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한 편 (23).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가끔은 기쁨
김사이
검은 얼룩이 천장 귀퉁이에 무늬로 있는 것
곰팡이꽃이 옷장 안에서 활짝 피어 있는 것
갈라진 벽 틈새로 바람이 드나드는 것
더우나 추우나 습한 부엌에서 벌레랑 같이 밥 먹는 것
화장실 바닥에 거무스름한 이끼들이 익숙한 것
검푸른 이끼가 마음 밑바닥을 덮고 있는 것
드러나지 않고 손길 닿지 않는 곳에
끈적끈적함이 붉은 상처처럼 배어 있는 것
삶 한켠이 기를 써도 마르지 않는 것
바람 한점 없이 햇볕 짱짱한 날
지상의 햇살 모두 끌어모아
집 안을 홀라당 뒤집어 환기시킬 때면
기름기 쫘악 빠진 삶이
가끔은 부드러워지고 말랑말랑해져
고슬고슬해진 세간들에 고마워서
그마저도 고마워서 순간의 기쁨으로 삼고
또 열심히 살아가는
* 마음을 붙잡은 문장
삶 한켠이 기를 써도 마르지 않는 것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터널을 건너고 있는 사람들을 안다. 마음을 다잡는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을 떠안고 사는 사람들. 가족의 죽음, 장애, 이별 등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앞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 삶 전체를 관통하는 눅눅한 젖음을 말리느라 발버둥치며 살고 있는 사람들도 안다. ‘기를 써도 마르지 않’지만 그 삶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 햇살이 된 사람들. 역경을 뚫고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의 대표주자 ‘헬렌캘러와 앤 설리반’이 아닐까. 나도 현재의 상황에서 밝은 쪽을 바라보고자 애써 젖은 삶을 말리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