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by 이지하

주말에 영화 ‘얼굴’을 보았다. 시각장애인인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동환은 40여 년 전 실종되었던 어머니가 어느 날 백골 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함께 발견된 신분증 속 사진은 오래된 탓에 뭉그러져 있다. 어머니의 생김새를 알지 못하는 동환에게 빈소를 찾아온 친척도, 이후에 만난 어머니의 직장 동료도 수십 년 전 그녀를 아련히 떠올리고는 희미하게 비웃듯 입을 모아 말한다. “아휴, 아주 그냥 못생겼었어.”


친자매들로부터도 놀림을 받고 똥걸레라는 별명까지 달고 살았던 그녀의 얼굴은 영화의 말미까지 가려져 있다. 도대체 어떠했길래 그녀는 한참의 세월 후에도 ‘못생겼다’는 말로 평가받는 것일까. 상영시간 내내 온갖 괴이한 모습의 그녀를 상상했던 나는, 영화 마지막에 나온 사진을 보고는 멍해지고 말았다. 괴물로 단정 짓고 켜켜이 쌓아 올린 나의 상상 속 그녀와 실제 그녀의 모습이 너무 달라서였다.


눈을 뜨고 있어도 생각한 대로만 보려 했던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복잡한 마음으로 요즘을 영화 속 40년 전 그 시절과 비교해 보았다. 예전에 비하면 타인의 외모를 공공연히 평가하는 것은 무례하다고 여기는 추세지만, 미의 기준과 그에 따른 강박은 오히려 더 심해진 듯하다. 사실 이는 학교 현장에서도 꽤 자주 느끼고 있다.


먼저 학년 초 학생들이 제출하는 증명사진을 보아도 그렇다. 언제부터인지 학생의 실제 얼굴과 사진 속 모습이 심하게 차이 나기 시작했다. 예전엔 피부색과 눈매가 살짝 보정된 정도였다면, 요즘은 이목구비는 물론 얼굴형까지 심하게 달라져 있다. 실물을 증명할 수 없는 증명사진이다. 그러니 사진만 보아서는 아이들의 이름을 실제 얼굴과 연결지어 익히기 쉽지 않다.


다음으로 학생들의 화장하는 문화 또한 그렇다. 화장은 이제 아이들 사이에서 일상이 되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신을 꾸미는 모습이 좋아 보이면서도, 어쩌다 맨얼굴로 등교하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노메이크업이라며 하루 종일 마스크를 벗지 않는 아이도, 각종 메이크업 도구를 꺼내 비장한 표정으로 화장하는 아이도, 지켜보는 내 마음은 편치 않다.


두 경우 모두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는 식의 조언은 통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아내는 동안 이미 사회에서 요구하는 미의 기준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그들 눈앞에 펼쳐지는 세계는 끝없이 알려준다. 이건 예쁘고, 저건 아니라고, 이건 옳고, 저건 옳지 않다고.


학생에게도 자식에게도, ‘진정한 미는 내면에 있다’와 같은 이상적이고 원론적인 말을 하는 것은 허망한 시도일 뿐이라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계속해서 마음이 무거운 건, 나도 영화 속 인물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편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보며,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후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 내용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더불어, 좋은 영화의 요건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보고 난 후에도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영화, 등장인물이 선한 자와 악한 자로 명백히 구분되지 않는, 사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영화, 때로 인간은 타자의 시선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 ‘얼굴’을 보고 내내 든 생각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훌륭한 영화임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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