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수지 Nov 17. 2022

더 이상의 반려동물은 없다.

비비 파이도 어느새 6살, 내 마지막 개와 고양이들


몇 해 전 공중 화장실에 개를 묶어놓고 편지 한 장을 남긴 할머니 이야기가 방송에 나왔다. 편지에는 90세의 할머니가 암에 걸려서 살아있을 때 다른 주인을 찾아주려고 한다는 내용이 서툰 글씨로 적혀 있었다. 단순히 보면 키우던 강아지를 유기한 것이지만, 속사정을 알고 보면 남의 일만은 아니다. 본인이 “살아있을 때” 주인을 찾아주려고 한다는 말이 목울대에 걸렸다. 자연스레 내가 불치병에 걸리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우리 애들은 어떻게 될지 상상하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언젠가 오래된 친구에게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애들 잘 부탁한다고 유언을 남겼다.



우리 집에는 인간 하나, 고양이 한 마리, 개 두 마리가 산다. 각각 43살, 16살, 6살이다(개 두 마리는 동갑). 일반적인 수명을 따지자면 내가 제일 오래 살고, 그 다음이 비비, 파이, 마지막이 앙꼬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지만 시쳇말로 가는 데 순서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유언을 남긴 것이 그리 감상적인 일만은 아니다. 할머니도 나와 같은 심정이지 않았을까. 방법을 고심하다 화장실을 선택한 것이리라. 단단히 입힌 옷과 쓰던 물건, 사료와 물이 담긴 밥그릇만 봐도 그 마음을 알 수 있다. 해외 토픽 기사로 접했던,반려동물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긴 일화도 비슷한 감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화장실에 묶여 있던 강아지는 할머니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을까?자기를 낯선 화장실에 묶어둔 이유를 알았을까? 알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연이 알려지면서 한 연예인이 데려간 것으로 알고 있다. 할머니도 안심하고 떠나셨을 것이다. 할머니의 사랑을 간직하고,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유년기부터 집에 개, 고양이가 없던 시기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20년 뒤에는 우리 집에 네 발로 다니는 동물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그 사실이 낯설다. 그때 가서 다시 어린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일은 어려울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내 나이가 너무 많아져 그들의 노후를 책임지고 돌보기 힘들어진다면, 또 혹여 내가 먼저 떠나게 된다면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앙꼬, 비비, 파이가 나의 마지막 반려동물이라는 얘기가 된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 이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다.


언젠가 반려동물의 수명이 너무 짧다고 안타까워하던 동료에게 그들의 수명이 우리 정도면 그걸 감당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던 적이 있다. 잠시 생각하던 동료는 머뭇거리다가 체념한 듯 지금이 낫다고 답했다. 우리가 오래 살아서 반려동물의 노년의 삶을 돌봐주고, 잘 떠나보내는 일이 합리적이긴 하지만, 그들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일은 여전히 안타깝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보호자 아니던가. 받아들이고, 지금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 나눠야 하리라. 우리가 삶이 허무하다 느낄 때 내일 죽는다고 상상하면 지금의 시간이 달라지듯 반려동물의 죽음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건강해야 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 집 애들을 위해서다. 내가 제일 오래 살아야 한다.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지금 이 순간 앙꼬, 비비, 파이와 함께 있어서 너무 든든하고, 행복하고 감사해. 내 삶의 이유 중 큰 부분은 너희와 함께하는 시간이야. 나는 너희들의 노후를 잘 돌봐주고, 마지막 순간에도 함께 있을 것을 약속해. 나를 믿고 즐겁게 너희들의 삶을 살아주기를 바란다. 고맙고 사랑한다.


작가의 이전글 앙꼬는 어떤 병에 걸릴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