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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공돌이 Dec 24. 2022

전문가 검열주의

의문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

미국 의회 증인석에서 "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내가 생물학자가 아니라서 모른다"라 증언하는 사람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나는 이 장면이 현재 세상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생물학 박사가 아니면 여성이 무엇인지 얘기하는데도 조심해야 하는 사회. 새로운 시대의 검열주의(censorship), 바로 전문가 검열주의다.


전문가 검열주의는 전문가 존중, 계몽, 지적 겸손함, 사짜 축출 등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과 구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 정치나 경제적 동기가 강한 집단의 보호를 받거나 그들의 눈치를 본다. 

두 번째, 논리적 반박만 하면 되는데 굳이 권위에 대한 호소, 무시, 무조건적 부인, 조롱, 인신공격 등을 적극적으로 섞는다.

세 번째, 논리가 매우 복잡하고 자주 바뀌고 있어서 목소리가 큰 사람이 내러티브를 주도한다.

네 번째, 일반인들이 모르는 거창한 용어(jargons)와 개념을 일부러 더 많이 사용한다.


이런 사박자가 제일 잘 갖춰진 최신 분야가 블록체인 분야였다. 나는 루나 하락이 시작되었을 때 구조상 회복이 힘드니 탈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해 첫 반응은 네가 블록체인에 대해 뭘 아는데 그런 주장을 하는가였다. 아예 한 단톡방에서는 코인업계 대표가 내 주장에 대해 여기서 그런 걸 알 수 있는 전문가는 아무도 없다는 메시지를 직접 썼다. 그 몇 년 이전에 서울대 경영대 교수님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블록체인과 코인의 미래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반응은 세계적인 전문가들은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그걸 확신하냐였다. 물론 그때도 논리적 반박은 하나도 없었다. 세월이 흐르며 내가 했던 주장들은 많은 부분이 그대로 실현되었고, 그렇게 지금은 주요 투자자들도 조용히 뒤에서 자문을 구하는 "전문가"가 되어버렸다.


사학과 고고학도 대표적인 분야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대히트를 친 그라함 핸콕은 사학자가 아니었지만 고고학계가 주장하는 시기보다 앞선 문명이 있었을 것이라 주장하다가 조롱도 당하고 심지어 음모론자로 낙인찍혀 고고학적 증거에 대한 접근도 금지당했다. 하지만 터키에서 Gobekli Tepe가 발견되면서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라함 핸콕이 맞고, 그를 집단으로 린치하고 조롱한 고고학자들이 틀렸음이 밝혀졌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데란쿠유를 2010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관광 가이드는 확신에 차서 이 시설이 로마 시대에 그리스도교들의 피난 시설이었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이 지나고 그보다도 1000년 가까이 전부터 그 시설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나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경청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전문가와 가짜 전문가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 전문가와 가짜 전문가의 궁극적 차이는 진짜 전문가는 반박을 하지 검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지인 전문가들은 뭣도 모르는 내가 이상한 주장을 하면 일단 들어준다. 그리고 때로는 동의를 때로는 반박을 때로는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 준다. 블록체인도 내가 화폐에 대해 얘기했을 때 내 기준으로 진짜 전문가들은 "토론 한 번 하면 재밌겠다"라 반응을 했고 가짜 전문가들은 "네가 뭘 아냐"라 얘기했다. AI분야에 대해서도 내가 상상력을 동원해 멍청한 글을 써도 오류는 차분히 반박해주고 모르는 것을 채워준 친구도 있다. 대학 다니던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학부생의 흥분된 주장을 정리된 지식으로 승화시키는데 도움을 주신 교수님들도 있고, 무시하고 비웃는 교수님들도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전문가 검열주의는 가짜 전문가들이 진짜 전문가들의 권위에 무임승차하는 행위로 정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전문가이고 누군가 틀렸으면 논리에 입각하여 지적하면 된다. 비난하거나 조롱하거나 입을 막는 것은 불안감과 좁은 시야의 발로이거나 다른 저의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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