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 살일러. 마흔넷에 꿈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른 아침 알람소리에 잠에서 깨면 가장 먼저 무슨 일을 할까?
화장실 가서 용무보기? 핸드폰 보기? 물 마시기?
아니, 나는 알람을 끈다.
더 울리면 아이가 깬다. 그럼 큰일이다.
그리고 기지개를 켜고, 양치를 하고, 미지근한 물 한잔을 떠서는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친다.
그래도 잠이 안 깬다면 창문을 열고 찬바람을 만끽한다.
(가끔 춥기도 하지만, 오늘도 해냈다는 뿌듯함이 가슴속으로 밀려올 때가 더 많다.) 그러고 나서 다시 책상에 앉아 펜을 잡고 본격적으로 쓰기를 시작한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며, 결국 내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나의 하루는 이 구절을 쓰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서 3페이지의 글을 채워 쓰기 시작한다.
아침에 모닝페이지를 쓰기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이다.
이 생활이 시작되고부터 참 많은 것이 변했다.
오늘은 나의 모닝페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사실 나는 모닝 페이지를 미래 페이지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침마다 나의 미래를 만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
모닝페이지란 매일 아침 의식의 흐름에 따라 3페이지 정도 글을 쓰는 것을 말한다.
뭐든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거나 써도 상관이 없다.
대신 아침에 일어나 머리가 깨어나는 시간에 무조건 3페이지를 채워야 하는 제한이 있다. 주제는 없다. 나의 일상, 감정, 생각들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적어나가면 된다.
모닝페이지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기 때문에 내 심중을 솔직하게 적어보는데 의의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감정을 쏟아내고 그 감정의 원인을 찾아보는 시간이 결국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 된다.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결국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감정들과 마주할 수도 있고, 지금껏 몰랐던 또 다른 나의 모습과 마주할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그리고 가끔은 부끄러웠던 나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비난을 할 수도 있고, 반성한 후엔 보듬어 줄 수 있는 나로 발전해갈 수도 있다. 이것이 모닝페이지의 목적이자 매력이다.
'나를 변화시키는 터닝포인트, 미라클 모닝!'
모닝페이지를 처음 만나게 해 준 문구였다. 미라클 모닝을 소개하는 유튜브에서 나왔던 문구였는데 어디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저 문구에서만큼은 왠지 빛이 났다. 시작만으로도 뭔가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후광이랄까? 그래서인지 이 문구만은 아직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후광 덕인지 문구를 만나고 바로 다음날 나는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고 함께 시작한 것이 모닝페이지였다.
그리고 이제 미라클 모닝도, 모닝페이지도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어가고 있다.
원씽(One thing)이라는 책에서 보면 행동이 습관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66일이라고 한다. 그럼 이제 거의 습관이 되지 않았을까?
솔직히 습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나는 열심히 하고 있고, 처음과 달리 이제 아침에 눈뜨는 시간이 그렇게 괴롭거나 피곤하지 않다. 오히려 아침이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오죽하면 자기 전에 즐기던 맥주타임을 아침의 이 시간을 위해 양보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기 시작했다.(나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다.) 살아가는 낙이 밤시간에서 아침시간으로 옮겨간 것이다.
내가 아침시간을 이렇게까지 기다리게 된 건 똑같은 모닝 페이지를 적지만 내가 그곳에 쓰는 글의 내용이 처음과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의 첫 모닝페이지는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어제 있었던 일, 속상했던 감정 찌꺼기들, 자아비판에다, 변명까지.
내 모닝페이지에는 차마 이곳에 옮겨 쓰지 못할 온갖 것들이 가득했다. 네 살 아들이 보았다면 아마도 나쁜 말 괴물들이 사는 곳이라고 했을 법한 나의 모닝페이지. 혹시나 누가 볼까 꼭꼭 숨겨 놓고 몰래 꺼내어 쓰곤 했는데 호기심 많은 우리 아이는 이번에도 보물 찾기에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다른 일을 하다가 돌아보면 어느샌가 엄마의 치부를 가지고 놀고 있기 일쑤였다.
아이가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게 참 다행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모닝페이지를 채울 소재가 떨어져 갔다. 사람 사는 게 사실 다 거기서 거기고, 주부라는 특성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적어서 소재가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를 탐구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일도 몇 번 반복하니 지겨워졌다.
싫증내기 좋아하는 내 성격에 이것도 얼마 못 가겠구나 싶었다. 참고로 나는 프로 작심 삼일러다. 웬만한 흥미를 주는 일이 아니고는 프로 작심 삼일러를 이길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럼 이제 다른 걸 써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었던 일, 느꼈던 감정, 후회나 기쁨 같은 나를 지나쳐간 것들이 아니라 아직 나를 거치지 않은 것들을 적어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과거와 현재의 일이 아니라 미래에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로 나에게는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지금 당장 이루어졌으면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미래에 대해 내가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저 질문에 대한 나의 솔직한 답이었다.
만약 누군가 ‘지금 당장 이루어졌으면 하는 일이 뭔가요?'하고 물었을 때 부자, 로또, 건강같이 이런 단답식의 답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미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꿈이 있고 목표를 세워 살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막상 쓰려니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부자가 되고 싶다.'
내 답의 끝이다. 왜 부자가 되고 싶은지, 부자가 되어 뭐가 하고 싶은 건지 따위는 머릿속에 존재한 적도 없었다. 이 한 줄이 내가 쓴 글의 처음이자 끝이었다. 무슨 초등학생 글짓기도 아니고, 아니 요즘 초등학생도 이보다는 길게 쓸 것이다. 그런데 진짜 아무 생각도 나지가 않았다.
어느새 나도 어떤 이유나 목적 없이 그저 돈이 많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막연히 부자를 꿈꾸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흔한 사람이 되어 있었음을 그때 처절하게 깨달았다. 뒤통수를 세게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잠시 펜을 들고 망설이다가 또 한 줄을 적어본다.
'여행 가면 좋겠다.'
또 끝이다! 어디로? 언제? 누구랑? 궁금한 게 생길 법도 한데 더 이상의 내용은 없다. 그저 여행이라는 게 좋은 거라니까 가면 좋겠다 하고 막연하게 바라왔던 것이리라.
그리고 더 이상은 펜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나라는 인간, 이대로 괜찮은 걸까?
늘 욕구불만으로 투덜거리는 게 일상이었던 내가 미래를 쓰는 노트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있었다. 결국 나는 세상에 불만만 토로할 줄 알았지, 진정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는 생각조차 제대로 해보지 않았던 맹추였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생각이라는 걸 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고 이것이 내 글쓰기의 첫날이 되었다.
내 나이 마흔넷의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