곤 꽤 큰 키였다. 마침 학생회임원선출을 지휘감독할 엄정한선생이 지시봉을 돌리며 강당으로 들어섰다. 뒤늦은 아이들이 허겁지겁 자리에 착석했다. 김용남이 최선경 옆으로 두 자리 건너에 앉았다. 엄정한선생이 인원파악 후 교사수첩을 펼쳐보더니 학생회임원선출에 대해 설명하였다.

“6학년 학생회선배들이 2학기부터 중학교입학시험준비에 집중해야 해서, 너희 5학년이 2학기부터 앞으로 1년간 학생회를 맡는다. 학생회구성은 이전과 똑같은데 한 가지 바뀐 것이 있다. 원래 1명이었던 부회장을 이번에 남녀 각 1명씩 2명으로 했다. 여러분이 6학년이 되면 남중여중진학에 대비해 남녀로 분반되는 점을 고려했다. 따라서, 회장 1명과 부회장 2명, 총무부장 등 각 부장을 포함하여 학생회임원으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한다. 여기까지 질문 있나?”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앉아있는 5학년 1∙2학기 반장과 부반장들이 학생회회장을 포함한 임원을 거수로써 선출하는 대의원이다. 여러분 중 자천타천으로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각 부장에 출마할 수 있다. 선출된 부장은 차장과 부원을 뽑아 회장과 부회장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각 부의 정원은 10명 이내지만, 특수성이 있는 방송부 5명과 선도부 12명은 정해져 있다. 모든 결과는 학교의 승인을 받음으로써 확정된다.”

“차장과 부원도 여기 있는 사람으로 뽑습니까?”

“아니다, 차장과 부원은 상관없다. 다른 질문?”

“…….”

“회의진행을 위해 회장부터 선출해야 하니, 김용남이 임시회장을 맡고, 현기정이 서기를 맡는다.”

문승협을 포함한 모두가 김용남의 임시회장을 당연시하였다. 김용남이 단상 앞 테이블로 이동하여 엄정한선생 옆자리에 앉아 회의개시를 선언했다.

“지금부터 제33회 학생회임원선출을 시작할랍니다. 식순에 따라 먼저 회장후보를 추천해주쑈.”

다들 이리저리 고개 돌리며 눈치 보았다. 문승협이 손을 들고 김용남을 천거하였다. 곧바로 3반 반장 김일한이 5반 반장 백도엽을, 9반 반장 이정주가 김일한을 추천했다. 김용남이 예상치 못한 문승협의 천거에 의아해하면서도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회장후보자 공약발표순서로 넘어갔다.

김용남은 학교환경미화를 비롯하여 봄소풍과 가을운동회 등 학교행사에 육성회의 대폭지원을 약속했다. 백도엽은 학교도서관 도서다량확보와 개방시간확대, 김일한은 학예회개최와 학교폭력금지로 자유로운 방과 후 활동을 통한 즐거운 학교공동체생활을 내세웠다. 제적인원 30명의 거수투표결과 김일한은 8표, 김용남과 백도엽이 11표씩 동수여서 재투표로 이어졌다. 최종 16대 14로 김용남이 회장, 차점자인 백도엽이 남자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김용남의 준비된 공약에도 불구하고 박빙이었다.

문승협은 투표결과를 보고서야 왜 담임선생이 김용남을 2학기 반장선거에서 제외했는지 알았다. 전교학생회회장을 염두에 둔 사전조치로 짐작하였다.

“회장으로 뽑아준 여러분께 감사드리고요, 백도엽과 김일한이 말한 공약도 함께 추진할게라우. 그라고, 회장 본분을 항시 염두해서 학교발전을 위해 노력할랍니다.”

“저도 회장을 보좌해서 학교와 학생을 위해 최선을 다할게라우.”

김용남과 백도엽의 간략한 당선소감에 이어 여자부회장선출에 들어갔다. 7반 부반장 천영기가 차여선을, 9반 반장 이정주가 최선경을 추천했다. 차여선이 공약을 발표하며 갑자기 어설픈 서울말을 썼다.

“나는 여자부회장이 되면, 남자부회장 백도엽과 함께 회장을 도와 학생회를 잘 이끌겄습니다.”

“저는 학교와 학생회발전을 위해 여학생을 학생회활동에 적극 참여시키겠습니다.”

