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풋사랑인가? - (7)
추석연휴 다음날, 중화인민공화국 모택동(마오쩌뚱) 주석이 서거했다는 뉴스속보가 계속되었다. 지난 1월 주은래(저우언라이) 총리에 이은 중국최고국가지도자의 사망소식이었다. 일부 방송에서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발언을 보도한 홍콩발 뉴스를 차용하였다. 모택동주석의 전성기 때 천안문에 올라선 사진과 사망 후 모습을 비교한 화면을 배경으로 ‘위대한 영수이며 지도자이신 모택동주석은 천추에 빛날 것이다’라고 쓰인 흑룡강일보를 인용한 뉴스도 있었다.
며칠뒤 천안문광장 추도대회에서는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북한김일성주석이 등장했다. 모택동사망으로 문화혁명이 종결되고 주도자 4인방이 몰락할 거라는 전문가해설과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사설이 연이었다.
야당인 신민당 양파 합동전당대회에서 이철승이 총재로 당선되었다는 국내뉴스가 이어졌다.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해 중도통합론을 내세워 유신체제에 야합했다는 비난이 뼈를 때렸다.
점심을 먹은 학생들이 학교게시판 앞에 모여 웅성거렸다. 각 부의 차장을 포함한 학생회임원명단을 보며 갑론을박하였다. 임명직인 선도부와 방송부는 부원까지 공고되었다. 공고문하단에 ‘내년부터 4학년 이상이 직접 투표하는 선거를 통해 학생회장을 선출합니다’는 문구가 굵은 글씨에 빨간 밑줄로 강조되어 쓰여있었다.
“버스회사 아들, 병원장 아들, 선주 딸, 인쇄소 아들, 군인 아들, 사진관 아들, 두부오뎅공장 아들, 도매상 아들, 경찰 아들, 판사 딸. 승협이 느그 아부지는 뭐 하시냐?”
“뜬금없이?”
김철종이 손가락으로 게시판을 가리키며 중얼거리다가 등뒤에 있는 문승협에게 대뜸 아버지직업을 물었다.
“으째서 우리 승협이는 그냥 방송부원 밖에 못됐으까 해서.”
“방송부원이 어때서. 그리고, 아빠가 무슨 일 하는지는 뭔 상관이래?”
“순진한 시끼, 딱 보믄 척 나오그만. 봐라, 즈그 압씨들이 다 한가락 하잖애. 버스회사에, 병원에, 선주에, 경찰하고 판사까지.”
“그래?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나는 잘 몰라서 그런지 모범생들로만 보인다야.”
“에헤이, 용남이가 공부는 잘하제만 깡패잖애. 그라고, 차여선도 모범생은 아니제.”
“차여선은 왜?”
“차여선이는 키 크고 예쁘장해서 고적대장이 됐제, 머리에 든 것이 없어. 즈그 아부지가 큰 어선을 여러 척 갖고 있는 선주인디, 소문에는 엄마가 첩이라는 말도 있드라.”
“야, 그런 말은 어디 가서 하지도 마라.”
“너나 된께 하는 말이제, 내가 미쳤냐. 용남이도 말이어, 내막을 좀 아는 사람들은 감싸드라. 아부지가 일찍 세상을 하직하고, 어무니가 대신 버스회사를 경영하느라 신경 못써서 비틀어졌다고도 하드란께.”
“그래? 난 몰랐어.”
“도대체 공자께서는 아는 것이 뭐시요?”
“그래도, 부모님 직업 때문에 저렇게 된 건 아니야, 그건 확실해.”
“에효, 쥐포공장 공장장 압씨를 둔 나는 낄 자리가 없그만.”
최선경과 현기정도 궁금해서 왔다가 문승협과 김철종을 보고 끼어들었다.
“야 김철종, 공장장이면 얼마나 대단한 건데, 왜 자기 아빠를 무시해.”
“아이고, 선경마님 납셨소. 저는 마님의 자기가 아니어라, 승협공자님이 삐집니다요. 오메, 판사따님이신 기정아씨도 함께 납셨소잉.”
“염병하네, 철종이 너도 느자구 없어서 큰일이다.”
“김철종, 기정이는 아씨고, 왜 나는 마님이야?”
“선경마님은 임자가 있은께 그러지라우.”
“기정이 말대로, 진짜 염병한다잉.”
“옴마, 선경마님이 욕도하실 줄 아요잉.”
“어허 철종씨, 나한테 죽고 잡소?”
“오메 무서운 거, 선경마님 잘못해어라, 용서하쑈.”
“으이그, 끝까지 마님이래.”
“근디, 으째서 승협이는 학생회임원이 못됐으까?”
현기정이 김철종에게 문승협과 연관된 학생회임원선출과정을 설명했다. 천영기와 감사후보로 경쟁하고 김일한과 선도부장을 놓고도 투표했으나, 김용남의 강력히 반대에 부딪쳐 떨어졌다고 하였다.
