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그만큼 헤어진다. 친구도 연인도 그냥 아는 사이도 언젠가는 헤어진다. (서류상으로라도) 영원한 관계는 결국 부모 자식 간뿐이다. 부부도 헤어질 수 있다. 그러니 헤어지는 건 별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슬퍼한다. 상대에게 쏟은 시간과 애정이 아까워서 슬퍼하고 상대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달은 대가로 슬퍼한다. 그리고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나 역시 연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듣거나 친구가 말없이 떠났을 때마다 이유를 궁금해하곤 했다. 이미 내 전화번호를 지우고 모든 매체에서 꼼꼼하게 나를 차단한 사람에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대체 왜 헤어지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대개는 무시하거나 곤란해했지만 간혹 이유를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상대가 떠드는 동안 나는 전생의 전생부터 죄를 지어온 천하의 몹쓸 사람이 되어 고개를 숙이고 힐난을 들어야 했다. 그럴 때 과연 “내가 고칠게”라는 말이, 의지가, 진심이 소용이 있었을까. 이 모든 게 결국은 상대방이 합법적으로 나를 비난할 기회의 장을 열어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 아니라 스스로 감정쓰레기통을 자처하는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이제는 헤어지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변명들은 대개 즉흥적이다. 그럴 만한 사건이 있을 때도 있지만 그것이 트리거인지 헤어질 기회였는지는 본인만 알 것이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믿으면서 갑자기 싫어졌다는 말은 믿지 않고 그냥 좋다는 말엔 딴지를 걸지 않으면서 그냥 싫다는 말엔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모순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헤어지길 바란다면 그 이유가 긍정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정당한 것도 아니다. 감정에 아무리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여 봐야 과학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설명이 될 리 없다. 그런데도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나를 떠난 죄책감 혹은 그 자체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조악한 말들을 나를 싫어하는 게 마땅하다는 식의 열등감으로 받아내야 할 까닭이 대체 무엇인가. 그러니까 궁금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그냥 받아들이는 게 낫다. 만약 내가 싫어서 떠난다는 사람이 굳이 그 이유를 말해주려고 하거든 괜찮다고, 하지 말라고 거절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면 내가 상처받을 일은 반으로 줄어든다. 상대방이 말하고 싶어서 답답해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니까.
떠난 버스와 떠난 사람은 잡지 말라고 한다. 그 사람이 나를 이해해주는 이 세상의 마지막 사람일 것 같아도 떠난다고 하면 굳이 잡을 필요가 없다. 세상에 기회는 많고 사람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