“그란디, 최선경은 전학 와서 학교도 잘 모르고, 여학생도 잘 모를 텐디 가능하까요?”

“여자부회장이 남학생은 몰라도, 여학생을 모르믄 곤란하지라우, 일리 있는 말인디요.”

김용남이 차여선말에 동조하는 발언을 하면서도 시선은 문승협에게 꽂혀있었다.

“그런 식이면, 고적대장은 지휘연습에 바빠서 시간이 없을 텐데, 학생회활동이 가능하겠습니까?”

학생회자리에 관심 없는 최선경이었지만, 차여선과 김용남에게 발끈하며 받아쳤다. 그러면서도 차여선이 아닌 문승협을 째려보고 있었다. 가뜩이나 차여선 행동이 못마땅하던 차였다. 의도적으로 접근하듯 문승협 옆에 앉아 다정히 대해 몹시 거슬렸다. 그런 차여선에게 아무 생각 없이 친절한 문승협모습에 언짢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대강당이 최선경과 차여선의 충돌로 싸늘해졌다. 문승협은 날카로운 최선경시선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냥 ‘착하기만 한 최선경도 화를 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강당의 침묵을 깼다.

“저처럼 5학년에 전학이라면 모를까, 4학년 때 전학 온 최선경은 1년 반이 넘었고, 적어도 최선경을 모르는 학생들이 없어서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회장은 중립을 지켜주십시오.”

“그래, 선출에 참고할 순 있어도 학생회임원자격엔 문제없다. 회장은 중립을 지키고.”

김용남이 계속 문승협을 째려보았다. 엄정한선생의 정리로 투표하였다. 최선경 14표, 차여선 16표로 차여선이 여자부회장에 뽑혔다. 웬만해선 침착을 잃지 않은 최선경이 울그락불그락했다. 그나마 편들어준 문승협의 따뜻한 시선을 위로 삼았다.

이어서 감사와 선도부장은 회장친위대라는 이유로, 방송부장은 학교상징성 때문에 갑론을박하며 선출했다. 기획부장, 총무부장, 체육부장, 미화부장, 문예부장, 연극부장은 회장과 부회장의 합의추천으로 단일후보에 과반수이상 찬성해 일사천리로 뽑았다. 현기정이 학생회임원선출명단을 정리하였다.

문승협은 감사와 선도부장에 추천되었지만 다 떨어졌다. 김용남이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암묵적 압력을 넘어 대놓고 반대했다. 감사에 천영기와 선도부장에 김일한이 맡게 되었다.

김용남은 자신을 회장에 추천한 문승협을 그동안의 저항을 접고 백기투항하는 항복으로 생각하였다. 그럼에도 감사와 선도부장에 선출되는 것을 막았다. 자꾸 반기를 들고 거슬린 문승협이 주류세계로 들어오면 자기 위상에 자칫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문승협은 김용남방해로 학생회임원에 탈락한 것은 상관없었으나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5학년 전체도 아닌 대의원으로 구성된 5학년 반대표들이 학생회장을 뽑는 것이었다. 학생전체를 대표하는 학생회장을 선출함에 있어 전체학생들의 의사반영에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엄정한선생이 현기정에게서 전달받은 학생회임원선출명단을 확인하고 있었다.

“선생님, 긴급제의가 있습니다.”

“잠시만. 그래 승협이, 무슨 내용이지?”

“네, 학생회는 학생전체를 대표하니, 학생들이 학생회임원을 직접 선출하면 좋겠습니다.”

문승협에게 모여있던 시선이 엄정한선생에게로 옮겨갔다. 김용남이 손들었다.

“폴쎄 투표가 끝나 부렀는디, 뭔 뒷북치는 소린지 모르겄네요잉.”

“용남이 말도 그렇다만, 각 반에서 반대표로 반장부반장을 투표로 선출했고, 반대표가 대의원으로서 학생회임원을 선출했는데, 승협이는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지?”

“먼저, 5학년학생들이 각반의 반장부반장을 뽑았지만, 그 반장부반장이 반대표가 되어 대의원과 학생회임원이 된다는 걸 몰랐고요. 전교회장을 선출하는데 5학년 대의원들이 전체학생의 의사를 반영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당장이 아닌 앞으로의 후배들을 위해 고민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선거로 뽑는디, 그것이 뭔 문제다우?”

“간접선거인지 뭔지 모르겄지만, 뭣 담시 불편하고 복잡하게 한다요?”

