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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May 07. 2024

한 끗 차이였을까?

-목표지향적 학생의 일장춘몽-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가

며칠 전 기억 저편에서 갑자기 소환된 일이 있다.


때는 1984년 가을.

나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독학해서 대학에 가겠다'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2년이면 고등학교 과정을 다 마치고 대학시험을 보는데 충분하겠습니다.

굳이 1년이란 시간을 허비하며 남들처럼 3년의 고등학생시절을 보내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는 내가 전교 688명 중 97등을 했을 때보다 더 당황하셨다.

폭탄을 던져둔 후의 고요함이 며칠 지속되었다.


고1 첫 시험에서 나는 가까스로 전교 100등 안에 들었다.

시골 중학교에서 1등만 하다가 도시 명문고에서 생전 처음 보는 숫자 97등을 하니

수치스러움이 말할 수 없었고, 이대론 원하는 대학에 못 갈 수 있다는 두려움마저 엄습했다.


복잡한 감정과 냉철한 생각 사이를 오가며

편히 잠들지 못한 밤을 보낸 다음 날 

나는  '앞으로 시험을 볼 때마다 등수를 반씩 접어들어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후 공부하는 기계가 된 나는 다음 시험에서 45등, 그다음 시험에서 24등, 그다음 시험에선 12등

마지막 시험에서 전교 8등까지 한 번도 주춤거림 없이 맹렬하게 직진했다.

경주마처럼 안대를 하고서

거기까지 달려오는데 거의 6~7개월이 걸렸다.

선행학습으로 무장된 도시의 680여 명 경쟁자들을 상대로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따라잡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공부를 100미터 달리기처럼 했던 것 같다.


학습로봇이 되어 지내던 어느 날

대학입시 전 필요한 공부시간을 모두 계산해 봤다. 

과목별로 구체적인 일정까지 다 검토하고 나니까 자퇴할 결심이 섰다. 


 

집안 행사 때문이었는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며칠 뒤 집안어른들이 서울에서도 내려오고 부산에서도 와서 다 모이셨다.

그리고 나를 방 한가운데 앉혀놓고 다들 조심스럽게 한 마디씩 조언하셨다.

"고등학교 시절이라는 게 공부만 남는 게 아니다.

친구들과 추억도 남고,

사회에 나가면 고등학교 동창, 선후배만 한 인맥도 없다.

또 ~~~"


 '아! 어른들이 합심해서 나를 틀에 박힌 기둥에 묶어두기로 도모하셨구나.'싶었다.

어른들은 내게

'공부하는 시간으로 봐서는 2년이면 충분할 수 있어도

삶에서 다른 요소들을 고려한다면 그 시간절약이 결코 절약이 아니다.'라고 하셨지만

그건 모두 가정법 위에 세워진 상상들이었다.

내 생각이 나의 상상 위에 세워진 것처럼

어른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임을 분명히 인식했다.

하지만 한 시간 정도 설득을 당한 나는

결국 어른들의 중지를 받아들이는 편이

대학 졸업 후 유학생활을 할 때까지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

자퇴는 찻잔 속 태풍으로 급히 막을 내렸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지금 돌아본들 별 의미가 없다.

다만 나 자신에게 비겁했다는 생각이 들긴 하다.


십 년 전 즈음 큰아이가 수능을 봤다.

그리곤 우리 부부에게 다소 생경한 A직업학교로 진학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큰애는 자신의 소신대로 선택한 진로가

대다수 학생들과는 다른 기회비용이 청구되는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애의 얘기를 다 듣고나서

잔소리나 설득,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등록금을 내주었다.

큰애는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 비겁했다는 마음은 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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