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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영 Aug 14. 2022

여자가 이런 일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2

이런 일 하는 여자의 답변 #2

#1에 이어...



얼마 전 요즘 연예인 버금가는 인테리어 유투버가 스피치 한 내용이다.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건축 재료비, 인건비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서두로 시작하여

'옛날에는 13 15만원 하던 페인트공 인건비가 요즘 25 30만원...더럽게 비싸다'며 인테리어 공사비를 절충할만한 대안으로 필름과 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유독 인건비를 '인권비'라고 자막 처리한 것은 오타인지 비꼬는 건지 알 수 없지만 현업에 종사하는 12년 차 페인트공 입장에선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그분이 주장하는 '옛날에 13, 15만원' 대체 언제일까... 댓글을 달아볼까 하다가 현재 나와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들이 그냥 내버려둬요... 우리도  사람 별로  좋아해요...라는 말에 릴랙스...

갠적으론 팬이기도 하고 그분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것같기도 하다.


나의 케이스를 이어 나가 보겠다.

진희가 있던 첫 현장에 대한 나의 기대는 현장 먼지들과 함께 순식간에 가라앉아 버렸었다.

15만원x20일 = 300만원 이라는 야무진 꿈도 뜬구름이 되었다.

이때가 2010년이었다.

왕초보가 한 달 정도 교육받은 후, 현장에 투입돼도 해는 끼치지 않겠다 정도 될 때 받는 미니멈 일당이 15만원 이었다.  적어도 이 회사는 그랬다.

유튜버가 주장하는 13 15만원은 12년전에도 쌩초보가 받는 금액 수준이었고, 이 때도 전문가는 25만원 수준이었다.  내 인건비만 빼고 다 올랐다는 요즘 페인터들의 농담이 씁쓸하다.

물론 나 같은 케이스와는 다르게 건설현장에 하루하루 일당으로 투입되는 경우와는 또 차이가 있을 것이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페인터들 중에 경력이 10~30년 사이 된 분들은 실내, 주거인테리어 현장보다는 거의 대형건설, 건축 현장에서 시작한 분들이 더 많은 듯 하다.

그 와중에 진희가 있던 회사는 2010년까지만 해도 흔하지 않았던 수입페인트 전문 시공회사였고 대표가 호주에서 페인트일을 하다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 시스템 그대로 한국에서 형과 개업한 젊은 회사였다.

삼화, 노루, kcc, 제비표 등 국내 페인트보다는 베어, 던에드워드, 벤자민 무어 등을 주로 사용하여 시공하고 체리 나무색 필름으로 감싸져 있는 몰딩, 싱크대, 벽장, 아트월 등을 화이트로 전체 도장하는 일도 인기가 많았다. 붓, 롤러, 장비 등도 동네 페인트 가게에서는 살 수 없는 것들이어서 직구로 구입하거나 수입페인트 판매점에 직접 가서 구입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수입회사들도 대리점 사업들을 벌여 여기저기 많지만 그때는 본사와 직영점 1, 2곳뿐이었다.  본사라고 해 봤자 물류창고 수준이었던 회사들이 지금은 명품 페인트를 판매한다며 엄청 럭셔리해져 있다.


진희의 현장구경 후에 나는 한동안 페인트 일은 잊고 있었다.

백수 생활하면서 우연히 지인 때문에 참여했던 독립영화가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었지만 영화사 예산 문제로 나는 그곳에 못 간다는... 섭섭한 소리를 듣고는 한참 우울감에 빠져 방바닥에 녹아 있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언니 별일 없어~?'

그래도 안부 전화해주는 건 진희뿐이다.


'응... 그냥 그래...'

'언니 근데 000 알아??'

'000? 응 중학교 때 교회 같이 다닌 거 같은데.. 키 크고 안경 쓰고 웃던 애.  근데 네가 어떻게 알아?'

'ㅋㅋㅋ 대박... 여기 사장이 000이야!'


진희가 있던 개포동 현장을 염탐하러 가기 전에 맘이 급해서 '나도 나도' 하며 진희에게 이력서를 회사에 꼭 전달해 달라며 부탁했던 일이 번뜩 기억났다.


'아... 진짜?  오... 걔가 페인트를?  공부 엄청 잘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소리, 공부를 잘한 사람이 도장공이 된 것은 이상한 거라 생각했나 보다. ㅋㅋㅋ

그래도 사장이라니...

진희가 팀장에게 내 이력서를 전달했고 주소와 출생 연도가 자기 형이랑 같아서 형한테 물어봤더니 나를 안다고 했단다.

나는 바로 회사 주소 물어보고 놀러 갈 날짜를 잡아버렸다. 이젠 남의 회사가 아니라 친구네 회사가 된것이다.

아무도 오라 안 하는 데 친구네 집 놀러 가는 기분으로 나 혼자 쳐들어가게 되었다.

회사는 강동구 둔촌동에 있었고, 지금은 없어진 더페인터 라는 회사였다.  

