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들 알고 있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여자들이 남자들로부터 듣기 싫어하는 세 가지 이야기는 군대, 축구, 마지막으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는 것. 세월이 많이 흘러 축구는 남녀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즐기는 스포츠가 되었지만, (운동을 즐기지 않던 나조차도 김혼비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속 그녀들처럼 철봉에 박쥐처럼 매달려 준비운동을 하고 싶어졌으니!) 그 누구보다도 남학생들에게 축구는 여전히 엄청난 의미임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 있다.
3월 초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무척 진지했다. 사방에서 온갖 무시무시한 말을 들었을 터였다. ‘지금까지 중학교에서 받은 성적은 잊어라. 너도나도 80점씩 받던 그 절대평가 성적표는, 예쁜 쓰레기다. 고등학교 성적이 진짜이니, 긴장해라.’ 따라서 아이들은 중학교 때보다 부쩍 어려울 법한 수업 내용을, 그 무엇도 놓칠세라 사각사각 펜을 움직이며 받아 적었다. 쉬는 시간에도 자리를 지켰다. 그 기세대로라면 인서울이 뭔가, SKY도 우습게 들어갈 지경이었다.
그런데 학교는 교과서 안의 지식만 주입해서는 안되는 곳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도록, 아이들이 끓어오르는 호르몬을 학교 폭력이 아닌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하여, 4월이 되자 학년별 점심 시간 축구 시합 안내문이 교내 곳곳에 부착되었다. 그러자, 그동안 비현실적으로 잔잔한 호수 같았던 교내에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를 차분히 실천하던 학생들은 일제히 들썩이기 시작했고,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재빠르게 선수들을 꾸렸다.
세상에나, 공부가 다 뭔가? 이 학생들은, 축구를 위해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평소 자신의 존재를 은밀히 감추었다가 결정적 순간에 쫄쫄이 옷을 입고 날아다닌 스파이더맨처럼, 선수로 선발된 학생들은 언제 우리가 공부를 했냐는 듯, 매일 새벽같이 자발적으로 운동장에 모여 훈련을 시작했다. 그 때문에, 1교시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녹초가 되었고, 이후 어떤 수업을 들어도 병든 닭처럼 졸았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점심 시간 시작 20분 후 시작되는 시합을 위해 당연한 듯 식사를 건너뛰었는데, 이것은 선수가 아닌 그 반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응원을 해야한다며 같이 굶었다. 구경하는 다른 반은 어떠한가. 역시, 경기 참관을 위해 굶었다. 그래서, 하루 중 가장 알찬 끼니인 급식을 꾸역꾸역 다 먹고 경기 중반에서야 운동장에 슬며시 들어선 나는, 어쩐지 대역죄인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경기 전략도 다양했다. 상대 반 선수들이 공을 넣기 무서워할 법한 복학생 형님을 골키퍼로 내세운 반(복학생이 오케이 했으나, 동생들 틈에서 차마 재간둥이처럼 몸을 날리지 못해 6대 0으로 골을 먹었다), 멀쩡한 다리를 마치 부상을 당한 척 붕대를 감고 절뚝거리다가 경기 당일 혜성처럼 날아다닌 학생이 슛을 넣어 이긴 반도 있었다. (더러운 전략이라며 다른 반들로부터 제대로 욕을 먹었다). 날이 갈수록 경기는 점점 과열되어 진짜 부상자가 속출하였고, 반별로 깁스를 하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예상한 일이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분명히 다리가 골절되어 깁스를 하고 왔다는 학생이, 담임 교사로부터 절대 안정 및 이후 경기 출전 금지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다음 경기에서 또다시 깁스를 푼 채 운동장을 질주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부모님이 아시면 기가 찰 노릇이었다. 경기 중 뒤늦게 학생을 발견한 담임 선생님이 선수 교체를 외치고, 아이의 이름을 목청껏 부르며 나오라고 할수록, 그 아이는 점점 뒤로, 아득히 물러났다. 차마 선생님이 잡을 수 없는 운동장 한 구석으로 최대한 멀리 멀리. 절뚝거리면서도, 슛을 날리지 못하면서도. 녀석은 축구에 진심이었다. 그래서, 엄마의 마음으로 목놓아 외치는 담임 선생님과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뻣뻣이 고정한 채 경기가 끝날 때까지 꿋꿋이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시합이 끝난 후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불렀다. 도대체, 그 상태로 꼭 그렇게 뛰어야만 했냐며. 너 그러다 그 골절당한 부분이 제대로 낫지 않으면 어떡하냐며, 계속 그 상태로 지낼 수도 있으면 어떡하냐며. 넌 무엇을 위해 그렇게 뛰었냐며.
단호하고도 시원시원한 표정으로 아이가 대답했다. ‘이기고 싶어서요. 승리가 중요해서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녀석에게 승리란 무엇인가. 모래 먼지 폴폴 나는 운동장에서 단 30분 동안 펼쳐지는 그 경기를 위해, 과연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말이다.
시험은 다가오는데 축구 열기로 떠들썩한 학교 분위기가 도저히 차분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교사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에 중간고사 전 1주일 간 경기를 잠시 중지하고 남은 경기는 시험 마지막 날부터 재개한다고 공지하니, 즉시 학생들의 항의가 들어왔다. 왜냐고 물으니, 경기 전략을 짜야 해서 경기 직전인 당일 시험 시간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단다. 그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결국 일정을 다음 날로 미뤄야 했다.
오전에 학생이 복도에서 갖고 놀던 공을 압수했던 선생님이, 종례 후 교무실로 온 학생에게 공을 돌려주자 그 즉시 복도에서 공을 튀기는 소리와 함성 소리가 퍼졌다. 도대체 이 아이들에게 축구는, 공은 무엇인가. 무턱대고 뛴다고 보기엔 그 자세가 너무 일관되게 결연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기엔 심연처럼 깊다. 확실한 건, 그 공 하나가 엄청난 의미라는 것이다. 노래 가사처럼 ‘점 하나에 울고 웃는’ 이 아닌 ‘공 하나에 울고 웃는’ 아이들. 어쨌거나 녀석들은 행복해 보이니, 그걸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