“그 새끼는 으째서 고춧가루 뿌리고 지랄이대?”
“아조 입에 거품 물고 반대하드라,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가 다 민망해 부렀어.”
“맞아, 나도 화나더라니까.”
“다 지난 일이야, 그냥 잊어버려.”
“그래도, 승협이가 주장한 학생회장선거를 다음후배들부터 하게 돼서 다행이야.”
“그래, 선경이 네가 도와줘서 가능했지. 4학년 이상이라는 제한이 있어서 좀 아쉽지만, 학생들이 학생회장을 직접 투표해서 뽑을 수 있게 됐으니 그걸로 만족해.”
“아야, 나 일 년 꿇어서 내년에 학생회장선거에 출마하까?”
“아이고, 그래라 그래. 어이 철종이 후배, 선배 앞에서는 눈 깔아라잉.”
“큭큭큭. 그나저나, 승협공자는 선경마님 모시고 방송부생활 할라믄 여간 고되겄소.”
“고것은 또 뭔 말이다냐?”
“선경이가 방송부 차장이고, 승협이는 방송부원인께 상관으로 깍듯이 모셔야제, 안 그냐?”
“어? 벌써 겁먹었나 봐, 승협이 눈동자가 흔들려.”
“하하하, 나 들킨 거야? 차장님 잘 부탁합니다.”
“음, 하는 거 봐서. 나한테 잘하면, 내가 많이 예뻐해 줄게.”
“근디 말이어, 백여시가 하나 있어서 안 시끄러울까 모르겄다.”
“백여시가 누군디.”
“누군 누구여 차여선이제, 저그 게시판에 써있잖애.”
방송부원임명에 표준말사용이 핵심조건이었다. 차여선은 사투리 섞인 억양과 서툰 표준말로 방송부에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스스로 노력한다는 조건으로 임명되었다.
유선국민학교는 오랜 전통과 역사가 있는 무척 보수적인 학교였다. 그럼에도 지역시범학교로 새로운 제도를 시도하는 데 있어서는 전향적이었다. 방송부와 학생회장직접선거가 대표적이었다.
가을운동회를 한 달여 앞두었다. 5학년은 포크댄스, 태권도시범, 차전놀이를 하기로 결정했다. 점심식사시간을 30분으로 줄이고 나머지 30분 동안은 포크댄스를 연습하였다. 5학년학생들이 서둘러 점심을 먹고 운동장에 집결했다. 첫 포크댄스연습이라 다들 뻘쭘하게 서있었다. 오성희선생이 교복을 입은 여자중학교 학생들과 여선생을 이끌고 단상에 올라갔다.
“전체 주목, 잠시 소개할게요. 이분들은 여러분들에게 포크댄스를 가르쳐주러 오신, 목화여중무용반 선생님과 학생들이에요. 바쁜 시간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교의 간곡한 부탁으로 오셨으니까, 지도에 잘 따르고 잘 배우기 바래요, 알겠죠?”
“네.”
“안녕하세요, 우리는 바로 옆 학교에서 온 목화여중무용반 선생과 학생이에요. 열과 성의를 다해 가르칠 테니, 잘 따라주기 바래요.”
“네.”
“5학년 맞죠?”
“네.”
“이 가운데를 중심으로, 1반에서 5반까지 남학생과 6반부터 10반까지 여학생은 우측으로 모이세요. 그리고, 1반에서 5반까지 여학생과 6반부터 10반까지 남학생은 좌측으로 모이세요.”
같은 반 남녀끼리도 어색한데, 교실 층이 달라 평소 교류가 없는 다른 반 남녀가 함께 모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용선생의 지휘와 무용학생들이 보조하면서 질서가 잡혀갔다.
“서로 다른 반이라 많이 어색하죠? 포크댄스는 사교댄스와 다르게, 남녀노소 가림 없이 계속 짝이 바뀌는 춤이에요. 골고루 다양하게 사귀는 특징 때문에 계획한 거니까, 잘 따라주길 바래요.”
“…….”
“자, 이번엔, 한 조에 남녀 60명씩 두 줄로 짝을 맞춰 서세요.”
아이들이 서먹해하며 우물쭈물 어찌할지 몰랐다. 무용학생들이 나서 남녀 한 명씩 짝을 만들어 기준을 세워주었다. 우왕좌왕하던 아이들이 얼떨결에 따라서 줄 서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각기 다른 반 남녀로 한 조에 60쌍 120명씩, 600여 명의 5학년학생을 다섯 조로 나눠 줄 세웠다.
“지금 서있는 조와 짝, 앞뒤 학생을 잘 기억하세요. 앞으로 집합하면 항상 이순서로 섭니다, 알겠죠?”
“네.”