2010년-지금은 폐업한 시공업체 더페인터 (사진 : 선율)


5호선 둔촌역 1번 출구에서 내려 200미터 정도 걸었던 거 같다.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와 걸으니 어질어질했다.  2층 문을 열고 들어갔다.  8차선 대로, 키 큰 초록색 가로수들과 아이 컨텍할 수 있는 커다란 통창이 눈에 확 들어왔다.  


갑분싸 현재로 잠깐 돌아와 본다.

어느 출판사 대표님의 권유로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다.  사실 권유라기보다는 이런저런 출판현실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캐치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한동안 바쁜 날을 보내다가 폭우가 쏟아지는 요즘 '바로 지금이야'라는 마음속 소리와 함께 바로 브런치 가입 후 작가명을 입력하고 글을 하나 써보기로 한다.  키워드도 노출도 신경 안 쓰게 되는 이상한 마력의 브런치.. 온전히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그리고 들려주는 이야기를 손가락으로 입력해 본다.

작가의 서랍에 글 하나를 저장하고는 무슨 용기에서인지 바로 작가 신청을 해본다.

게재한 글, 운영하는 sns, 출판한 책 등 기입해야 하는 곳들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입력할 만한 게 없었다.

작가의 서랍에 저장한 달랑 글 하나...



3일 뒤 좋은 결과가 있었다.


타고난 글쟁이였나... 내가 글을 잘 쓰나... 드디어 책을 내는 건가... 잠깐 동안 별의별 우쭐함들을 맘껏 부려보았다.  들뜬 맘이 조용해지면서 나는 생각해보았다.  내가 브런치 심사위원이라면 왜 나를 뽑았을까 하며...

아마도 타고난 필력이라기보다는 지금 이 시대 건설현장의 여자 페인터가 쓰는 진실한 이야기들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 역시 기획을 했던 입장에서 바라보면, 흔하지 않은 콘텐츠인 만큼 여러모로 재밌게 활용할 수 있겠다 라는 가능성이 보였으리라 생각된다.


나에게 브런치를 소개한 분과의 대화에서 브런치에는 정말 글쟁이, 글선수만 있다는 정보와 함께 많은 편집자들이 브런치에서 작가 발굴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바로 도전해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브런치 작가가 되어 마음이 좋다.  무엇보다 내가 페인트를 시작하게 되면서 다시 만난 인연들, 새로 사귄 동료들, 그리고 이 일의 매력, 앞으로의 전망까지도 브런치를 통해 기록해 나갈 수 있게 되어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랄까...

브런치 덕에 2010년 더페인터의 문을 두드렸던 그때가 다시 소환되었다.  머릿속 영화들을 다시 재생해 이렇게 문자로 기록하는 작업이 은근 나에게 잘 맞는 것 같다는 편안함이 느껴진다.




'여자가 이런 일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하고 무심코 던진 한 남자의 질문 덕에 예전 기억이 물밀듯이 소환된다.  그렇게 방문하게 된 페인트 회사에는 진희만 있었다.  모두 현장에 갔고 잠시 후면 옛 친구가 온다고 한다.  진희가 그려놓은 벽화 샘플과 처음 보는 페인트 컬러들이 문과 소품 벽에 칠해져 있었다.  

특히, 페인트통들이 정말 예뻤다.  모두 영어로 쓰여 있어서 왠지 고급스러움을 풍기며 크기도 재질도 다양했다.  그대로 인테리어 소품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통수집에 열중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던 거 같다. 인테리어가 멋진 카페에 놀러 간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그저 이쁘고 신기했다. 50평 정도 되는 뻥 뚫린 공간에 다양한 색들이 춤추고 있는 듯한 환상적인 기분이었다.  게다가 잠시 후면 여기 사장인 '내 친구'를 만나게 된다니 무척 신나 있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진희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수다를 떨다 보니 6시가 다 되어갔다.

창가 쪽 의자에 앉아 프레임 없는 통창에서 아래층 양재대로에 지나가는 차들 구경을 하고 있었고, 문이 열렸다.  무거운 짐들을 옮기는지 문이 열리기 전부터 쿵쿵하는 소리가 들렸고 드디어 '내 친구'가 무거운 짐을 들고 들어왔다.

서로 한 3초간 스캔을 한 뒤 '내 친구'가 인사를 한다.


'너 얼굴이 왜 이렇게 됐냐...?'


질 수 없었다.


'넌 얼굴이 왜 이렇게 커졌어??'


20여 년 만에 만난 어색한 중학교 이성친구가 주고받은 첫 번째 인사다.


나의 시작은 이러했다.  사람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사람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때 '내 친구'는 매우 어려운 상태로 일은 많이 들어 왔지만 부채와 인력관리, 페인트 재고부담 등의 문제로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도 부족한 시기였다.  시간이 좀 지난 후 너무 힘들어하며 남몰래 흘린 '내 친구'의 눈물 한 방울을 보고 말았고 난 끝까지 옆에서 지켜주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사실 이때 누굴 도와줄 처지는 아니었지만...)  

화려한 색채를 다루는 도장공의 삶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칠을 할 때 만큼은 여러 어지러운 감정과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다 보니 '기술' 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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