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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Dec 27. 2023

여기는 제주, 일일 책방지기입니다(2)

누구나 가슴 속에 하나씩 품고 있는 꿈

 



 저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가슴 속에 비밀스러운 꿈이 하나씩은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꿈이 80일 간의 세계일주일 수도, 유기견 100마리 구조하기일 수도,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는 먹방 유튜버가 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저에게 책방을 운영하는 것은 그런 류의 꿈과 비슷했어요. 언젠가 해보고는 싶은 일이지만 도무지 엄두가 안나는 그런 일이요.



일일 책방지기의 출근 전 루틴



 충동적으로 제주행을 결심했던 11월의 어느 날, 일일 책방지기 모집 글이 눈이 들어왔어요. 모집글 속 딱 하나 비어있던 일정은 저의 제주 여행 일정과 딱 들어맞았고요. 하고 싶다는 생각이 해야 할 것 같다는 결정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어요. 결정을 하기까지 했던 고민은 ‘감히 내가 해도 되는 걸까’하는 것이었는데, 이 고민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내놓은 답은 제주까지 가서 일을 해야 하냐-, 쉬러간다면서 그게 휴식이냐- 였습니다.



 어떤 신념은 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또 사람을 무너트리기도 하죠. 번아웃을 제대로 이겨내지 못한 저는 제 신념이 저를 무너트렸다고 생각하는 쪽이었어요. 저는 괴로움에 지쳐 허덕이다 다시 한번 제 무모한-신념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택한 건 단순히 ‘책방지기’가 아닌 그 이면의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까요. 이 결정에 있어 타인의 설득과 나와의 타협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작고 아늑한 공간



 책방지기 일은 간단합니다. 출근해서 밤새 쌓인 책장 속 먼지를 털고, 손님을 맞이하고, 책을 파는 것. 낯선 여행지에서 책방을 찾는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어요. 책과 공간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리고 일일 책방지기로 책방을 지키는 책방지기에도 공통점이 있었지요.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 속 잠시 길을 잃었거나, 길을 잃었던 적이 있다는 것 말이에요.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에 기꺼이 해내는 사람들이었어요.



 사랑이라는 표현이 너무 거창할까요? 눈과 비와 우박이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속 작은 책방을 찾아오는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면 우린 무얼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공간에 대한 어떤 권리도 없지만 손님들을 맞이하고 고요히 책방을 지키며 그저 기다려주는 일을 또 무어라 부를까요. 궂은 날씨에 책방을 찾아 주시는 손님들에게는 저마다의 꿈이 있었고, 책방지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째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죄다 하찮고 세상의 순으로 보면 쓸모없는 것들 뿐인 걸까. 하지만 나는 이제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촘촘한 결도 세분되는 행복의 감각들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므로.

-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백수린


by 일일 책방지기 이은


 저는 이 기억으로,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꿈을 앞으로도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보고 싶은 일이 있음에도 타인의 시선에 위축된 적 있다면, 쓸모 없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에 주저하지 말아 보세요. 마음 속에 감춰져 있던 행복의 감각을 느껴 보세요. 도전하는 자에게는 초심자의 행운과 완벽한 타인의 친절이 따를 터이니!

(아.. 다정하고 친절했던 제주가 벌써 과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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