공교롭게도 첫 조 첫 줄의 기준이 된 남녀아이는 최선경과 문승협이었다. 그 뒤로 제갈민주와 김철종이 섰다. 셋째 줄에 가병수와 짝이 된 차여선이 불만스러워했다.
“저기 무용언니, 키 순서대로 서야지라?”
“아니, 상관없는디.”
“키 큰 여자랑 작은 남자랑 서믄 보기에 쪼까 근디, 안 그요?”
“괜찬해.”
“그래도 키를 맞춰야 보기 좋을 텐디요?”
“아야, 괜찬하다 안 하냐. 아니, 지도 키가 뗄싹 크믄서 그라네.”
제갈민주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차여선에게 핀잔주었다.
“너는 뭔디 껴드냐?”
“언니는 괜찬하단디, 니가 자꾸 같은 질문 해서 시끄럽게 한께 그러제.”
“염병. 야, 째깐한 것이 나대지 마라잉. 내가 차마 욕은 못하고 참는다잉.”
“음마, 염병이 욕이 아니믄 뭐대? 그라고, 내 이름은 야가 아니고 제갈민주여.”
“오메 환장하겄네잉.”
“시방 나 땜시 환장한 건 맞냐? 선경이가 승협이랑 짝꿍 해갖고, 눈꼴시려서 환장한 거 같은디? 환장하다 미친 사람 여럿 봤은께, 조심해라잉.”
“민주야, 그만해.”
제갈민주가 최선경을 질투하는 차여선에게 쏴 부치자 아이들 시선이 모였다. 최선경이 제갈민주를 말리면서 정리되는 듯했다. 차여선이 씩씩거리며 최선경을 째려보고, 최선경도 불쾌해하여 갈등의 여운이 남았다.
무용선생이 학생들을 단상 앞쪽에 두 개조를 세우고 뒤쪽에 세 개조를 세웠다. 무용학생들이 무용선생지시를 받아 조별 짝을 이룬 상태로 원형을 만들라고 하였다. 단상에서 보면 올림픽오륜기처럼 큰 대형이 만들어졌다. 무용선생이 나막신폴카라는 리투아니아음악을 틀었다. 둘씩 세 쌍의 무용학생들이 손을 맞잡고 포크댄스시범을 보여주었다. 무용선생이 기본동작을 배워보자며 짝꿍과 손잡으라고 하였다.
남자아이들이 남자가 무슨 무용이냐며 투덜거렸다. 여자아이들은 어떻게 남자랑 손잡느냐며 웅성댔다.
무용학생들이 부끄러워 손잡지 못하는 아이들을 귀여워했다. 무용선생이 빨리 손을 잡으라며 언성을 높였다.
아이들이 무용선생의 단호한 지시에 꾸물꾸물 움직였다. 더 이상 반항해도 피할 수 없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손잡으려는 시늉을 하였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손잡을 매개로 나뭇가지를 줍는 아이들도 있었다. 결국 웃으며 지켜보던 오성희선생이 나서 무용선생지시에 따르라고 호통쳤다. 아이들이 마지못해 손을 잡기 시작했다.
무용선생이 무용학생들을 보조로 포크댄스기본동작을 가르쳤다.
최선경은 차여선 때문에 불쾌했던 감정을 누그러뜨리며 문승협과 손을 맞잡고 동작을 배웠다. 손잡고 쑥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던 다른 아이들도 곧잘 따라 했다. 문승협은 최선경과 손잡은 긴장과 떨림으로 자꾸 손에 땀이 났다. 최선경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계속 닦아내기 바빴다. 무덤덤해 보이는 최선경이 얄미웠다.
첫날이라 조편성과 대형을 만들고 기본동작을 배우는 정도에서 끝났다. 여자아이들은 연습을 마치고도 배운동작에 관심이 많았다. 반면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과 손잡은 것에 호들갑 떨었다.
다음날은 짝꿍과 하는 동작을 익숙할 정도로 연습했다. 회전하면서 다음 짝꿍과 연결해 추는 과정을 배우는 중에 최선경이 모른 척 문승협에게 손수건을 쥐어줬다.
그다음 날엔 짝꿍이 계속 바뀌며 포크댄스를 마무리하는 동작까지 진행되었다.
문승협과 차여선이 짝꿍이 되는 순서였다. 차여선이 팔 잡고 돌다 비틀하며 문승협 품에 안겼다. 이를 본 제갈민주가 한마디 하자 아이들 시선이 또 집중되었다. 누가 봐도 차여선의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최선경에게 보란 듯 자극하는 차여선의 눈빛과 엉거주춤 안고서 당황하는 문승협태도가 증거였다.
연습이 종료되고 모두 교실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제갈민주가 최선경손을 잡고 뛰어가 문승협과 김철종을 따라잡았다. 바로 옆에서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대화하였다.