“그란께 말이어, 지금도 우리끼리 충분히 좋기만 하그만, 그냥 하던 대로 하믄 되제.”

“바로 그 우리끼리니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학생회가 전체학생을 대표하니, 모든 학생이 참여해야 합니다. 불편하고 복잡해서 안 한다면, 옷은 왜 입고 학교는 왜 다닙니까?”

김용남이 문승협발언에 비아냥대며 반론하자, 이번엔 차여선이 끼어들어 김용남편에 섰다. 급기야 최선경이 문승협 편에 서면서 두 번째 충돌했다. 곧이어 부회장 백도엽과 선도부장 김일한이 문승협 생각에 공감한다고 하였다. 문승협이 이에 용기를 얻어 다소 높은 강도로 김용남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통일주체국민회의와 미국대통령선거인단은 시민이 선출하기 때문에, 그들이 대의원으로서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건 동일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정당에서 먼저 대통령후보를 지명하고, 지지하는 대통령후보를 결정한 선거인단을 시민이 선출합니다. 그러한 미국도 승자독식의 선거인단투표결과로 당선된 대통령이 국민총득표수가 오히려 적을 수 있어서, 전 국민의사가 반영됐다기에는 미흡한 선거제도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언젠간 이 문제로 쿠데타나 폭동으로 미국민주주의가 도전받는 정치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도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미 선출된 대의원이 대통령을 선출할 뿐 아니라, 대의원 200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대통령후보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대의원을 장악한 권력인 의장이자 대통령이 단독출마하는 찬반 투표와 다를 바 없습니다. 대의원들이 추천해주지 않으면 후보로 설 기회조차 없는 구조에서, 자기가 대통령이 되기 쉽게 만든 일종의 편법이며 독재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승협, 말조심해. 어디서 그런 소릴 들었는지 모르지만, 함부로 그런 말 하다가 큰코다친다.”

“네?”

“독재니 뭐니 그런 말은 어디서도 하지 마라, 큰일 난다. 너희들도 다 마찬가지다, 알았나?”

“예.”

“무슨 뜻인지 잘 알았으니, 나중에 교무회의에서 논의해 보겠다. 이상.”

엄정한선생이 독재라는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문승협에게 주의를 주고 모두에게 말조심하라는 당부로 학생회임원선출을 마무리하였다. 문승협은 엄정한선생의 정색보다 결론 내지 못해 아쉬웠다. 화두를 던진 것에 만족해야 했다. 최선경이 강당을 나오면서 문승협 옆으로 다가왔다.

“너 차여선이랑 엄청 친해 보이더라, 혹시 예쁘고 그래서 사심 있냐?”

“차여선이 예쁘긴 하지, 그래 예쁘기만 해.”

“뭐야, 그럼 진짜 사심 있는 거야?”

“예뻐서 사심 있으면, 너한텐 오심 있다.”

“뭐라는 거야, 무슨 뜻이야, 똑바로 말해.”

최선경이 문승협 팔을 잡고 채근하는데, 현기정이 뛰어왔다.

“아야, 아까침에 엄정한선상님 겁나 무섭더라잉.”

“이름처럼 엄정해서 별명이 호랑이선생님이잖아.”

“그라긴 한디, 오늘은 좀 별라드라. 뭐라고 하끄나, 겁먹고 쫀 거 같은디 무서운 거?”

“아마 독재라는 말 때문 일거야. 전에 유신독재정권 뭐라고 TV에서 나오길래, 고모한테 물어봤었거든. 그런 말하면, 높은 사람도 다 잡혀간다면서 못하게 하더라. 엄정한선생님도 그런 뜻인 거 같아.”

“독재가 뭔디? 무자게 무서운갑다잉.”

최선경은 문승협대답을 생각하느라 둘의 대화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차여선 보다 최선경에게 관심이 더 많다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교실로 향해 가는 문승협과 현기정의 뒷모습을 보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오심? 무슨 뜻이지? 내가 심판처럼 오심했다는 건가? 친해지고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왜 서운한 건 자꾸만 늘어날까? 문승협을 확 독재해 버릴까 부다.”


