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수지 Dec 24. 2022

수의사를 신뢰하세요?

수의사와 보호자, 가깝고도 먼 사이


진료 경력이 오래되면서 늘어나는 것 중 하나는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다. 오늘날의 내가 여전히 진료를 보고,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여러 보호자와의 만남이 큰 역할을 했다. 좋은 기억으로 남는 분들도 꽤 많이 있고, 힘든 기억으로 남은 분들도 있다. 그 중에는 수의사를 그만두게 할 뻔한 분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죽음이 있다. 이미 그 질병을 오래 앓아왔고, 더 이상은 연명이 불가능한 순간 말이다. 그때 그 분(수의사 그만두게 할 뻔한)이 중환자입원실 안에서 힘들어하는 환자를 보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얘 죽으면 너도 죽을 줄 알아.” 이미 꽤 오랜 기간 무리한 요구에 지친 상태라 저 말이 덤덤하게 들렸다. 오히려 ‘드디어 끝이 나는구나’라는 생각에 속이 후련했다. 그날 퇴근길에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혹시 내가 다쳤다는 연락이 와도 놀라지 말라는 말을 전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부모님은 얼마나 놀라셨을까 싶지만, 그 당시의 정신 상태는 늘어날 대로 늘어난 고무줄 같았기에 사리분별을 할 수 없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비공식적으로 그 친구와 내가 같이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말이다.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26살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날들이었다. 오후에 환자 상태가 악화되어 보호자가 지켜보는 중에  마지막 숨을 내쉬고 세상을 떠났다. 한 분은 오열을 했고, 다른 분은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옷 소매를 한쪽 씩 걷기 시작했다. 드디어 때가 왔구나 싶었다. 나는 덤덤하게 옆에 서 있었다. 그 분은 큰 소리를 지르며 진료실 문을 주먹으로 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나무로 된 진료실 문이 움푹 패였고, 그 자리엔 피가 흘렀다. 그곳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벽을 피 묻은 주먹으로 사정없이 때렸고, 순식간에 병원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행히 나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다행이지만, 한편으로 다행이 아니기도 했다. 오늘은 이렇게 넘어간다 해도 앞으로 계속 힘들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맞고, 입원을 하면 앞으로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땐 몰랐지만 돌이켜 보니 정상적 사고를 못 했던 것 같다.


상황이 좀 진정되고 일행 분에게 그 분들의 사정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긴 얘기를 듣고 나니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라 더 옮길 순 없지만 그 얘기를 들은 일은 내게는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사람의 행동에 어떤 이유가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아니었다면 그 트라우마로 수의사를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전보다 그 분들을 이해하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꽤 오래 연락을 해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이후로는 전화 한 통도 없었다. 너무 의외여서 문득 ‘내가 한 번 걸어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얘기를 했더니 주위 동료들은 ‘네가 제일 이상하다’며 핀잔을 줬다.


수의사와 보호자와의 관계는 어떤 것이 가장 이상적일까? 앞서 얘기한 예는 극단적이긴 하지만,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그럼 모든 질병을 다 고쳐주는 만능 수의사가 되면 최상의 관계가 될까? 그건 동화 같은 이야기로 현실성이 없지만, 있다 해도 최상의 관계는 안 될 것 같다. 그리고 보통 수의사와 보호자는 환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라지는 관계이다. 아무리 관계가 좋아도 환자가 죽으면 한쪽이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진료를 보기 시작한 초반에는 그런 부분들을 받아들이는 일이 꽤 어려웠다.

 

언젠가 선배 수의사가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모든 질병을 다 낫게 할 수 없어. 네 입장에서는 해결을 못 해줘서 괴롭겠지만 그게 너의 능력 부족 탓만은 아니야. 다 낫게 하고 싶다는 건 너의 오만일 수 있어. 낫게 할 수는 없어도 보호자와 환자의 동반자가 되어 좀 더 나은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수의사가 할 일이야.”  순간 망치로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오만하게도 모든 병을 다 고치고 싶어 했고, 그 사실로 보호자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게 가능할 리 없으니 진료가 괴롭고 힘들었다. 그런 나에게 몰두하느라 정작 환자와 보호자 곁을 지켜주고 힘이 되어주어야 하는 역할은 등한시했다.


 그 뒤로 완전히 달라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보호자와의 관계가 불신을 기반으로 한다면 치료 과정이 고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기간에 깊은 신뢰를 얻는 일은 욕심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환자에게는 꼼꼼하고 세심하게 질병을 관리해주는 것이고, 보호자에게는 따뜻한 마음으로 정확한 의료적 관점을 제공하는 일일 것이다. 요새는 환자, 환자가 가진 질병, 그리고 보호자를 동시에 보려고 한다. 최선이 있지만, 가끔 차선을 선택해야 하고, 차선도 안 될 경우에 차악의 선택에서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그래야만 나 스스로도 돌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몇 달 전 항암치료를 시작한 환자가 있다. 보호자는 처음 나를 만났을 때 날카로운 눈빛으로 대했다. 첫 상담을 마치고 나는 녹초가 되었다. 걱정과 염려 속에 항암치료를 시작했고, 매주 만나면서 보호자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바뀐 눈빛에서 느낀 건 신뢰감과 유대감이었다. 환자, 보호자, 수의사가 한 팀이 되었다. 그사이 종양이 재발하여 다른 항암제로 교체하고, 또 다시 재발하는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호자는 처음과는 다르게 항암에 의지를 보이고 있고, 나도, 환자도 각자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물론 모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인지하고 있다. 오늘 만난 보호자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 환자는 다행히 특별한 증상은 없이 밥도 잘 먹고, 잘 잔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환자에게 ‘그래 그게 네가 할 일이야. 장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새로 처방한 항암제가 잘 듣기를, 그래서 조금 더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