“선경아, 아까 그 백여시가 한 말 기억나냐? 내가 남자한테 환장하더니 미치기 전에 육갑한다고 한께는, 백여시가 뭐라고야 하고 앙칼지게 악을 쓰더라잉.”
“응, 기억나. 그 여시를 품에 안고, 좋아 죽는 바보도 기억나고.”
최선경이 문승협을 째려보며 대답하더니 제갈민주손을 잡고 교실을 향해 뛰어갔다.
“승협아, 애정전선에 문제가 생긴 것 같은디.”
“무슨 말이야.”
“어허이, 이런 무딘 놈이 있나. 재잘이가 말로 복수한 것까지는 좋았는디, 니 태도에 실망했다잖애.”
“누가?”
“복수는 차여선한테 한 것이고, 실망은 너여 이 멍충아. 재잘이 말을 다시 해석하믄, 차여선은 너한테 접근 중, 선경인 경계 중. 처신 잘해라잉.”
문승협은 잘 이해되진 않았지만 최선경에게 적당한 기회에 설명하라는 김철종충고를 받아들였다.
가을운동회가 가까워질수록 점심시간 운동장이 매우 혼잡했다. 점심시간이면 축구, 찜뿌, 다방구, 팔방, 땅따먹기, 고무줄놀이를 하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남녀아이들이 운동장에 뒤죽박죽이었다. 학년별 가을운동회연습까지 겹치면 통제가 어려울 정도였다. 선생들이 모여 연습시간을 조정했다. 5학년은 변화가 없었다.
5학년은 원래대로 점심시간에 포크댄스를 연습하고, 방과 후에 태권도와 차전놀이를 연습하였다.
그렇게 쉴 틈 없는 연습으로 전교학생들 사이에서 불평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종목별로 구성밀도가 높아 연습량이 많았다. 매일 계속되는 연습에 많은 학생들이 지쳐갔다. 도대체 가을운동회가 학생들을 위한 것인지, 학부모나 지역사회에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헷갈렸다. 가을운동회를 2주 남기고 교무회의가 소집되었다.
5학년은 참여인원을 나누어 규모를 축소했다. 남학생은 태권도와 차전놀이로 인원을 나눠 청백전을 하고, 여학생은 전원이 포크댄스로 화합을 상징하는 군무공연을 하기로 변경하였다. 남녀로 나뉘는 종목에서도 차별이 나타났다. 여자라서 태권도와 차전놀이가 힘들고, 남자라서 포크댄스가 안 어울린다는 논리가 그랬다.
1반에서 5반은 청팀, 6반에서 10반은 백팀이었다. 각 팀에서 선착순지원으로 70명씩 140명은 태권도를 하고, 나머지 80여 명씩 160여 명은 차전놀이를 하게 되었다.
태권도는 태극 1∙2∙3장 품새와 겨루기로 판단하고, 심사위원점수를 집계하는 동안 유단자와 빨간 띠 이상이 고려품새와 격파를 시범보이기로 하였다. 문승협은 태권도를 지도해야 해서 자연스럽게 청팀에 합류하여 주도적으로 연습에 임했다.
차전놀이는 학생들이 직접 꼰 새끼로 만든 동아줄을 나무동체에 감아 완성하였다. 청팀에서는 김용남을 대장으로 하고 머리꾼, 압채꾼과 뒤채꾼인 동채꾼, 놀이꾼으로 구성하여 전략을 짜가며 연습했다.
방과 후 5학년남학생들은 운동장을 나눠 태권도와 차전놀이를 연습하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연습이 없는 5학년여학생들은 남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마시도록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물 당번을 하였다.
오늘 물당번은 청팀에서 현기정과 박진숙, 백팀에서 최선경과 제갈민주였다. 여자아이들이 컵이 담긴 쟁반과 주전자를 벤치에 놓아두었다. 그 옆에 나란히 앉아 가을햇볕을 맞으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눴다.
문승협이 잠시 쉬는 시간에 물 마시러 가자, 박진숙이 컵에 물을 따라 주며 반겼다. 최선경과 제갈민주는 본체만체하였다. 포크댄스연습 이후 문승협에게 계속 쌀쌀맞은 눈치를 주었다.
문승협이 연습을 마치고 교실로 가는 길에 앞서가는 최선경을 불러 세웠다. 제갈민주가 최선경이 든 주전자를 받아 들고 먼저 교실로 갔다.
“선경아, 내일 뭐 해?”
“왜?”
“내일 한글날이라 쉬는 날이잖아, 같이 어디 좀 갈까 해서.”
“어디?”
“그건 내일 말해줄게, 꼭 알고 싶다면 지금 말하고.”
“몇 시?”
“12시.”
“어디서?”
“학교 앞 분식집.”
최선경은 차갑게 단답으로 일관하더니, 알았다는 말도 없이 획 돌아서 가버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