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멘, 신흥상회, 퇴근길호프, 하이쿠모
문래에서 뭐 물래? (웃음)
5월 모임 계획중 준회원님의 희망사항, 노포! 야장! 그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5월의 맛동산은 봄바람 솔솔 부는 문래에서 모이기로 했다. 문래동의 낮은 건물들을 좋아하는 터라 간간히 들러 흠뻑 취하곤 했으니, 당연하게 맛동산과도 함께 취했던 적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허나 뒤를 돌아 걸어온 길을 살펴보니 문래는 없었다, 회장님과의 유닛 모임 정도? 오히려 좋다. 맛동산의 첫 문래, 토요일 오후, 비행을 마치고 뒤늦게 합류할 준회원을 제외하고 대낮에 집합했다.
본래 맛동산은 일찌감치 모여 평냉 혹은 라멘부터 해치우곤 했다. 그때처럼 다들 백수도 아니거니와 시간 맞추기도 어려워 근래에는 저녁 본 게임부터 시작하곤 하지만, 오랜만에 대낮에 만났으니 라멘집 하나는 들러야했다. 호로록한지 오래다, 익히 알고 있었던 문래의 '로라멘' 앞에서 회장님과 총무님을 만났다.
최근 맑은 국물을 선호하는 필자는 시오라멘을 먹고자 기대를 품었지만 키오스크에서 보이지 않는 시오! 아쉬움은 사치, 곧장 이곳의 오리지널인 '교카이돈코츠라멘'을 누르고 회원님들과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웬일로 맥주도 시키지 않고 오로지 라멘만. 금방 나온 라멘. 얇은 면에 다양한 씹을 거리들, 녹진하지만 세지 않은 간, 기대한 것보다 더 맛있게 한 그릇 뚝딱했다. 라멘 가는 길에 밥은 왜 자꾸 따라오는지, 결국 또 말아버렸다. 최근 주춤한 라멘의 길을 다시금 걷자고 부추기는 깔꼼한 맛집이었다.
자, 이제부터 할 말이 많아진다. 문래의 노다지를 발견했다. 4월, 회장님 생일 잔치 모임에 이어 5월은 준회원님의 축하 자리. 어디 케익이라도 사보려 문래의 카페 이곳저곳을 돌았지만 조그마한 조각 케익들 뿐이었다. 시간도 많겠다, 저기 투썸이나 다녀오자라며 오고 가는 그 길에서 우리가 진정 원하는 곳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이름하야 '신흥상회'
좁디 좁은 가맥집이었다. 야장 자리가 있었으나 아버님 세 분이 얼큰하게 한잔하고 있던 터라, 감히 넘보지 못하고 소심하게 기웃기웃 가게로 들어섰다. 은진포차에 예약은 걸어두었지만 감감무소식. 천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부터 시작했다. 커피라기보다야 구수한 숭늉과 같은 집커피의 맛, 필자는 또 이런 맛이 좋다. 하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은 우리의 고민. 나가야 돼? 말아야 돼? 에라이, 맥주나 한 캔하며 생각하자.
아직 녹아들지 못한 우리의 어수선함. 준회원이 왔을 때만해도 아직 우린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맥주 한 캔씩을 비울 무렵, 소주를 한 병 시켰다. 단조롭지만 이러한 술도둑이 어디있냐며 두부김치와 스팸을 앞에 두고 우린 맛있는 맛만을 쫓으며 잊고 있었던 맛동산의 진정한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님들이 바깥 자리에서 일어나셨고 우린 누구보다 빠르게 그 자리를 탈환했다. "사장님, 저희 저기 밖에서 마셔도 되나요?"
하, 좋지 아니한가. 늘어나는 소주병에 맞춰 소시지를 추가했다. 양파에 머스타드까지, 이런 사소한 것에서조차 깊은 감화감탄이 나오는 알딸딸함에 이르렀다. 거기에 사장님이 한 술 더 뜨셨다. "여기 스피커 되니까 블루투스 연결해서 듣고 싶은 노래 들어" 참나, 이제 필자를 말릴 사람! 아무도 없도다!
그래, 너만 행복하면 형들은 그거로 됐어. 준회원님의 막간 생일축하까지 야무지게 챙기며 문래의 밤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달아오른 분위기, 사진을 남겨보자!
정말 좋다라는 되뇌임과 제 2의 비틀즈 '맛동산 밴드'를 결성하자는 이야기와 신흥상회의 앰버서더가 되어 이곳을 아지트 삼자라는 꽤 그럴싸한 수준 높은 헛소리까지, 그득그득 채우고서 슬슬 자리를 뜰 준비를 했다. 사장님이 친구들과 약속이 있으셔서 타임 리밋을 걸어두셨기 때문에 말 잘 듣는 우리는 딱! 일어났다. 넷이서 49,000원. 마지막엔 값으로 감동을 주는 곳, 신흥상회였다. 아쉬운 발소리를 들으셨는지 사장님께서 "전화를 하고 오지 그랬어" 라고 하시기에 '그래, 다음엔 미리 전화를 드리고 아주 판을 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도 좋다, 라는 만족감이 솟구치던 우리였다. 하지만 곧 죽어도 그렇게는 안되지! 문래의 중심으로 가자, 퇴근길호프! 이름부터 좋다. 이제 야장은 펼치지 않는 것 같다만, 넓어진 내부에 화장실도 새로 생겨 더 갈 곳이 아니겠는가. 어차피 취했고 배는 부르다, 부담스럽지 않고 가벼운 안주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 이곳이 제격이었다.
뭐 이제 그냥 놓여진 대로 집어 먹는 취함이렸다. 짠의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아, 사진을 보니 소주가 당긴다.
기어코 또 사진 한 장을 남기고서 소주잔을 비워냈다. 야금야금 비우던 소주병이 쌓였고 총무님이 갈 때가 되었다.
왜인지 함께 있을 때보다 떠날 때를 더 즐거워하는 듯한 그의 뒷모습.
어느새 맛동산 공식 퇴근길이 되어버린 증산, 그리고 심야식당 텐조. 택시를 타고 곧장 술집으로 갔지만 대기라는 현실. 꿩 대신 닭이렸다! 맞은 편, 하이쿠모로 점프. 텐조 사장님께서 함께 운영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스탠딩바이며 스몰 안주들이 맛깔나게 자리 잡은 곳! 텐조가 좋았으니 이곳 또한 좋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우린 점점 인간의 모습을 벗겨내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일본의 시티팝 음악들은 흥을 깨우고 급기야 터트리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춤사위로 하이쿠모의 물을 흐리기 시작했다. 와중에 시킨 마구이와 나폴리탄은 취한 배를 채우기에 너무나 훌륭했고 하이볼은 꿀떡꿀떡 넘어갔다.
이날 우리는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걸까. 사장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긴 한 걸까. 뭐, 사장님의 미소를 한 차례 포착한 적이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취해서 썩소를 미소로 본 것일까. 뭐, 뭐, 그렇다.
기어코 또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한 봉다리 사간 우리, 도착하자마자 철푸덕 고꾸라지는 준회원님. 시도는 해보았지만 하이쿠모에서 모든 걸 털어냈던 건지 도저히 마실 힘이 없는 필자가 뒤이어 쓰러졌다. 회장님은 맥주를 까긴 깐 것 같다만 그도 곧이었다. 화끈한 하루의 마지막에서 우리 모두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