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범
오늘의 시 한 편 (90).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다회용
한재범
본인이 죽은 걸 인지한 생물만 귀신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친구가 말해주었다 너 대체 어쩌다 그랬니 탄산수를 꼭 컵
에 따라 마시던 친구다 속에 담긴 것이 빠져나가는데
친구와 나는 옥상에 있다 녹색 페인트가 칠해져 옥상이다
이곳 옥상은 방수라고 들었다 녹색이라 눈이 편하고 한쪽에
는 식물을 기르는 사람도 있다 이미 죽은 줄도 모르고
식물은 여전히 푸르다 거미줄이 쳐져 있고 그 위로 죽은
거미가 놓여 있고 식물은 여전히 푸르다 옥상에 그가 물을
뿌린다 자신이 마시던 컵의 물을 화분에 쏟고
그는 이제 없는 사람이다 나는 화분 옆에 남겨져 촘촘하
고 아름다운 도시에 놓인 그를 본다 가만히 옥상에 서서 손
에 들린 컵을 계속 든다 컵은 녹색이며
녹색은 친환경적이다 화분은 언제부턴가 옥상에 있다 무
엇도 스며들지 않는 푸른 옥상이다 친구는 언제부터 나의
친구였을까 이것을 비워야 한다 사람이 오기 전에
음료수를 마시는데 칼로리가 없다
맛있는데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친구는 언제부터 나의 친구였을까 이것을 비워야 한다 사람이 오기 전에
(오싹하다. 친구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는데 자기 이야기였다. 이미 귀신이 된 자기 이야기라고 읽힌다. 녹색은 친환경적이라 유용한 색이다. 나무들의 색이 녹색이니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좋아하는 색이 뭐냐고 물어보면 ‘초록’이라고 말했었다. 초록이라는 말이 너무 예뻐서였다. 아직도 초록은 좋아하는 색이다. 초록의 변형 색은 카키와 청록 등 초록의 친구들이 좋다. 사람, 식물, 거미 등 죽은 것들의 이야기 속에서 녹색 찬양을 읽어 낸다.)
* 시집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으로 "매일 시 한 편" 연재가 오늘까지 끝났습니다. 함께 해 주신 작가님들 덕분입니다. 농번기라 시 연재는 당분간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