1971년 박정희정권은 닉슨독트린 이후 데탕트정책을 남북관계개선의 기회가 아닌 위기로 판단했다. 국제적 긴장완화와 화해분위기가 조성되면 미국의 한반도개입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러던 차에 학생들의 교련반대와 부정부패 척결시위 등 대정부투쟁이 고조되자, 그해 12월 북한남침위협을 들어 10월 유신체제수립기반이 된 최초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미국조차도 타당성이 없다며 반대했지만, 북한남침위협을 빌미로 국가안보를 최우선시하고 일체 사회불안을 용납하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국민자유도 제한하겠다는 6개 항의 특별조치를 발표했다. 공화당은 국가비상사태선포의 법적근거를 마련하려고 대통령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하는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 법안은 경제질서에 대한 강력한 통제권한과 언론·출판, 집회·시위, 단체교섭 등 국민기본권을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제약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노동자들의 기본권리인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주무관청허가를 받아야만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사실상 두 기본권을 봉쇄해 버렸다. 신민당의 특별법 저지투쟁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의원들은 일부 무소속의원들과 새벽 3시 국회 4별관에서 특별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듬해 정권 안정과 명분추구를 위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김영주 북한조선노동당조직지도부장이 서울과 평양에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 3대 원칙인 7·4 남북공동성명을 동시에 발표했다. 이성명에는 중상비방 및 무장도발 금지, 남북적십자회담실시를 위한 적극협조, 서울과 평양 간 상설직통전화설치 등 합의사항도 포함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 남북한최고책임자들이 만나 당사자간 합의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 없이 정부당국자들 간 밀담을 통해 처리되었다는 한계성과 통일논의를 남북한권력자들의 권력기반강화에 이용하려는 정치적 의도만 담겼다. 남북상호 간 실체를 인정하지 않아 공존의 의지가 없어 빛을 잃었다. 박정희정권이 미국, 일본의 북한승인과 북한공식국호호칭사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종국적으로 한국에서는 성명을 발표한 지 3개월 만에 통일을 구실 삼아 10월 유신을 통해 반민주적인 유신체제가 들어섰고, 북한에서는 유일체제가 등장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5  정치상황을 살펴보면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1969 삼선개헌에 따라 치러진 1971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는 김대중과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더욱이 대통령을   연임한 상황이었기에  번째 대통령선거에 출마한다는  매우 곤란한 상황이었다. 장기집권욕망을 갖은 박정희로서는  이상 기존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권력연장을 위한 특별한 방법을 강구야만 했다. 게다가 1970 11 전태일분신사건과 이듬해 8 광주대단지사건에 이어 파월노동자들의 대한항공빌딩방화사건이 일어났고, 산업화과정에 소외되어 억압된 대중의 분노와 절망이 다양한 방법으로 분출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대중적 분위기도 박정희정권에 커다란 부담이 되었다. 체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보다 강력하고 억압적인 권력의 필요성을 증대시켜 극비리에 10 유신이 추진되었다.

마침내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박정희가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정지 등을 골자로 하는 4가지 비상조치를 대통령특별선언으로 ‘10월 유신’을 발표했다. 이러한 비상조치 아래 위헌적 절차로 12월 23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제1차 회의에서 박정희대통령이 제8대 대통령으로 재 당선되고, 12월 27일 취임함으로써 제3공화국헌법을 파괴하였다. 유신체제하에서 대통령은 국회의원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했다. 긴급조치권 및 국회해산권을 가지며 임기 6년에 횟수제한 없이 연임할 수 있었다. 대통령선출방식이 국민의 직접선거에서 관제기구나 다름없는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제로 바뀌었다. 이로써 행정·입법·사법의 3권을 대통령 1인이 모두 쥐어 삼권분립이 붕괴되고 종신 집권할 수 있도록 설계된 1인 영도적 절대적 대통령제였다.

이에 반발한 재야와 민주화 운동권 학생들은 박정희정권의 장기집권과 지배체제강화를 위해 단행한 초헌법적인 비상조치이자 유신쿠데타 유신독재라고 비난하였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은 더욱 치열해졌다. 심지어 정부와 여권내부조차 이를 둘러싼 권력갈등이 심화되었다. 내무부장관해임결의안을 가결시킨 항명파동도 벌어졌다. 유신체제 기본 골간을 규정했던 유신헌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무시였다. 그것을 명료하게 보여준 것이 통일주체국민회의였다. 안타깝게도 앞으로 다가올 역사의 비극적 소용돌이를 전혀 예감하지 못했다. (계속)


이전 18화 단테의 별 - 1권 1부 19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