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떠났다. 1월의 어느 날, 살과 뼈를 파고드는 매서운 추위가 이어졌지만, 나는 아주 추운 강원도 바닷가로 향했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마음을 차라리 살을 에는 추위로 잊고 싶었다. 눈을 뜨면 찾아오는 놀랍도록 무서운 그리움을 피해 도망가는 뭐랄까, 야반도주 같은 것이었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은 없는데 철마다 떠나는 이가 꼭 하나씩은 생겨, 꽃 피는 봄에는 엄마를, 초록이 우거지는 여름에는 반려견 쫑이를, 울긋불긋한 가을에는 아버지를, 그리고 괜스레 마음까지 추운 겨울에는 아주 오래된 연인인 K마저 나를 떠났다. 몇 년 사이, 철마다 겹치지 않게 그리워하라며 그렇게 떠났는지, 변하는 계절 나를 옥죄는 그리움에 그저 멀리 떠날 수밖에 없었다.
K는 9년 전, 친한 친구의 주선으로 처음 만났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듬직한 어깨를 보고 첫눈에 반해 그렇게 처음 만난 날부터 9년을 매일 만났다. 5년 전, 그리고 연이어 두 해 동안 부모님과 하나뿐인 반려견 쫑이를 연달아 떠나보냈을 때도 K는 내 옆을 지켜주었다. 내가 하루에 열 번 무너지면 K는 열한 번 나를 끌어 올렸다. 가족이 모두 떠난 나에게 K는 든든한 울타리였고, 곧 있으면 서류상으로 완벽한 가족이 될 터였다.
눈이 아주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그날 나는 신혼집으로 이사를 위해 연차를 내고 짐을 정리하는 중이었고, K는 미처 빠지지 못한 출장으로 연신 미안해하며 지방에 내려가 있던 참이었다. 정신없이 짐을 옮기느라 몇 시간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지 못한 그 사이, 부재중 전화가 수없이 쌓여 있었고, K를 소개해 준 J의 번호가 화면에 뜨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순간 공기가 차가워지고, 불안한 예감은 불행하게도 빗나가지 않았다. K가 죽었다. 눈길 다중 추돌 사고였다.
그렇게 허무하게 마지막으로 남은 가족인 K마저 잃고,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내 곁에 있는 이들이 남김없이 떠나는 와중에 도저히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힘이 나지 않았다. 그길로 마저 정리하지 못한 신혼집에 틀어박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정리되지 않은 짐들을 이리저리 놓아보며 집을 꾸며댔고, 걸레질을 다시 하기를 수십, 수백 번 반복했다. 돌아오지 않을 K를 위해 집을 치우고 또 치웠다.
그렇게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이 한 달쯤 지났을 때, 형용할 수 없는 외로움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나를 휘감았다. 24평 남짓한 공간에 홀로 있는 것이 마치 온 우주에 생명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최대한 빠른 표를 예매하고 그렇게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새벽에 도착한 바닷가는 불빛을 찾아볼 수 없는 어둠 그 자체였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만 이곳이 바닷가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겨우 허름한 민박집을 하나 찾아 선잠에 들었다. 내내 꿈에 K가 어른거렸다. 겨우 해가 뜨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바다로 향했다.
코발트블루 색을 띤 바다는 무섭게 파도를 치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바라보다가 마치 저 깊은 바다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저 바다에 뛰어들면, K를 볼 수 있을까. 엄마와 아빠를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한참 바다를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꼬르륵, 배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렇게 처절하게 슬픈 와중에도 배는 고팠다.
바닷가 앞 아주 자그만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 한 잔과 고소한 스콘 한 조각을 주문했다. K가 좋아하는 메뉴였다. 나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서 K가 새삼 나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뿌리 내렸는지 느꼈다. 내 삶의 방식 대부분은 K가 만들어 놓을 것이었다. 커피잔을 내려놓은 곳에 작은 편지지와 볼펜이 놓인 상자가 있었다. 상자 윗부분에는 작은 글씨로 ‘느린 편지, 1년 뒤에 도착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가만히 놓여있는 펜을 집어 글씨를 적어 내려갔다. K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보낼 곳이 없어 신혼집 주소를 적어 넣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강원도 바람이 어찌나 매서웠는지 몸살에 걸려 며칠을 앓아누웠다. 먹는 것마다 게워 내고,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어지러운 날이 지나기를 며칠, 병원에 간 나는 또다시 K를 사무치게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지켜야 할 진짜 가족이 생겼다. 임신이었다.
그렇게 다시 1년이 지나고, 아이가 100일이 됐을 무렵, 나는 더 이상 K를 그리워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상에 그리움은 사치였다. 거의 죽어가는 나를 위해 J와 친구들이 찾아왔다. 조촐하게 100일 기념 잔치를 겸하는 날이었다. 손에 가득 선물을 가지고 들어오던 J가 편지봉투를 함께 들고 들어왔다.
우체통에 있길래 꺼내 왔어. 그런데 발신인에 네 이름이 적혀 있는데.
나는 우편물을 받아 열어 보았다. 1년 전, 그날 카페에서 썼던 편지였다. 나는 J에게 잠시 아기를 부탁하고 식탁에 앉아 편지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마치 그날로 돌아간 듯 커피와 스콘의 향, 공기의 냄새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K에게.
안녕. 자기야. 잘 지냈어? 아니, 잘 지내고 있어?
나는 어젯밤에 바다를 보러 여행을 왔어. 강원도에 있는 작은 동네야.
바닷가 구경을 하다 우연히 작은 카페에 들어왔는데, 당신이 좋아하던 진한 커피랑 스콘을 같이 팔더라고. 한 입 맛 보니 당신이 정말 좋아할 맛이다.
우리 신혼집을 아주 말끔하게 정리해 놓았어. 안방은 당신이 좋아하는 코발트블루 톤으로 꾸미고, 거실은 내가 좋아하는 깔끔한 톤으로 마무리했지. 우리 집을 봤다면 K도 분명 정말 멋지다고 좋아했을 거야.
사실, 당신을 따라가고 싶은 생각으로 바닷가에 왔는데, 바다를 한참 바라보다 보니까 더 이상 죽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오늘까지 당신을 아주 열렬히 그리워하고, 이제 내일부터 적당히 그리워하면서 다시 살아보려고.
당신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배는 고프고, 잠이 들고, 목이 마르더라. 여전히 그립고, 여전히 아프지만 그럼에도 잘 살아가 볼게. 아주 먼 그날, 당신을 다시 만나서 들려줄 이야기를 잔뜩 가지고 갈게.
편지를 읽고 이제 더 이상 깔끔하지 못한 거실과 아기용품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안방을 한 번씩 돌아봤다. 그리고 그날, 어쩌면 나를 살렸던 내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방긋 웃는 얼굴에 K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